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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n 11. 2024

화양연화 - 煙氣, 演技, 緣起

슬프지만 상하지 않는다


1.

밤이 아름다웠다. 밤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은 아직도 그쪽으로 거닐고 있었으면 좋겠다. 옷을 다 적시며 내리는 비가 아름다웠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비가 내렸고 비가 내리면 기다리는 첸 부인의 조용하고 축축한 표정과 첸 부인을 바라보는 차우가 보기 좋았다.


- 밤이다. 뒷모습만 보이는 두 사람이 걸어간다. 비가 내린다. 남자는 양복이 다 젖었다. 여자는 치파오를 입었다. 여자는 비를 바라보고 남자는 여자를 바라본다.


차우가 피우던 담배 연기도 아름답다. 그려낼 수 없는 것을 그려내야 할 때, 차우가 내뿜는 연기煙氣는 연기演技가 된다. 연기와 연기는 둘 다 멀리 흐르고 스며든다. 그리고 사라진다. 처음부터 그러기로 했다는 듯이 아름다움은 소멸한다. 아침이 오고 비가 그치고 연기가 사라지면 아름다운 시절도 멈춘다.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 담배를 피우는 남자. 그의 등이 보이고 그 위로 연기가 피어난다. 주위는 어둡고 전등 아래만 환하다. 담배 연기가 곡선과 구름의 형태로 어둠 속으로 퍼져간다. 남자는 담배다. 여자를 만날 때에도 만나지 않을 때에도 담배를 피운다. 비가 오는 날에도 비를 맞으면서 피운다.


사막같이 먼 곳에서도 찾아오는 것이 인연이라면 감옥같이 좁은 곳에서도 싹트는 것이 사랑이다. 끝없이 넓은 시공간에서 마주 보고 서 있는 첸 부인과 차우는 그만큼 막연하고 시작이 없고 끝도 알 수 없다. 늘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시선이 간다. 두리번거리는 마음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사실적이면서도 소설 같다. 차우는 무협소설을 쓰기도 하고 홍콩을 떠나기도 한다.


- 여자의 가방, 남자의 넥타이를 보고 직감한다. 여자의 남자가 남자의 여자와 서로 만나고 있다는 것을 결국 두 사람은 확인한다. 두 사람은 태연한 척 말이 없다. 하지만 난감하고 난처하고 낙담한 얼굴이다. 무표정이 무표정을 위로하고 지키면서 국수를 나눠 먹고 전화를 기다린다.


2.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좁은 아파트 복도와 국숫집 계단이 첸 부인과 차우의 세상이다. 어떤 세상은 스치는 것이 전부가 되기도 한다. 첸 부인과 차우는 그 세상에 불평이 없다. 만약 그랬다면 두 사람은 서로를 만날 수도,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떤 운명은 너무 쉽게 화양연화를 피해버린다. 첸 부인과 차우가 만나는 바깥세상은 그림자가 비치거나 비가 내린다. 밤이었고 두 사람이 정지한 채로 서 있는 곳에서는 가로등 불빛을 받아 건너편 창살이 이쪽을 덮는다. 둘은 거기 갇혀서 서로를 알아간다. 빗속에 갇히고 창살에 갇히고 서로의 배우자에게 갇혀 있다. 그래서 차우는 담배 연기를 품어낸다. 그래서 챈 부인은 매번 다른 색깔과 무늬의 치파오를 입는다. 영화를 보는 사람도 그들 사이가 된다. 두 사람의 마음이 되었다가 연기가 되었다가 표정이 된다. 1962년 홍콩이다.


- 홍콩은 복잡하다. 시끄럽고 덥고 습하다. 복도 하나를 두고 남자가 살고 여자가 산다. 같은 날 같은 아파트에 이사를 오고 두 사람은 우연히 서로의 배우자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고서 모른 척하고 모른 척하면서 하나씩 더 알아간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배우자에 대해서, 그러다가 그러다가 서로에 대해····. 두 사람이 나오는 배경마다 그림자가 지고 비가 내리고 어딘가 다 좁은 공간이다. 그 좁은 공간 어디에서든 남자와 여자는 따로 공간을 둔다. '스치는' 그것이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이다. 거기 있으면서 거기에 머문다. 남자와 여자의 연기演技는 일품이다. 공간을 연기해 낸다. 사랑의 공간을 보여준다.


3.

애이불상哀而不傷 - 슬프지만 상하지 않는다.

어떤 슬픔이든 상처가 되는 사람이 있고 상처가 곧 슬픔인 사람도 있다. 슬프면 우는 사람이 있고 슬퍼도 울지 않는 사람이 있다. 울고 싶어도 못 우는 사람이 있고 울지 않아야 하는 곳에서 우는 사람이 있다. 모두 세상에 방 하나를 얻어서 사는 사람들이다. 슬픔은 연기다. 연기緣起 같아서 뜻밖에 찾아오고 연기演技라서 과장된다. 그리고 사라진다, 연기煙氣처럼. 첸 부인은 슬프지만 자기가 가진 아름다움에 그 색을 하나 더 입혔고 차우는 슬프지만 자기가 가진 고독에 한 폭 더 깊어졌다. 차우는 앙코르와트 힌두교 사원 돌탑에 난 구멍에 대고 누구도 알지 못할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무에 구멍을 내고 사랑을 말하고 싶다던 차우는 돌에다가 그렇게 속삭인다.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 화양연화花樣年華를 봤다. 20년 전에도 봤고 10년 전에도 봤고 엊그제도 봤다.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옛날에 알았던 것, 보였던 것, 말했던 것들이 탑이 되지 못했다. 탑이 아니라 탑에 붙어 살아가는 이끼였다. 살아가는 일은 겨우 이끼가 되는 것이었구나. 슬프지만 상하지 않는 것은 탑이다. 차우는 연기로 쌓아 올린 탑이었다. 챈 부인은 그 탑 앞에 합장하는 연기였던 것이다. 나는 두 사람을 지켜봤던 연기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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