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리면 안 될 누군가의 주소처럼 A4 용지에 급하게 적었다. 후지이, 오타루, 그리고 제니바코, 저기가 여기였구나. 30년 전 주소를 받아 적고서 알았다. 서둘러 적지 않아도 될 주소였다는 것을. '러브레터'에 나오는 모든 장면, 모든 대사와 표정이 여기 있었지····
(Le Temps des Fleurs / Dalida의 노래가 흐른다.)
어느 시절이 꽃이었을까. 지나간 것을 그리워하며 추억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는 사람을 가라앉힌다. 심연을 거니는 듯, 거기 누워 잠들려는 듯 기운이 없다. 아직도 '러브레터'를 편안하게 볼 수 없다면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다. 어제는 후지이 이츠키가 나오는 영화, 러브레터를 봤다.
(A Winter Story / Remedios의 음악이 흐른다.)
95년 겨울에는 소년 후지이 이츠키를 동경했다. 말 없는 중학교 소년이 부러웠다. 눈 덮인 산에서 추락하고 마쯔다 세이코의 노래를 부르면서 죽은 그 남자를 애도했다. 그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두꺼운 책을 샀다. 그가 대출 카드 뒤에 그렸던 소녀를 오래 기억할 줄 몰랐지만 그 소녀가 잊히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계절이 가고 꽃 같았던 시절도 떠나갔다.
도쿄의 한 책방에서 러브 레터의 시나리오를 샀다. 한 줄 한 줄 노트에 적어가면서 보냈던 밤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그 시절을 지나올 수 있었을까. 누군가를 잊는 연습과 기억하는 연습이 그 노트에 가득했다. 커튼 뒤에 이츠키가 서 있는 장면에서는 긴장하고 도서 대출 카드에 이츠키라고 쓴 장면에서는 웃었다. 영화처럼 사진을 찍고 싶어서 카메라도 샀다. 사진을 찍으러 다닐 시간이 없을 만큼 바빴다. 카메라 사면서 빚진 돈을 다 갚기도 전에 카메라를 잃어버렸다. 아까운 것도 화나는 것도 피곤한 것도 소용없었다. 사람을 잃은 슬픔 속에 다른 것들은 가라앉았다. 슬픔을 전공하는 사람 같았다. 사람들의 슬픔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면서 홋카이도가 눈에 들어왔다. 오타루 운하를 따라 가로등 불빛 아래를 오래 걷다가 돌아왔으며 지금도 생각하면 차가운 홋카이도 바다에 무턱대고 빠졌던 날도 있었다. 가만있을 수 없었고 정신없이 지내는 것이 다만 최선인 것만 같았다. 그래야 살 것 같았던 시절, 코피가 나지 않으면 눈물이 났다. 코피도 눈물도 비린내가 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차라리 쏟아지는 눈을 맞으러 멀리 떠나는 편이 훨씬 쉬웠던 날들이었다.
ひと目惚れにはひと目惚れのわけがあるんですね。
그런 말, 믿는다. 사람들이 믿는 말을 믿고 사람들이 믿지 않는 말도 믿는다. 영화 속 또 다른 여자 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는 죽은 연인, 후지이 이츠키에게 편지를 쓴다.
「拝啓、藤井樹様。
お元気ですか? 私は元気です。
渡辺博子」
따뜻한 남자 아키바 秋葉는 죽은 후지이 이츠키의 친구이며 이제는 와타나베 히로코의 연인이다. 죽고 없는 사람을 기억하는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였으며 한 사람에게는 사랑하던 사람이었던 후지이 이츠키. 두 사람 사이에는 후지이 이츠키가 아직 생생하다. 아키바의 마음이 언제쯤 보였던가. 서른이 훌쩍 지나서 그제야 아키바의 마음이 무엇일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거 쓴다고 편지가 가겠어? 아키바의 그 말에 히로코가 답한다. '가지 않을 줄 아니까 쓴 거예요.'
일본 영화, 러브레터는 후지이 이츠키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녀와 소년이 나온다. 중학교 3년 동안의 이야기를 와타나베 히로코와 여자 후지이 이츠키가 편지로 주고받는다. 편지를 쓰면서 그리고 그 편지를 읽으면서 한 남자- 후지이 이츠키-를 보여준다. 편지라는 말처럼 수많은 이미지를 품고 있는 말이 또 있을까. 거기에는 회상도 추억도 있고 사랑도 우정도 있다. 비밀도 걱정도 안부도 얼마나 많이 들어있었던가. 고백은 그렇게 백지에 쓰는 것이 아니었던가. 편지가 없어졌다. 30년, 러브레터가 세상에 나온 지 서른 해가 지났다. 편지 속에서 후지이 이츠키가 살아 돌아온다. 몰랐던 마음에, 추웠던 겨울에 생기가 돌고 물이 흐르고 다시 사랑할 마음이 일어난다. 다시 살아갈 용기를 준다.
(Those were the days / Mary Hopkin의 노래가 흐른다.)
지나간 날들, 옛날이라고 부르는 날들을 우리는 간직하고 산다.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 옛날들인가. 어쩌면 인생의 고비마다 러브레터를 봤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가장 인생다운 시절마다 편지를 썼던 것은 아니었을까. 일본어로 편지를 고풍스럽게 부를 때는 타요리 便り가 된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사람이 무엇인가에 기대고 의지한다는 말도 타요리 頼り다. 나는 늘 그렇게 기대면서 지내올 수 있었다. 겨울에만 봤던 영화를 여름을 앞두고 봤다. 장석남의 시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