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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붐 Mar 12. 2024

어떤 산행

보물, 요강, 정상

 오늘 나는 할아버지를 산에 모시고 간다. 우리가 자주 가던 그 산 정상의 구석에는 밧줄을 묶기 좋은 나무와 바위가 있다. 워낙 구석진 곳이라 다른 사람들이 발견할 확률도 없을 것이다. 이게 우리가 함께하는 마지막 산행일 것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할아버지와 함께 산에 가는 걸 한평생 좋아했다.

내가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뒷산에 등산을 가셨다. 말이 뒷산이지 꽤 큰 산이어서 네개의 동에 걸쳐져있는 산세를 자랑했다.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눈 떴다 하면 신발을 신고 나가시던 할아버지를 좇아 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곤 했다. 그 시절, 할아버지는 이제 막 정년 퇴임을 하셨고,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할아버지에게 소장님 소장님 하며 깍듯이 대하고는 했다. 그 다음 수순은 아직 콧물 냄새가 나는 어린 아이가 산을 잘도 좇아온다는 칭찬이었다. 


그 시절 낑낑대며 산을 오르던 내 앞에 저만치 먼저 가 기다리시던 할아버지는 내게 거대한 존재였다. 할아버지 앞에서는 누구도 큰소리 내지도 않았으며 매일같이 산을 날다람쥐 처럼 다닐 만큼 건강하셨으니까. 저 멀리서 지켜보다 도움이 필요할 성 싶을 때면 한달음에 달려와 조용히 도와주고는 하셨으니까. 그 즈음 할아버지와 함께 나서는 날의 하늘은 비가 와도 맑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늘이 참 푸르렀다. 매 해 15cm씩 자라던 손자를 앞에 세우며 웃음지었다. 늘 산에 좇아다니던 손자를 사람들에게 보물 자랑하듯 소개하던 할아버지의 얼굴 또한 더없이 맑았다. 할아버지의 맑고 장엄한 그늘 아래서 행복이라는 열매를 주워먹는 작은 산짐승인 양, 나는 뛰놀았다. 할아버지는 늘 건강했다. 감기도 한번 걸리지 않았다. 그런 할아버지는 올해 90세가 됐다. 팔순을 넘긴 어느 시점에서인가부터 할아버지가 작아진 느낌을 느꼈다. 매 명절에 찾아뵐 때 마다 할아버지는 자꾸, 자꾸만 작아져가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일 거라고, 할아버지도 이제 연세가 많으시니 괜히 기분 상 그래 보이는 것이라고 되뇌였지만 보름달이 내일이면 작아지는 여정을 시작하듯,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듯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급기야 할아버지는 이제 막 14살이 된 늦둥이 사촌 동생인 하늘이와 키가 비슷해졌다. 언제나 할아지를 떠올릴 때면 팔척 장신에 장수 같은 이미지를 마음 속에 품었다. 노화는 거부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우리 뒤에 숨어있는 명징하고 서슬퍼런 사실이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물건들을 끌어안기 시작했다. 모두가 잠든 밤에. 그러고는 잠에서 깨어나면 그 무엇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침의 반복. 마치 형용할 수 없고 내용을 말하려 하면 기억이 사라지는 꿈이라도 꾼 사람 처럼. 간밤에 숱하게 찾아오는 배뇨감에 결국 요강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신 지 육 개월 즈음이 됐을 무렵, 할아버지는 자신의 소변이 들어있는, 간혹 대변도 들어있곤 하는 그 요강을 잠결에 끌어안기 시작했다. 처음 한 두번 그러다 마시겠지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요강을 돌아가신 할머니라도 되는 듯 끌어안았다. 저번 주에 한 번 하셨으면 이번 주에는 그러시지 않다가도 점점 빈도가 좁혀졌다. 대소변을 주기적이고 상습적으로 뒤집어 쓰는 방 바닥에서는 닦아도 닦아도 이미 배어버린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가실 날이 없었다. 온 집안의 옷가지에서도 고릿고릿한 변 내음이 맡아지는 것 같았다. 거의 매일같이 이어지는 요강과의 전투가 두달 째 계속되고 있다. 내가 우러러보던 할아버지를 하루만이라도, 아니 한번만이라도 다시 뵙고싶다. 때로 어린아이 같고, 때로는 짐승 같은 행동만을 일삼는 지금의 할아버지, 내 삶의 큰 나무 그늘인 할아버지가 허물어져 가는 걸 보는 건 가슴 속에서 영원히 굳건할 것 같던 배를 반복해 침몰시키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의 하루가 단 한번이라도 정상적으로 돌아갔으면. 다시 한번만 나를 그 그늘 아래 품어주셨으면. 이미 걸레짝이 된 마음에서 땟국물을 쥐어짜내듯,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오랜만에 단어 세개 뽑아 글쓰기를 했습니다. 왜인지 단어만 정해지면 내가 일부 또는 많이 섞인, 또 나의 일부 중 무엇인가가 어느 방향으로 많이 기울어진 글이 나오곤 합니다. 요즘 도통 글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쓰기의 감각을 놓지 말아야겠습니다. 이번 주말엔 할아버지 댁에 다녀오려 합니다. 할아버지는 고급 과일이라며 체리를 좋아하시는데, 체리를 사가면 미세하게 입꼬리가 올라가시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할아버지는 글과 달리 여전히 매우 건강하시고, 정말 오래도록 그렇게 계셔 주셨으면 하고 바랍니다. 

어디에선가 통계를 낸 것을 본 적이 있는데요, 설과 추석 등 연휴가 지나고 머지 않아 다른 차원의 세계로 넘어가시는 어르신들이 꽤 된다는 통계였습니다. 가족들과 만나는 것을 의지를 가지고 기다리시다가 그게 지나간 뒤라서 일까요. 설 연휴가 한달 즈음 지나간 지금 즈음, 소홀했던 연락과 방문을 하기에 가장 좋을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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