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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Jun 19. 2024

50만 원 내고 정신과에서 받는 종합심리검사는 다를까?

<14화-부모님이 더 이상 자식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4년간 3곳의 정신과를 다닌 끝에 조울병(양극성 정동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꾸준한 치료로 현재는 많이 회복되었고 스스로를 탐구하고 싶어 심리학도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듣고, 느끼고, 생각한 걸 기록하고자 합니다.


종합심리검사(Full Battery 검사)는 개인의 심리적 상태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다양한 검사 도구를 사용하는 포괄적인 심리 평가입니다. 이 검사는 인지 기능, 성격 특성, 정서 상태 등을 다각도로 분석하여 전반적인 정신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진단 및 치료 계획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서른일곱 번째 진료-(23.10.06 금요일)

6월의 어느 날 어머니가 갑자기 물으셨다. “정신과 진료를 받은 지도 이제 반년이 넘었는데 혹시 같이 정신과 가 볼 수 있겠니? 부모 입장으로서 아들이 요즘 어떤 상태인지, 치료는 어떻게 되는지 듣고 싶네. 정신과에 전화해 보니 성인은 본인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물어봐” 이 질문에 흔쾌히 같이 가자고 했다. 정신과 다니는 게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부모님의 입장으로서 아들이 계속 정신과 약 먹고 진료받는데 궁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같이 정신과에 갔지만 면담은 따로 진행하였다. 부모님은 굉장히 긴 시간 면담을 진행했다. 거의 4~50분 가까운 시간을 주치의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대화 내용은 무엇인지 모른다. 다만 핵심은 대화가 끝나고였다. 갑자기 어머니가 데스크에 가더니 심리검사 비용에 대해 물으시고 5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을 결제하셨다. ‘응? 왜 갑자기 심리검사를 진행하지?’ 너무 급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의아해서 어머니께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주치의 선생님이랑 대화를 하다 보니 새로운 심리검사(풀 배터리 검사/full battery)를 진행하자고 하셨어.  지난번에 다른 정신과에서 심리검사를 했지만 6개월 이상 진료하면서 관찰해 보니 그 검사에 빠진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


2주 뒤, 5시간에 걸친 검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한 여름 7월에 검사를 했는데  결과는 거의 3개월 후 10월의  어느 가을날 나왔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게 명확해지면 내 삶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왜 아픈지 도저히 이해가 잘 안 되었다. 안 아픈 게 아니었다. 분명히 아팠다. 그런데 왜 그토록 좌절하고, 절망하고, 슬퍼하고, 우울한지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돼서 이런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됐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신 것도 아니고, 성장과정에서 학대를 받은 것도 아니고, 누군가 나의 꿈을 막은 적도 없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나를 삶의 끝자락으로 밀어붙였는지 나 스스로도 이해가 안됐다.


한 번은 너무 혼란스러운 나머지 주치의 선생님에게 이런 이야기도 했다.


“선생님 빨리 그냥 아무런 병명이나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더 이상 스스로 혼란스러워하지 않아도 되니깐요 “

”00 씨. 지금 그건 잘못된 사고예요. 병을 가진다는 건 굉장히 고통스러운 것을 의미해요. 지금 보다 더 나쁜 상황을요 “


조급함과 초조함을 안고 기다린 끝에  결과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뻤다. 부모님도 같이 듣고 싶다고 하셔서 함께 검사 결과를 들으러 들어갔다. 검사결과를 들으면서 입가에 미소는 사라졌다. 과거에 다른 정신과에서 심리검사를 받고 결과를 들었을 때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느낌이냐면, 나는 나름 내가 아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는데 누군가가 ‘네가 살아온 삶은 틀렸어’라고 철퇴를 내리는 것이다.  이번에는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보다는 ‘앞으로 나는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부모님과 같이 들어가 주치의 선생님 앞에 앉으니 검사 결과지를 토대로 지금의 상황을 이야기해 주셨다.


사회적응능력(SMS)

피검자의 전반적인 사회적응능력과 사회적 성숙도를 살펴보기 위하여 SMS(사회성숙도검사)를 실시하였으며, 22세 8개월의 생활연령에 해당하는 피검자의 경우 추정되는 사회연령(SA)은 20세 수준에 해당하는 것으로 평가되었고, 추정 사회지능(SQ)은 88로서 평균 하 수준의 사회지능을 보이는 것으로 평가되었음. 이는 피검자에게 실시한 지능검사결과에 비해서는 다소 낮은 수준의 결과이며, 지능 검사의 해석결과에서의 지적능력에 비해 사회화, 직업등의 사회생활능력은 기능적인 면에서는 평균 하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료됨.

