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랄 맞은 하얀 세상
눈이 온다고 지난 사랑을 떠올리는 건
배송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어쩌면 사치일까.
밤에 눈이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배송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톤 화물차도 꼴에 화물차라고
눈길에는 더 미끄럽고 운행이 불안정합니다.
큰 길이야 제설차가 다니며
염화칼슘을 뿌려 놨을 거니까 괜찮은데
골목은 해가 나서 다 녹을 때까지는
오랜 시간 빙판길이 이어집니다.
더 문제는 사무실 창고 앞을 제설해야 하고,
큰길까지 나가는 도로가 위험해지는 거죠.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도로에 쌓인 눈이
결빙이 되었을까 걱정부터 하면서
창밖의 풍경을 확인하는 게 우습게 느껴집니다.
그러고 보면 눈은 언제나 반갑지 않은 손님입니다.
눈이 오면 첫사랑을 떠올리던 마음,
지난 사랑의 그리움을 잠시 품어보던 여유가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마음이 사라진 걸까,
아니면 살아내느라 여유를 잃어버린 걸까
문득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됩니다.
살아내는 하루가 고단해지고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지는 나이가 되면서
눈 내리는 풍경조차 일의 무게가 되었습니다.
비단 저만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이 땅의 모든 노동자가 그런 마음일 겁니다.
아니, 이 땅의 모든 분들이 같은 마음일 겁니다.
기계를 만지고, 먼 길을 운전하고,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며
오늘도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든 분들께
부디 안전하고 따뜻한 환경이 함께하기를
두 손 모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그래도 잠시 하얀 세상을 돌아보고
옛날 그 시절의 추억에 잠겨 보는 것도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온기가 될 겁니다.
그 작은 온기가 우리의 마음에
포근한 자리 하나씩 남겨두기를 바라봅니다.
'그나저나 출근하면 넉가래부터 꺼내야겠네..
눈이 오든 안 오든 출근하기 싫은 건 한결같고... ㅋㅋ'
모두, 안전하고 포근한 하루를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