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과 그림책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작가의 목소리로 나눕니다.
글 고픈날에는 브런치에서, 이야기가 필요한 날엔 팟캐스트에서 만나요
우리에게 친숙한 CM송이 있습니다. 눈 앞에 이 노래의 첫 소절 가사만 띄워줘도 모두 한 목소리로 흥얼 거릴 정도죠. 단 세줄로 이뤄진 이 노래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그냥 바라보면. 마음 속에 있다는 걸."
'한국인의 정'으로 대변되는 우리나라의 오래된 간식, 초코파이 광고에 등장하는 노래죠. 이 노래 전반에는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우린 친구니까', '오랫동안 함께 했으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척하면 척'하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요. 서양 문화와는 달리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눈치껏 분위기와 맥락을 파악해서 반응하는 것이 익숙한 우리들이니까요. 눈빛만으로도 잔잔하게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다니, 참으로 세련되고 섬세한 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요. 살면서 우리는 내 마음 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때를 자주 목도하잖아요. 하물며,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라니, 때문에 그의 의중을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건 거의 불가능 한 것 같아요. 가끔은 상대의 마음을 가늠해보느라 쏟는 에너지가 넘쳐서 기진 맥진할 때도 있어요. 게다가 나의 짐작이 그의 생각과 달라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요.
그럴 땐, 이게 필요한 것 같아요. 섣부른 짐작대신 '물을 수 있는 용기'말이에요. '상대의 상황이 어떤지.', '내가 무엇을 해주길 원하는지.',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게 맞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거죠. 때론 그의 반응이 두려워서, 가끔은 자존심이 상해서, '이 정도는 나도 알지'라는 자만심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소통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요. 그것이 관계를 망쳐버릴때도 많은 것 같아요.
내년이면 나이 마흔. 어른이 되면 남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리고 모든일을 더 현명하게,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거라 생각했었는데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경험이 쌓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깊어지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히 상대에게 물어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럴땐 이렇게 하는게 효과적이야'라고 경험적 지식으로 자신의 틀을 더 견고히 쌓아올리는 어른보다 상대의 방식을 존중하는 겸손한 사람들이 더 지혜롭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같은 맥락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도 다짐합니다. 언변이 화려한 사람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군더더기 없이 명확하게 전하는 것. 그것이 정말이지 말을 잘하는게 아닐까요? 겸양을 위해 나를 낮추거나, 배려하느라 나의 의견을 조금만 내어 놓았을 때, 상대가 겪을 수 있는 혼란과 오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서로에게 솔직하고 담백하게 마음을 나누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뿐 아니라 상대를 위해 더더욱이요.
지레 짐작으로 곤란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나요? 나의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서로를 혼란에 빠뜨린 적이 있나요? 매일 하는 말인데도, 대화인데도, 소통이란 참으로 쉬우면서도 어렵고 복잡하고 다양한 것 같습니다. 때론 얕게 흩어지기도, 깊게 되내이기도 하는 것이니까요.
나와 다른 존재와 보이지 않은 생각을 나누는 작업인 '소통'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오늘 소개 할 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책을 펴면서 말이에요. 오늘의 책 제목은 '이파라파 냐무냐무'입니다.
제목 Title 이파라파 냐무 냐무
저자 Author 이지은
출판사 Publisher 사계절
가로로 펼쳐진 이 책의 표지에는 보기만해도 귀여움이 덕지 덕지 붙어 있는 하얀 마시멜로들과 해맑게 웃고 있는 검정 괴물이 보입니다. 세모입으로 독자를 향해 환하게 인사를 건내고 있는 괴물 머리 위로 한껏 결연하고 진지한 표정의 마시멜로 들이 힘겹게 오르고 있어요. 이 책은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르기 힘들 정도로 정말이지 유명한 책입니다. 때문에 책 커버가 리뉴얼 되어 나올 때마다 이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본지는 똑같은데도 말이에요.
책 첫장에는 작고 하얀 마시멜로들이 살고 있는 '마시멜롱 마을'이 나옵니다. 모두들 꼬깔꼰처럼 아담한 검정 모자를 쓰고 평화롭게 살고 있어요. 그러던 어느날 마시멜롱 마을 뒷산에 검정 얼굴을 하고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하게 나있는 거대한 괴물이 나타나요. 천지가 진동할만한 소리를 내며 이렇게 소리치죠.
이파라파 냐무냐무
거대한 괴물의 존재에 압도된 마시멜롱 마을 주민들은 은신처에 모여 바들바들 떨기 시작합니다. 끊임없이 똑같은 말을 쏟아내고 있는 저 괴물은 도대체 무얼 말하고 있는 걸까요?
그들은 검정 괴물, 털숭숭이의 말을 되내어 봅니다. "이파라파 냐무냐무, 이파라파 냐무냐무." 가만있자. "나이무 냐아무 냐아암... 냠냠냠냠 냠냠냠냠?!"한 마시멜로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외칩니다.
우리 마시멜롱 들을 냠냠 맛있게 먹겠다는 말이야!