“지금 이 부분을 보시면 00 씨의 사회적 지능이 일반 지능에 비해 현저하게 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지금 일반지능은 굉장히 높게 나왔거든요. 정말 2 자릿수 나오는 것도 부지기수인데 이 정도면 정말 높은 수치예요. 그런데 이것과 비교했을 때 사회적 지능은 너무 낮아요. 지금은 괜찮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떨어져도 일상생활에 불편을 끼칠 장애만큼 심각해질 수도 있어요. 이 부분을 명심해야 합니다. ”


“Rorchach/ 지각(perception) 및 사고(thought)적인 측면”

현실 도피 및 회피, 경직된 사고, 과도한/내재된 분노감과 공격성, 양가감정, 충족되지 못한 애정욕구, 미숙하고 미성숙한 사고, 인정욕구, 우울한 정서.
“전체를 보지 못하고 특정 부분에 집착하거나 현실을 파악하기보다는 환상이나 공상에 빠져 있어 행동의 결과를 예상하는 능력과 적절한 행동의 경계를 유지하는 능력이 방해를 받고 있는 것으로 사료됨. 친민감을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소외된 느낌을 갖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사랑받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를 지니는 것으로 보임. 의사 결정하고 문제 해결을 시도할 때 일차적으로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대처능력이 부족하여 효율적인 대처행동을 하지 못하여 불안, 긴장, 불편감 등을 경험할 수 있음. 이러한 상황들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해소하지 못하여 사회적, 정서적으로 위축되며 적절한 정서표현을 해야 할 때 하지 못한 것으로 사료됨.”
“하고 하는 것 한 가지에 몰두하지만 시야와 주의의 초점이 좁기 때문에 생활에 관해 원하지 않는 일이나 위협적인 상황으로 인식해서 생기는 정서적인 혼란을 겪을 수 있고 대처하고 해결능력이 부족할 수 있음. 또한 불확실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인내력이 부족할 수 있음. 과도하게 성취를 원하고 시도하지만 능력이 부족하여 좌절이 반복되어 자기 반추와 불편감을 경험하는 것으로 보이며 주지화, 회피 등의 방어기제를 보이는 것으로 사료됨.”


“MMPI”

“평상시에 꼼꼼하고 치밀하게 생활하지만 다소 융통성이 부족할 수 있으며 불안하고 초조하여 주의 집중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음. 강박적 사고와 행동을 보이며 자신의 사고와 감정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에 대해 극심한 불안을 경험할 수 있음. 어떤 일이든 자기와 관련지어 받아들이고 남들이 자신을 비난하거나 싫어하는 것에 대해 반복적으로 생각함. 고모가 돌아가셨지만, 상황에 맞지 않게 기쁨을 느꼈다는 등 비현실적인 감각경험을 할 수 있고 주위환경과 사건들로 인하여 자기비판을 반복적으로 하며 심한 경우 죄책감을 가질 수 있음. 또한, 사고를 하면서 상상과 공상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비현실적인 사고와 행동을 보일 수 있음.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사소통에 곤란을 겪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임. 남들의 제안이나 조언에 대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사소한 좌절에도 쉽게 짜증을 느끼며 삶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어려울 수 있음. 성격적으로 위축되어 있고 현실 회피적일 수 있음. 심리적인 문제에 대하여 인식하고 인정하지만, 갈등의 성질로 만성적이고 방어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음‘


“K-EPS”

“구체적으로 N의 척도가 상승하는 경우 평소 심리적 고통과 신체화를 자주 호소하는 경향이 있으며, 기분의 변화가 심하여 쉽게 불안해지고 우울을 경험하는 경향이 있겠음. 사고적인 면에서는 강직하고 완고하며, 비합리적인 성향이 있고, 자존감이 낮은 편이겠음. 또한 타인 앞에서 수줍음이 많고 항상 긴장되어 있으며, 사소한 스트레스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겠음. “
“Ven의 상승을 보이는 경우 모험과 위험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고, 일에 착수하기 전에 심사숙고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때문에 일을 얼떨결에 처리하는 경향이 높다. 후에 발뺌하고 싶은 일에 자주 관연하게 되고 일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무계획적으로 신속하게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을 수 있겠음”

“이 부분이 이제 중요한 거예요. 앞으로 00 씨가 살아가면서 유의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고요. 내가 저지른 일인데 내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일이 흘러갈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어떤 일을 선택하고 실행할 때 한번 더 신중히 생각해봐야 할 거예요”


“HTP”

