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palm of your hand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한 줄기 빛, 어둠의 동굴에 새겨진 시 한 줄.
영화를 만드는 데 참여한 이름들이 브라운관 전면에 흐른다. 저 여행은 짧다. 10초쯤 될까? 화면 아래에서 저 위까지, 그것도 이름 하나가 내내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닌 것을. 다음, 다음, 다음, 계속 이름이다가, 이름이었다가 어느 순간 글자였다가 그마저도 놓치고 화면만 응시하는 나.
저 마음일 때가 있는 거야. 자세가 삶이다. 예전부터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삶이라는 말만 나오면 이렇게 말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삶은···· 계란. 옛날 추기경님이 그러면서 사람들을 웃기셨다는 것을 안다. 나 같았어도 잔뜩 기대하고 있다가 웃고 말았을 것 같다. 삶이 어떻게 계란하고 같을까. 삶 = 계란. 어쩌면 추기경님이 말씀하셨던 것은 '삶은 계란'이 아니라 저 공식이 아니었을까.
마음이 희미해졌거나 없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마음의 영토에도 온난화와 환경오염이 발생했다. 경보가 울린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구급차는 오지 않는다. 구급차를 운전하고 싶은 마음도 점점 작아지고 있다. 마음의 영역 안에서 사시사철 열매를 맺던 가치들이 말라간다. 노력, 용기, 지혜, 꿈, 사랑, 우정, 종교, 철학, 문학, 예술 같은 것들을 백안시한다. 과정은 더 이상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다. 그래서 뭐가 됐는데, 그래서 어디에 사는데, 그래서 얼마나 돈이 많은데, 이 세 가지가 뼈대처럼 남았다. 뼈들이 포르셰를 타고 다닌다.
내가 마음이었을 때 남기고 싶은 것들을 생각했다. 어둠의 동굴에 새겨진 시 한 줄을 생각했다. 이 영화는 그런 자리를 마련해 놓고 사람을 부른다. 수학을 싫어해도 좋으니까 오라고 손짓한다. 박사는 소수를 사랑한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배우면서 끄덕였던 그 대목이다. 1과 자기 자신만을 약수로 가지는 특별한 수, 2, 3, 5, 7, 11, 13, 17, 19····. 그것으로도 충분했지만 역시 마음의 영역에서는 한 줄기 빛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소수는 고집쟁이야, 고결하고 순수해. 다른 것으로 나눠지지 않아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 나도 소수였을 텐데····23, 29, 31····. 나 같은 너를 본다. 소수가 걸어간다. 보기 좋다고 다시 생각한다. 절대적인 질서 속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순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박사가 사랑한 것들은 수학 공식이 아니라 삶이었다. 사고로 80분만 기억이 유지되는 삶에서 그를 도왔던 것은 그가 사랑한 소수 같은 사람들이었다. 소수 少數의 사람들이 아니라 소수 素數였다.
직선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신발 사이즈 24문은 4의 계승이며 전화번호 576 - 1455는 1에서 1억 사이에 있는 소수의 개수와 일치한다고 멋지게 기억한다. 박사에게 삶은 사람이었고 계란은 수학이었다. 계란으로 삶을 요리하고 대접한 셈이다. 조금 더 걷지요, 그러면 지금이 마음에 든다는 뜻이다. 그럴 때 바람이 분다. 삶 = 계란이어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10살 아이가 어두운 방에서 혼자 엄마를 기다리는데 어른인 내가 여기서 그 엄마가 챙겨주는 밥을 먹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초조해하는 순수 - 저 세상이야 싶었다. 그래야 보이는 것들, 숫자는 하나의 순수한 세계였고 순수는 박사의 삶이었다. 박사는 그렇게 가정부의 아들, 루트를 만난다. -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의 시가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것이 우연은 아니다. 그 시의 제목이 바로 Auguries Of Innocence, 순수의 전조다.
이런 매력, "자 보라고, 이 멋진 일련의 수를 말이야. 220의 약수의 함은 284. 284의 약수의 합은 220. 바로 우애수야. 쉬 존재하지 않는 한 쌍이지. 페르마도 데카르트도 겨우 한 쌍씩밖에 발견하지 못했어. 신의 주선으로 맺어진 숫자지, 아름답지 않은가? 자네 생일과 내 손목시계에 새겨진 숫자가 이렇게 멋진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니."
우애수를 한자로 쓴다. 友愛數, 숫자끼리도 인연을 찾아 먼 길을 떠도는 것 같아서 연필로 선을 그어주고 싶다. 슬슬 영화든 책이든 궁금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내 말을 확인하고 싶은 것도 안다. 어쩌면 봄이 달라 보일 수도 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인용했던 문장이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 한 송이의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 한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 and Eternity in an hour.
젊은 한 시절을 일본 동경에서 지내면서 나도 야구를 봤다. 고집이었을 것이다. 동경 사람들은 정말이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요미우리 자이언츠 팬이었다. 지역 연고지가 동경인 탓도 있지만 스타플레이어가 즐비한 구단이라 성적도 좋고 TV에서 중계도 맡아놓고 했다. 나는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아무 연고도 없는 오사카 한신 타이거즈를 응원했다. 30년이 다 지나는데도 한신의 이가와 투수를 기억한다. 9회 완투를 하고 1 대 0으로 요미우리를 이겼던 그 해 여름을 잊을 수 없다.
산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시작했던 것이 야구다. 집 옆에 그늘진 공터에서 테니스 공을 주고받았다. 상상이 될 것이다. 조그만 사내아이가 처음으로 공을 받으려고 할 때 어떻게 손을 벌리고 허공을 어떻게 담아내야 할지 몰라서 입이며 눈이 얼마나 활짝 열리는지, 그러고도 까르르까르르 때까치처럼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그게 좋아서, 나도 좋아서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 가기 전에 10분을 던지고 받고 던지고 받았다. 그렇게 아이가 자랐다. 박사와 꼬마 루트는 야구로 더욱 사이가 깊어진다. 나중에 꼬마는 수학 선생님이 되고 영화는 수업 첫날에 교단에 서서 루트가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수학을 어떻게 좋아하게 됐는지.
미혼모 엄마와 아들이 나오고 박사와 박사의 보호자가 나온다. 네 사람은 소수처럼 등장하지만 우애수가 되고 완전수도 된다. 완전수는 숫자 6처럼 자신을 제외한 약수들 - 1 + 2 + 3 -의 합으로 표시되는 숫자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는 일, 완전수를 찾는 일은 그런 일일 것이다. 6, 12, 28, 496····.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 있다. 저마다 세상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노래하는 시절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완전하다고 그러고 안전하다고 믿는다.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