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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 Oct 07. 2024

안녕, 응급실


 3월 20일 아침. 유일한 목표는 바지에 지리지 않는 거였다. 전날 마신 술로 요동치는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선 찰나였다. 무언가 뚝 끊어지는 느낌과 함께 쓰러지고 말았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에서 통증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지만 파도는 거세져만 갔다. 요통은 급기야 복통마저 집어삼켰다. 허리 통증이 얼마나 심한지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 등에 강철 빨대를 쑤셔 넣고 압축 공기를 불어넣는 것 같았다. 몸이 터질 것 같은 통증이 발작처럼 찾아왔다. 웬만한 아픔은 참는 편이건만 이번 건 그럴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악으로 깡으로 거실 식탁까지 기어 나와 며칠 전 지어온 약봉투를 떨어뜨려 근이완제와 진통제를 몇 개 뜯어 생으로 씹어 먹었다. 물을 마신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진통제를 생으로 씹어 먹으면 입과 혀에 마비가 온다는 걸 처음 알았다. 통증이 지나가길 기다렸으나 전혀 나아지지 않아 결국 119를 불렀다. ‘119에서 긴급구조를 위해 귀하의 휴대전화 위치를 조회하였습니다.’ ‘소방차량이 귀하께서 신고하신 장소로 출동하였습니다.’ 구급대원들은 애벌레처럼 뒤틀린 몸을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옮겨 주었다. 구급차가 흔들릴 때마다 쇠꼬챙이로 쑤시는 것 같았다. 엑스레이를 찍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온몸이 뒤틀리는 고통이건만 옴짝달싹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 링거를 맞으며 응급실에 누워 있으니 간호사 분이 심전도를 체크하고 혈압을 재고 간다. 일단 입원을 하고 다음날 MRI를 찍기로 했다. 전화를 받고 달려온 친구가 입에다 부어주는 물이 어찌나 달콤한지 생수가 꿀물 같았다. 파도에 휩쓸린 해초처럼 이리저리 움직여 마침내 병실에 도착했다. 


 응급실에 온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은 교통사고였다. 골목길에서 튀어나온 승용차에 치여 4차선으로 튕겨 날아갔다. 그때 트럭이 급정거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도 못했겠지. 다행히 응급실 검사에서 별 이상은 없었다. 두 번째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구급대원들이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끝내 깨어나지 못하셨다. 아버지에게 사망 선고를 내렸던 병원에 입원해 누워 있으려니 만감이 교차한다. 그렇지만 이것도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가. 슬픔이건 걱정이건 뭐라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옷에 변을 지리지 않고 참아낸 내가 자랑스럽다. 목을 축인 물 한 모금에 행복했다. 배가 고픈 것도 살아있기에 느끼는 거다. 보험 처리를 어찌할까 고민하는 것도 살아있기에 할 수 있는 거다. 내게 달려와 준 구급대원들에게 고맙다. 진통제를 놓아준 간호사에게 고맙다. 병원에 와준 친구와 어머니가 있어 든든하다. 화장실조차 가지 못하는 무력한 상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마음만은 잃지 않았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그래서 아픈 거다. 나는 재활하고 회복할 것이다. 내 손으로 물을 마시고 밥을 먹을 것이다. 두 발로 화장실에 갈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을 승리로 삼을 것이며 기쁨으로 누릴 것이다. 운명은 나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내 인생의 디폴트값은 감사다. 죽을 만큼 아파봤기에 배웠다. 죽으려 들 만큼 괴로웠던 적이 있기에 깨달았다. 그저 살아있음이 기적임을 안다. 참을 수 있을 정도의 고통은 삶의 기쁨을 빼앗지 못하며 참을 수 없는 고통이라면 타인의 시선 따위 상관없으니 부끄러울 틈이 없다. 이것 또한 지나갈 테니. 이것 또한 이야기가 될 테니까. 한 다리가 고장 나면 남은 다리가 있음에 감사해야지. 두 다리가 고장 나면 아직 목이 붙어 있음에 감사해야지. 목마저 달아나면 더 이상 고통은 없을 테니까. 누구나 아픔에 머물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곳에 핀 꽃을 발견하는 이가 있다. 누구나 슬픔에 잠길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별자리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병원비를 검색하는데 오늘이 국제 행복의 날이란다. 그래, 행복은 이곳에도 있다. 진통제를 맞으며 버티는 오늘밤도 내게는 행복이다. 지금의 내겐 양치질이 호사고 샤워는 사치다. 따뜻한 밥 한 끼가 꿈이다. 아픔과 슬픔은 사람을 뾰족하게 만들지만 삶을 반짝이게 만드는 재료이기도 하니까. 감사를 메인 메뉴로 삼고 유머를 곁들이는 거다. 뜻밖의 다이어트로 살도 좀 빠질 테지. 비록 오늘 나의 세상은 병원 침대 크기에 불과하지만 생은 지금도 나아가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생에 가장 멋진 여행이 될 거다.     


 그렇게 시작된 병원 생활. 둘째 날 내겐 수면 안대와 이어폰, 칫솔이 생겼다. 어머니가 먹여주는 밥을 아이처럼 받아먹었다. 셋째 날 미션은 내 손으로 씻는 일이었다. 한 손으로 벽을 짚고 부들거리며 머리를 감고 면도를 해냈다. 넷째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신경약이 하나 추가 되었고 어머니가 싸 오신 머위 잎으로 봄을 맛보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며칠 사이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평소라면 잠들 시간에 아침을 먹는다. 넷째 날에는 신경 차단 시술을 받았다. 주사 기운이 돌자 잠깐이나마 앉을 수 있었다. 행복이 별 건가. 자기 손으로 밥을 먹는 게 행복이지. 수건으로나마 몸을 닦을 수 있으니 기쁨이지. 어쩜 네 인생은 이렇게나 파란만장하냐고 엄마는 말씀하셨지만 그렇지 않은 삶이 어디 있을까. 어떤 파도가 밀려오든 나를 감싸 안은 감사의 부력이 있으니 가라앉지 않으리라. 어디로 가도 나는 삶의 기쁨을 찾아내리라. 두 발로 설 수 있는 것만으로도 끝내주는 선물이 될 거다. 두 손으로 밥을 먹는 것은 말도 안 될 정도의 축복이 될 거다. 일상이란 이름의 기적을 껴안을 것이다. 삶이 끝날 때까지 새로운 세상과 마주할 것이다. 아기처럼 보행기를 타고 다니는 동안에도 구급차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장례식장에서는 관이 실려 나간다. 살아내려는 사람과 살아낸 사람들의 교차로를 의사와 간호사들이 바삐 돌아다니며 지킨다. 이곳에도 삶이 있다. 이곳도 내 삶의 일부다. 지금 벚꽃이 피고 있겠구나. 지금도 꽃이겠구나. 활짝 핀 꽃 못 보면 어때서. 내 삶을 피우느라 바빠서 그런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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