우리를 모두 잡아먹겠다고 선포하고 있는 괴물의 등장이라니! 마시멜롱들은 너도 나도 험한 상상을 시작합니다. 괴물이 자신들을 쇠꼬챙이에 주루룩 꽃아서 '지글 지글 고소 고소'하게 구워먹는 장면이 자꾸 떠올라 너무 섬뜩합니다.
마침내 앞으로 나선 용감한 대장 마시멜롱은 선포 합니다. 이대로 냠냠 먹힐 수 없다며 단호하게 나선 그의 앞으로 함께 싸우겠다는 마시멜롱들이 연합합니다. 분명 그들이 상상하는 먹히는 장면과 대결을 앞두고 비장한 마시멜롱들의 대화내용은 어마 무시한데요. 얼굴에 사랑스런 미소를 거둘 수 없는 것은 그림체와 대화문이 너무나도 앙증맞고 사랑스럽기 때문일 겁니다. 솜 방망이처럼 작고 보송한 손을 야무지게 움겨쥐고는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겠다는 마시멜롱들이 정말 귀여워요.
소인국 사람들이 기다란 끈으로 걸리버를 꽁꽁 묶어냈던 것처럼, 수많은 마시멜롱들이 자고 있는 괴물을 얇고 가느다란 붉은 실로도 묶고 거대한 불덩이를 던져도 보지만 모두 소용이 없습니다. 괴물은 끄떡도 하지 않아요.
진지하게 괴물을 쓰러트릴 묘책을 궁리하는 마시멜롱들 사이에는 홀로 한 아이가 다가와 섭니다. 아이는 물어요. 아무도 하지 않았던 질문을요.
정말 털숭숭이가 우리를 냠냠 먹으려는 걸까요?
털숭숭이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요.
얼굴이 사색이 된 큰 마시멜롱들이 그를 둘러싸고 혀를 차면 이야기해요. "뾰족한 발톱, 시커먼 털, 천둥 같은 목소리, 덩치도 무시무시해. 가만히 있으면 냠냠 먹힌다."라고요. 잔뜩 겁을 줘요.
그러나 아이는 길을 떠납니다. 여전히 산 너머 커다란 나무 뒤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소리치고 있는 검정 털숭숭이에게로 가요.
불공격을 받아 여기저기 흠집은 났지만 거의 타격을 받지 않고 여전히 소리치고 있는 털숭숭이는 이번엔 절규를 합니다.
이파라파 냐무냐무 !!!
아이는 소리치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털숭숭이에게 또박또박 이야기해요.
소리 지르지 말고 말해.
천천히! 또박 또박!
이 장면에서 저와 아이들은 얼마나 웃었는지요. 등치는 산 만한데 자신보다 100배는 작은 마시멜롱이 호통치는 앞에서 그저 울고 있는 괴물이 너무 웃기기도 하고 용감한 마시멜롱이 귀엽기도 했거든요.
그제야 진정한 검정 괴물은 서서히 다물었던 입을 엽니다. 수십개의 이빨 중, 하나가 새까맣게 썪어있어요. 그는 조용히, 그러나 또박 또박 말해요.
이빨 아파, 너무 너무!
털숭숭이는 마시멜롱들을 잡아먹을 생각도, 겁을 줄 생각도 아니었던 거에요. 그저 이빨이 너무 아파 고통속에 절규한 것이었어요. 이빨이 너무 아파 어쩔 줄 모르면서요. 진실은 참으로 단순하고 명확한데 서로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상대가 짐작만 할 때, 얼마나 많은 오해가 발생하는지요. 그 때문에 우린 얼마나 많은 감정을 소모해버리는 지요.
사실을 알게된 마시멜롱들은 한달음에 달려와 보글 보글 딸기맛 치약을 끓여 만들고, 한줄로 길게 대형을 만들어 털숭숭이 입에 꼭 맞는 거대한 칫솔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고는 마치 고층 빌딩에 매달려 창문을 닦듯, 끈을 타고 올라가 아픈 괴물의 이빨을 정성스레 치료해줘요. 참으로 마음이 몽글몽글 간질간질 따뜻해지는 귀여운 장면 입니다.
치료 끝에 벌떡 일어나 앉은 털숭숭이는 처음으로 다른 말을 뱉어냅니다.
아나파
더이상 털숭숭이도 마시멜롱 마을도 두려움에 떨지 않아요. 울지 않습니다. 모두 같이 세모입을하고 헤헤 웃습니다.
상대의 겉모습을 보고 분위기에 눌려서 그가 하는말을 혼자 되내이기만 하던 마시멜롱들은 자칫 애꿏은 털숭숭이와 전쟁을 치를뻔했어요. 그 누구도 다른이를 헤치려 하지 않았는데 서로를 해치게 될 뻔 한거에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또 그 말 뜻을 지레 짐작해 오해하느라요.
귀엽고 사랑스럽고 재미있고 재치있고. 이 모든 것을 다 해낸 이지은 작가의 그림책은 우리에게 잘 묻고 잘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해줍니다. 어른인 우리도, 이제 세상과 소통을 시작한 아이들에게도 꼭 필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인 것 같아요. 2021년 볼로냐 라가치 코믹스 대상까지 수상하며 전 세계의 공감을 산 이 책 '이파라파 냐무냐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럼 저는 또 다른 그림책을 들고 다음주 금요일에 돌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