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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공원 Oct 24. 2020

진짜 산(山)책

길을 잃는 재능

저는 집에서 5분이면 바로 산에 갈 수 있는 서울의 높은 언덕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30분 정도 바람을 쐬러 가벼운 차림으로 뒷산에 왔다가 활짝 핀 코스모스 꽃에 이끌려 걷다 보니 길을 잃고 뱅글뱅글 결국 두어 시간을 걸었습니다. 저는 사실 심각할 정도로 방향감각이 없는 데다가(어린 시절에는 오른쪽 왼쪽을 헷갈려해서 신발을 반대로 신고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즉흥적인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혼자 길을 나서면 이런 일이 종종 생깁니다. 산책을 가끔 해서 다행이지요.


그날도 산에서 경로를 이탈하는 바람에 예상과 다른 곳에 도착한 저는 낯선 동네의 골목을 구경하다 문득 '이런 게 진짜 산책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제야 머릿속에 있었던 생각이 사라지고, 지금 걷고 있는 이 길과 풍경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었거든요. 길을 헤매고 돌아가야 비로소 시작되는 진짜 산책.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산책에 대해 "적어도 하루에 4시간씩 모든 세상사를 잊고 숲과 산들을 거닐지 않으면 건강과 활기를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하루종일 집안에서 일과 생활을 하는 실내형 인간인 저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뭘 이렇게까지...'라고 생각했지만, 본의 아니게 조금 긴 산책을 한 후에는 그의 말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인들이 서너 시간씩 산책할 여유를 갖기란 쉽지 않은데, 이렇게 길을 잃는 것도 재능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특별한 목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걷는 걸음은 일상 속에서 짧은 여행을 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어딜 가나 스마트폰으로 가는 길을 미리 볼 수 있어서 길을 잃거나 돌아가는 경우가 드물지요. 편리하긴 하지만 그만큼 뭔가를 잃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헤매지 않으면 모두 같은 것만 보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저는 게을러서 목적 없이 길을 나서는 일이 드물긴 하지만, 길을 잃는 재능 덕에 목적을 잊고 걷는 호사를 종종 누리곤 합니다. 저는 “헛걸음은 내겐 산책과 같아”라는 노래 가사를 좋아하는데요, 일상을 여행하는 법은 이런 헛걸음을 좀 더 많이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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