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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라임 Nov 28. 2023

[일상에세이] FM 인생이 괴로워 지는 순간

정말이지 나와 다른 누군가와 함께 걸어야 하는 순간에

소소한 일상과 그림책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작가의 목소리로 나눕니다.

글 고픈날에는 브런치에서, 이야기가 필요한 날엔 팟캐스트에서 만나요

오디오 에세이 팟캐스트 링크 ▶ http://www.podbbang.com/ch/1788857?e=24831014



 인간이란 존재는 너무나도 신비롭고 변화무쌍하기에 똑 떨어지게 이분법화하여 나눌 순 없겠지만, 복잡 다양한 사람들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굳이 두가지 형태로 나누어 생각해 본다면 그 중 하나는 이렇게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모범생'과 '자유로운 영혼'


 모 아니면 도 처럼 한쪽 극단으로 매우 치우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보통의 사람은 4대 6, 5대 5, 2대8와 같이 두가지 특성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 나는 심플하게 이 중 하나를 택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나의 삶을 잘 들여다 보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자유롭게 상상하고 새로운 시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약 3대 7의 비중으로 모범생 쪽으로 더 기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모범생이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의 의미가 아니라 '정해진 트랙을 준수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정의해본다.


 이들은 때때로 'FM'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FM라디오 처럼, 전파의 진폭이 크게 튀지 않고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말썽부리지 않고 일탈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며 트랙을 준수하는 학생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유로운 영혼의 지분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보기엔 어쩌면 이들은 갑갑한 사람들로 비춰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질서를 지키며 사는 삶이 지루하거나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산다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혁신적이었다. 상대적으로 돌발상황이 적은 삶을 살기에 자유로운 삶을 살 때보다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고 이를 집중해야하는 곳에 쏟아부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FM인생에도 고비는 여지없이 찾아온다. 정말이지 힘에 겨운 순간도 있는데, 그건 바로 나와는 너무 다른 양 극단에 있는 사람을 만날 때이다. 특히 자유롭다 못해 '내 틀과 너무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달리말하면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 일반적으로  그렇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가볍게 건너뛰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나의 멘탈은 탈탈 털리곤 했다. 그것 역시 내가 FM으로 살아왔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들을 보면 고개는 절로 갸우뚱 거려졌다. 그리고 질문이 올라왔다. '저 사람은 왜 저러지?', '응? 저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이를 테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서도 매우 태연하다던지... 예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무심한 듯 툭 자기가 하고픈 말만 던지고 떠나버린다던지...하는 이를 만나는 순간 말이다. 도무지 FM인생을 살아온 나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순간에 시련이라는 놈이 찾아와 내 머리와 마음을 정신없이 두드려 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다른이와 마주한 것 만으로도 혼이 쏙 빠지는 나인데, 고충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한 단계 더 앞서 나갔다. 그것 또한 내가 FM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반적으로 '그래야 한다'는 것들을 지키지 못할 때 무척이나 괴로웠다. 예를 들면, '남을 미워하지 말라.' 같은 '선함'에 관한 덕목들에 대해 말이다. 분명 나와 다른 사람을 보면 괴로울 수 있는데 그런 내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조차도 그렇게나 힘겨웠다. 마음까지도 FM인간에겐 용납되지 않았다. 때문에 자책하느라 잔뜩 지친 마음은 가끔씩, 아니 아주 자주 산산히 부서졌다. 결국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려서 부터 나는 노트에 끄적이기를 좋아했다. 나만 보는 노트에다가라도 생각들을, 속상함과 분냄이 엉켜있는 감정들을 쏟아내야 했다. 그렇게 때때로 나는 문구점에 들러 노트와 필기구를 샀다. 마음 상태와는 정반대인 화사하고 귀여운 노트들을 들고 집에와 마음을 쏟아내고 나면 조금은 가뿐히 또 다른 하루를 시작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입을 열어 세상에 뱉어내지 못한 생각들을 노트에 차곡차곡 적어내려갔다. 평온한 일상을 살아갈 땐 까맣게 잊고 살아가던 그 노트들은 가끔씩 방을 정리할 때 그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몇 번 쓰지 않아 새것 같은 노트는 늘 맨 앞의 몇 장만 빼곡한 글씨로 채워져있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외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던 옛 이야기 속 나그네처럼 나만을 위한 '비밀의 숲'이 되어준 노트들이 그렇게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이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오랜만에 발견한 몇권의 노트를 읽어보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언제 노트를 사고 글을 적었는지 처음 자각하게 된 것이다. 중구난방으로 그저 마음이 힘들었을 때 글을 써내려갔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나는 다름을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 노트를 채워나갔다.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던 평화로운 시기에는 알 수 없었던 FM인생의 단점들이 나와는 완전 다른이를 만날 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렇다. 마냥 좋아보였던 FM인생의 단점은 바로 인생이 자칫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편향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거 아니면 안돼. 이럴땐 이렇게 해야지.'라는 규율에 사로 잡히기 시작하면 어느새 다름은 미움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갖기 위해서는 선함에 대한 정의에 유연함을 더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간 선하게 사는 삶이란 무조건 참아내고 혼자 감내하는 삶이라 오해해 왔다. 그래서 다름을 만나는 것이 그리도 어려웠나보다. 꾹 참고 그저 애쓰는 삶이란 누구에게도 쉽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진정한 선함이란, 유연함과 용기를 내포해야한다는 걸 말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유연함, 그리고 필요하다면 우리는 상대에게 다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출 때 비로소 나에게도 남에게도 진정으로 선해질 수 있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야 상대도 내가 그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고 그제야 서로를 오해 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나도 나의 트랙안에 상대를 끼워맞추느라 혼자 애쓸 필요도, 바뀌지 않는 상대에 대해 분노를 쏟아내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 모든 과정엔 미움이 아닌 상대를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늘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내 트랙에서 벗어난 다름을 인정할 때 나의 세상은 오히려 더 건강해지고 커다랗게 성장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FM인생이 나에게 준 이 힘과 안정감이 더 굳건해지도록 그렇게 다른이의 조금 남다른 트랙도 이해하기를 시작해본다. 마냥 '모범생'인 것만 같은 나도 누군가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낯설고도 불편한 존재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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