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 Oct 09. 2024

안녕, 아빠


 당신이 남긴 유산은 작은 화장품 상자 하나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마치 세상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수현이 결혼식 청첩장이 있네요.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항상 웃음 가득한 화목한 가정이었다고,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이겨냈고, 이겨내고 있다고, 건강을 챙겨 우리가 효도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하네요. 다시 한번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부탁하고 있네요. 오래된 휴대폰과 삐삐. 아들과 딸의 명함. 94년도에 딴 택시 면허증과 도장이 당신이 남긴 전부입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새 4년입니다. 그날 새벽 엄마의 목소리와 구급대원들의 다급한 몸짓은 결코 희미해지지 않을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지금도 저는 구급차 소리가 들릴 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누군지 모를 그가 부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손을 모읍니다. 


 당신을 아빠라 부른 기억은 없습니다. 그런 적이 있었다 해도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네요. 아버지를 아빠라 부르면 더 자란 아이 취급받던 시절이었고 그런 동네였으니까요.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면 참 살가웠는데 우리는 언제부터 서먹한 사이가 되었던 걸까요. 얼마 전 이십 년 만에 목욕탕에 다녀왔습니다. 낯설지만 친근한 풍경 속에서 타인의 것 같은 지난날을 떠올렸습니다. 뭐가 그리 바빠 탕에 몸 한번 담글 시간이 없었을까요. 그때는 냉장고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는데 자판기가 생겼더군요. 젊은 아버지 하나가 아들을 데리고 왔더군요. 그 모습을 보니 당신의 손을 잡고 목욕탕에 가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택시 운전을 나가기 전 한 손에는 목욕 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아들의 손을 잡고 걷던 새벽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목욕탕에 뜨거운 물을 채우던 당신. 부드러운 수건으로 어린 내 몸을 닦아주던 커다랗고 따스한 손이 기억났습니다. 어린 아들이 당신의 등을 밀어줄 때 당신은 분명 행복했겠지요. 사춘기를 지나며 당신을 미워했습니다. 가난한 삶을 준 당신을 원망했습니다. 노름을 끊지 못한 당신을 증오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따돌림당하고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던 그때의 제게는 그러한 대상이 필요했으니까요. 물론 당신도 그렇게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겠죠. 그래서 당신을 통영으로 데려온 형을 원망하고 더러운 세상을 욕했던 것일 테지요. 


 당신이 세상을 떠나고 당신에 대한 미움마저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아쉬움도, 한숨도, 눈물도 그저 사랑이 되었습니다. 그저 당신과의 추억만이 남았습니다. 당신이 물려준 것은 빚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린 나무에 칼자국을 새기면 그대로 자라듯 아무리 반항해도 아들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았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나 봅니다. 신념이라기에는 거창하지만 습관이라 부르기에는 무서운 흔적이 제게 남았습니다. 당신은 남자는 아픈 걸 참아야 한다고 했었죠. 그래서 저는 뼈가 부러져도 참을 수 있는 남자로 자랐습니다. 당신은 음주 운전을 하는 인간은 살인자라고 했었죠. 그래서 저는 아직도 면허를 따지 않았습니다. 설사 면허를 땄다 해도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당신은 쌀 한 톨도 남기지 않는 사람이었죠. 사과는 씨만 남기고 모두 먹었고 닭 한 마리를 시켜도 그야말로 뼈만 빼고 다 먹게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음식을 남기는 것을 죄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거짓말을 죄악이라 했었죠. 다른 건 용서해도 거짓말만은 그럴 수 없다고 했었습니다. 나 역시 그러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타인의 거짓은 너그러이 용서하려 한다는 정도일까요. 그저 제 자신을 속이는 사람만은 되지 않으려 합니다. 


