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치 오브 스파이스
눈이 내릴 것 같냐고 묻는 아이의 눈망울이 선명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창을 흔들어 깨울 것 같다. 가을 끝에서 부는 바람은 무엇이 저렇게 절실할까. 11월에 내가 보고 싶어 했던 것은 저 하늘이었을 것이다. 빈 나뭇가지로도 가릴 수 없고 모자도 기억도 더는 따뜻해지지 않는 바람 속의 바람이 흐느끼는 잿빛 하늘.
열흘쯤 지났다. 그날 저녁에 집 가까운 공원에서 장미까지 보고 말았다. 과연 이래도 좋은 것인지 의문스럽고, 우리는 무엇을 포기하고 있으며 무엇이 포기되지 않는지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은 기후 변화와 온난화가 영화가 되고 화제가 되기도 하지만 곧 현실이 될 것이다. 이런 투로 말하는 것마저도 현실도피적이라는 것을 안다. 현실이 된다. 11월에도 여름 같다는 말이 잘 녹지 않는 사탕 같아서 그만 뱉어내고 집에 돌아왔다.
우리는 스스로 어떤 것들은 잘 모면하고 어떤 것들은 외면하며 위장한다. 감춘다. 영화, 터치 오브 스파이스는 감추지 못하는 것들을 손에 쥐고 상대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망울을 담은 영화다. 그 아이에게 향신료가 보이지 않듯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속삭이는 색깔 나는 러브 스토리다. 삶을 사랑하는 이들이 만든 장면들이 화면에 이어진다. 아주 긴 열차가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시간이었다. 열차가 지나가는 동안은 누구나 꿈을 꾸지 않던가.
종교가 없는 이에게, 살면서 종교와 인연이 닿지 않던 사람에게 어떤 말로 그대의 종교를 그대의 신앙을 보여줄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사람에게 당신은 믿음이 될 수 있을까.
터키, 지금은 투르키예가 된 나라 - 나는 영영 터키에 갈 수 없게됐다 -는 보석으로 들린다. 칠면조*는 겁쟁이라고 놀리더라도 어느 나라가 보석의 이름이 될 수 있을까. 투르키예는 용맹했을지 모르지만 푸른빛이 도는 신비는 없다. 터키, 1959년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59년이면 우리도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간인 것을 기억했다. 터키에 머물던 '파니스' 가족은 그리스로 강제 이주를 당한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안다. 태백산맥에서도 순이삼촌에서도 나왔던 말.
'이스탄불에서는 그리스 사람이라고 몰아내더니 그리스에서는 우리가 이스탄불에서 왔다고 믿지 않는다.'
향신료 가게를 운영하는 할아버지, 비실리스에게는 연금술사 같은 모습이 겹친다. 구리나 납 같은 것으로 황금을 만드는 그 비법을 할아버지는 삶에 적용시킨다. 그리고 손자 '파니스'에게 그것을 일러준다. 하늘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다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러셨듯 파니스를 대한다.
그런 파니스가 사랑한 여인, 어린 사이메는 나이가 들고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지만 그 말 한마디를 자신의 등대로 삼고 살아간다. 깊은 바다가 폭풍에 몸을 다 뒤집고 일어서서 고함지를 때도 그녀는 사이메로 남는다. 나는 오래 그녀의 말이며 파니스였던, 파니스면서 그녀였던 그 말을 입안에 넣고 굴렸다. 작아질 때까지 다 사라지고 내가 될 때까지.
'넌 요리를 해, 난 춤을 출게'
삶은 요리 하나를 배우는 일 아니었던가. 누구나 요리를 할 줄 안다. 재료를 구하는 일부터 깎고 다듬고 양념을 마련한다. 불을 피우는 것부터 어떤 불을 쓸 것인지, 물은 어디에서부터 흘렀던가. 그릇은, 접시는 그것들을 차려놓을 식탁은 또 꽃병에는 무슨 꽃을, 음악은 조명은 그리고 그리고 대화는.
요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뮤즈가 -날개 달린, 피터팬에 나오는 팅커벨 같을수록 좋다 - 있다. 연주하듯 춤추듯 살라고 자꾸 귀찮게 성가시게, 길을 안내하는 천사가 있다. 그대, 무엇을 오늘 요리할 거냐고 묻는다.
애피타이저를 처음 먹었던 날이 있었다. 가만 앞사람이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때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처음 먹은 애피타이저는 오감을 자극하기보다 감정을 찔렀다. 지금부터 식사를 즐기면 된다는 신호가 아니라 지금부터 곤란해질 것 같은 예감을 건넸다.
영화를 따라가면 메인 코스가 나온다. 우리를 어린 시절로 데려다주고 인심 좋은 요리사의 넉넉한 대접을 받으며 느긋하게 즐기면 된다고 소개한다. 내 메인 코스는 아마도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마음을 먹는다. 누군가의 메인 디쉬를 차려볼 생각이다. 문장으로, 분위기로, 하나의 영화 같은 삶으로.
눈을 보러 나갔다 온다고 했지만 사실 눈이 내리지 않았다. 눈이 올 것 같냐고 묻던 아이의 말에 아무 대답을 못해줘서 대신 바람을 맞으러 나왔다. 이 정도 바람이면 눈이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서 눈이 내린다고 아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눈이 내려, 눈이 예쁘게 온다.
한 시간쯤 공원을 다 돌고 돌아가는 길에 휴대폰이 울렸다. 아무래도 아이가 시인이 될 것 같아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꽃이 -바람 속에서- 피었다. 핑, 도는 것이 꼭 보석 같았다.
'저도 보여요, 선생님'
* 터키는 Turkey 칠면조라는 뜻도 있다. 칠면조는 영어 표현에서 겁쟁이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