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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전달자 정경수 Nov 06. 2019

읽기와 이해하기는 다르다

많이 읽는 게 능사가 아니다. 읽고 이해해야 내 것이 된다.

방송국에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조사해서 프로그램을 기획합니다. 

방송을 보면 요즘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동안 여행하면서 먹고 즐기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여러 채널에서 유명 여행지를 다니며 현지 음식을 먹고 제대로(?) 여행하는 비법 같은 걸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경쟁하듯 방송합니다.

여행과 먹방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기획하더니 그다음에는 여행하면서 여행지의 정보와 역사, 인문 분야 지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가공해서 전달하는 프로그램이 등장했습니다. 프로그램을 지켜보기만 해도 유식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몇몇 프로그램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방송을 보는 동안은 머리에 정보가 들어오는 기분이 드는데, 방송이 끝나면 머리에 들어왔던 정보가 사라집니다.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였을 뿐,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보를 지식을 지혜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려면, 방송이든 책이든 라디오든 보고 들은 내용 가운데 핵심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읽기는 문자가 만들어진 이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인이 실천하는 학습법이다. 과거에는 책 읽기가 지식을 얻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지식과 정보가 책으로만 유통되던 시대에는 글을 많이 읽은 사람이 지식이 많은 사람으로 통했다. 지금은 책을 읽지 않아도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책 외에도 지식을 얻는 경로가 다양하다. 인터넷, 동영상, TV 등의 시각 매체 외에도 체험하며 감각 기관을 통해서 지식을 얻는다. 교육 현장에서도 선생님이 가르치고 학생이 배우는 게 아니라 직접 글을 쓰고, 작품을 만드는 형태로 학습 방식이 바뀌고 있다. 


역사 수업은 교구로 제작된 첨성대, 석가탑, 측우기 등의 모형을 만들면서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를 배운다. 이것을 문화콘텐츠 교육이라고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직접 체험하면 훨씬 더 깊게 이해하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렇다고 모든 지식을 체험으로 배울 수는 없다. 시각 이미지·영상을 통해서 지식을 얻는 방법이 보편화되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외에 이미지와 동영상을 보고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책 외에 미디어를 통해서 지식·정보를 얻는 사회에서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넘어, 듣고 읽고 쓰고 말하는 소통에 필요한 문해력(literacy)을 갖춰야 한다. 


요즘은 글뿐만 아니라 인포그래픽, 영상, 청각 자료를 이해하는 개념으로 문해력의 범위가 확장되었다. 글자는 읽지만 내용을 이해하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실질적 문맹’이다.


미국과 영국,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50여 년 전에 문해력 즉, 비주얼 리터러시(Visual literacy)의 개념을 만들었다. 1970년대 초에 는 텔레비전 리터러시(Television literacy), 1970년 후반부터 컴퓨터 리터러시(Computer literacy)를 교육 현장에 도입해서 능력 계발에 활용하고 있다.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기본이고 다양한 매체의 콘텐츠에서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 즉 리터러시를 갖춰야 한다. 1992년 미국의 미디어 리터러시 지도자 협의회에서 학자들은 리터러시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리터러시는 다양한 형태의 메시지에 접근하고 메시지를 분석하고 평가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다. 미디어 문해력이 있는 사람은 인쇄 매체와 방송 매체를 해석하고 평가하고, 분석하고 생산할 수 있다.”

김대행 지음, 《방송의 언어문화와 미디어 교육》,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31, 34쪽


문해력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요즘은 문해력의 범위가 글뿐만 아니라 인포그래픽, 영상, 청각 자료를 이해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글자는 읽을 수 있지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실질적 문맹’에 해당한다. 글을 읽을 줄 알지만 문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맹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농촌에서도 글을 이해하지 못해서 종종 큰 사고가 일어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펴낸 〈농촌노인의 문해력 제고 방안〉에는 일회용 샴푸를 위장약으로 알고 먹은 이야기와 비료인 줄 알고 뿌린 것이 제초제여서 농사를 망친 일화가 문해력이 떨어져서 발생한 사례로 나온다. 글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농촌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3년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발표한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 따르면 한국인의 문해력은 청년층(16~24세)에서 OECD 24개 참가국 중 4위이지만, 55~65세와 45~54세는 뒤에서 세 번째, 네 번째를 차지했다.

OECD의 국제성인역량조사에서 정의하는 리터러시는 산문 문해력, 문서 문해력, 수리 능력, 컴퓨터 활용 능력, 문제 해결 능력 및 분석적 판단력, 협동심,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포괄한다. 지식이 많은 사람만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고 듣고 생각하는 훈련을 하면 문맥과 전후 상황으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OECD의 조사 결과에서 한국인이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수준은 평균 이하였지만, 나는 이걸 문제라고 생각하는 생각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요즘 인문학 책 읽기를 강조하고, 정보 습득을 권한다. 정보와 지식이 많은 사람이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라고 권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나부터 권하고 싶다. 

지식의 부족함을 탓하기 전에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라고.



출처

정경수 지음, 《핵심 읽기 최소원칙》, (큰그림, 2019), 15~17쪽


참고문헌 

김대행 지음, 《방송의 언어문화와 미디어 교육》,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31,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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