피검자에게 실시한 HTP 검사에서 필압, 위치, 형태, 묘사 수준 등을 살펴볼 때 대체로 양호한 수준의 묘사 수준을 보이고 있으나 집의 표현을 살펴볼 때 사회적 관계 발달에서 미성숙하거나 소외되었을 가능성이 있음. 나무 표현을 살펴볼 때 충동성, 과도한 자신감,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현실에 대한 불만족감이 있는 것으로 사료됨. 피검자는 타인과 교류와 관계형성에 대한 욕구는 있으나 과거 학창 시절부터 경험하여 왔던 단체생활에서의 불편감과 지속적인 관계 유지 어려움 등 부정적 경험으로 인하여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충동적이고 과도한 자신감으로 새로운 일을 도전하고 경험하지만 자신이 생각한 현실과 다른 것을 느끼고 좌절감과 불안을 느껴 회피, 주지화 등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는 것으로 보임.

“지금까지 검사 결과에서 계속되게 나타나는 게 ‘자기애’에요. 지금 00 씨 스스로를 굉장히 거대하고 바라보고 남들과 다른 우월성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것이 성격장애가 되면 ‘자기애성 성격장애’라고 부르는데요. 00 씨에게 지금 이 성격장애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굉장히 큰 결핍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 결핍을 건강한 방법으로 채우지 못하니깐, 거대한 허상의 자기애로 꾸며낸 것이죠. 이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결핍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하고, 이를 건강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요약 및 제언”

피검자는 증상과 갈등상황을 알고 인전 하지만 직접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음. 자신의 증상과 고통을 불리한 것들이 발생하면 이차적 심리적 이득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음. 그로 인해 증상을 과장하게 보고하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임. 또한 주지화와 회피 방어기제로 자신을 감추는 것 같은 모습을 보임. 부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어린 시절 가정환경에서 보상경험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방어기제가 적절하게 형성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임. (…) 부정적 경험들이 반복되어 환경과 대인관계에서 좌절을 경험하기 전에 거리를 두거나, 회피하여 방어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음. 가족이나 호감이 있는 인물에게 관심을 원하며 부적절한 자기 연민으로 주위에서 자신이 힘들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원하여 타인을 지나치게 힘들게 할 수 있음. 지적능력은 평균 상으로 우수한 수준으로 보이지만 상황 대처, 문제 해결 능력이 기능에 비해 다소 부족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됨.(…) 현실검증력과 사고과 비정상적일 수 있으며 강박적 사고와 행동을 보일 수 있음. 자신의 사고와 감정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에 대해 극심한 불안을 경험할 수 있음. 타인의 조언이나 제언에 대해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여 검사와 치료에 방어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인내력이 부족하여 사소한 좌절에도 쉽게 짜증을 느끼며 삶의 즐거움을 찾기 어려울 수 있음.”


“00 씨도 잘 들어요. 어머님, 아버님 지금 00씨의 병명은 조울병, Bipolar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의 감정과 사고가 10~30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면 지금 00 씨는 0~100 사이를 오고 가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 과도한 이상을 가지고 어떤 일을 시도했는데 그것이 안 될 때 엄청난 좌절감을 가지고 우울감을 겪는 것이고요.”


“그러면 선생님. 부모인 저희가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언제쯤 완치가 되는 거죠?”


“정신과 특성상 완치라는 개념은 사실 잘 없습니다. 외과처럼 살을 도려내서 말끔히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다만 본인이 자신을 알아차리고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고 봅니다. 이전에 제가 치료했던 환자를 예를 들자면 점차 회복되어서 진료 사이 기간도 길어지고, 약 처방도 중단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신의 상태가 안 좋으면, 본인이 이걸 인지하고 병원에 내원해서 면담하고 약 처방을 받았습니다. ‘아 내가 지금 아픈 상태이구나. 이럴 때는 이렇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를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죠.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완치의 개념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이제 더 이상 00 씨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성인이 아니고 중, 고등학생이라면 부모님의 지원이 필요하지만 이제 성인인 00 씨는 주체적 객체로서 스스로 자신이 헤쳐나가야 합니다. 자신이 선택하고 경험하고 그 속에서 책임지는 걸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부모님은 그저 옆에서 지켜봐 주시기만 하면 되고요.  앞으로 더 많은 상황에, 더 많은 인간관계에, 더 많은 갈등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마다 부모님이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니니 스스로의 힘을 지금부터 키울 수밖에 없는 것이죠. “


진료실 문을 열고 나왔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공기가 달랐다. 느낌이 너무 이상했다. 분명히 내가 듣고 싶었던 검사 결과를 들었는데 왜 이런 감정이 들까.


(다음화에 이어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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