 기억나시나요. 당신이 제초제를 마시고 제가 손목을 그었던 그해 겨울 말입니다. 어느 날인가 당신과 함께 유람선 패드를 고치는 일을 하러 갔었죠. 그때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요. 내게 주어진 시간을 모두 살아내고 나면 말해주실 건가요. 그때는 당신을 이해한다는 나의 말을 믿어주실 건가요. 아파트로 이사하고 싶다며 전세 얻을 돈을 빌려달라던 당신을 기억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명의라도 해달라고 하셨죠. 그날이 마침 어버이날이었지요. 그때의 저는 해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준비한 것은 용돈 봉투뿐이었고 제가 바랐던 것은 당신과 함께 따뜻한 저녁 한 끼를 먹는 것뿐이었으니까요. 사는 내내 셋집을 전전하던 아들이 비로소 자리를 잡고 결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무언가를 해주기는커녕 선물을 바라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십 년이 넘은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생의 말년이나마 마음 편히 살아보고 싶었던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기에 완곡히 돌려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주공아파트 작은 방 한 칸을 빌려 월세 15만 원을 내고 살고 있었습니다. 돈을 아껴 어떻게든 전세 하나라도 구해보려 했습니다. 집이나 혼수 따위 바란 적도 없었습니다. 

 이제 다시는 보지 말자는 당신의 말에 밖으로 뛰쳐나가 아이처럼 울었습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따돌림을 당했던 어린아이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언어에 있어서만은 천재 소리를 들었지만 일찌감치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때로 돌아가면 그 말을 다시 하실 건가요? 지금도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결혼을 약속했던 그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렸을 때 온몸을 뜯으며 울부짖던 당신을 기억합니다. 아그. 아그. 울 아그 외치며 울던 당신에게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마디 말도 없이 울음만으로 채워졌던 밤을 기억합니다. 아들이 꿈꾸던 내일이 사라졌을 때 당신의 희망도 무너졌겠지요. 당신이 딸처럼 아끼던 그녀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웠겠지요. 왜 그토록 나를 밀어냈던 건가요. 꼭 그래야만 했던 건가요.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자식들에게 평생의 아픔을 남기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당신의 죄책감은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컸던 건가요? 지금이야 당신의 선택이 마음을 편하게 했더라면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혼자인 것이 편했다면 다행이라 여깁니다. 모두를 밀어내며 살아낸 당신의 날들이 슬픔으로만 가득하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이제 저도 조금은 세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아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따스했던 순간의 추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을 안고 용두산 공원을 올랐던 날에도, 딸아이를 안고 남망산 공원을 올랐던 날에도, 제 어린 시절의 당신은 언제나 웃는 모습입니다. 당신이 몰던 택시를 타고 소풍을 가던 날들,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목욕탕에 들어서던 순간, 아들의 첫 월급으로 받은 선물과 딸아이가 건넨 편지가 당신을 살게 하는 힘이 되었을 거라 믿습니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었을 테지요. 당신에게도 청춘의 나날이 있었으며 설레는 첫사랑의 추억이 있었을 테니까요. 당신을 지켜준 아내가 있었고 사랑스러운 손자들도 보았으니 당신의 삶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고 믿습니다. 아마 당신이 이런 제 말을 듣는다면 고작 마흔밖에 되지 않았으면서 무엇을 아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좀 더 살아야겠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난 나이보다 오래 살려 애써야겠습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이 끝나고 나면 다시 만납시다. 그때 남은 이야기를 계속해 봅시다. 


 아버지, 가난과 빚만 남겼다고 생각했었지만 당신은 내게 삶이라는 선물을 주었습니다. 당신은 세상이라는 유산을 내게 남겼습니다. 고통스러운 시절이 있었지만 그래서 단단해질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한 남자로서의 당신은 이해합니다. 당신과 나는 달라서 서로 밀어낸 것이 아니라 너무도 닮았기에 그랬던 겁니다. 마치 자석의 같은 극처럼 말이죠. 우리가 다시 만나면 할 말이 무척 많을 겁니다. 당신은 비밀이 많은 남자였으니까요. 아니, 이제야 제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건지도 모르겠네요.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따지고 싶은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당신을 안아주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때는 아빠,라고 다시 한번 부를지도 모릅니다.   

이전 03화 안녕, 응급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