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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라임 Dec 13. 2023

[일상에세이] 내 친구 여름에게, 너의 친구 겨울이가

겨울을 사랑하는 나의 글이 여름을 기다리는 너에게 따뜻한 온기가 되어주길

소소한 일상과 그림책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작가의 목소리로 나눕니다.

글 고픈날에는 브런치에서, 이야기가 필요한 날엔 팟캐스트에서 만나요

오디오 에세이 팟캐스트 링크 ▶ http://www.podbbang.com/ch/1788857?e=24840561


 친구야, 이제 곧 만날 너에게 짧은 그림 카드를 써서 주어야지 생각하며 문구를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하고픈 말이 길어져 장문의 편지가 되었더라구. 너를 알게된지도 벌써 이십년이 가까이 다 되어가는데, 이렇게 길게 글을 적어 편지를 보내는건 처음인 것 같아. 그치?


 브런치에서 처음 네 필명, '여름'을 보고 '너와 참 잘 어울리는 이름 이구나'라고 생각했어. 단어 그대로 구김없이 쨍하게 빛나는 네가 떠올라 나도 금세 경쾌해졌으니까. 그런 네가 나의 가장 순수했고 패기넘쳤던 이십대 시절부터 앞으로 더 찬란해질 남은 시간동안 함께 해줄 친구라는 사실이 문득 너무 감사하더라.


 네가 맑게 반짝이며 빛나는 '여름'을 좋아한다면, 나는 아늑하고 소담하게 따뜻함을 품고있는 '겨울'을 사랑하는 것 같아. 서핑보드를 들고 신나게 바다로 뛰어 들어가기보다는 난로불 앞에 모여 앉아 따수운 군고구마와 핫초코를 홀짝이며 그림책을 읽는게 좋은 나거든. 그치만 네 덕분인지 요샌 가끔 여름에 대해 생각하기도 해. 여름의 반짝임을 찾아보는 거야. 난생 처음으로. 너에게서 여름을 본것만 같거든. 네 덕분에 나는 이 해를 보내고 내년 6월을 맞이하기 전에 찬란한 여름의 한 부분을 즐길 수 있는 감각을 찾게 될지도 모르겠어.

내 친구 여름에게, 너의 친구 겨울이가


 편지를 쓰다보니, 우리가 처음 만났던 스무살의 기억도 몽글 몽글 피어나네. 꽤나 찬란했고 충만했던 너와 나, 그리고 함께했던 친구들이 공유한 시간들. 돌이켜보면 그때 우리는 참 무모할정도로 용감했고 때문에 참 많이 웃고, 울고 즐거웠었잖아. 살다가 움추러 드는 날이 올때면 난 그때를 떠올리곤해. 그 추억이 구석을 찾아 몸을 잔뜩 웅크리려던 나를 힘차게 끌어올려 주는 것 같거든. 그렇게 너희는 내가 깊은 우물에 빠진 것 같을 때, 튼튼한 동아줄이 되어주곤 해. 하지만 누군가 그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겠냐고 물으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거야. 촘촘한 이십대를 지나,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던 삼십대를 보내면서 마주했던 반짝이는 순간들이 아까워서. 그리고 종종 지나야만 했지만 생각해보면 꼭 거쳐야했던 어둑하고 긴 터널을 지나며 전보다 둥글러지고 편안해진 지금의 내가 좋거든.  


 마흔이 되는 내년에 우리는 또 어떤 세계를 마주하게 될까? 스무살의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반짝이는 무언가를 향해 내달리다가도 때론 짙은 감정에 파묻히기도 하겠지? 어릴 땐 그 순간을 빠져나갈 탈출구를 찾지 못해 자주 넘어지고 주저 앉아 울었던 것 같아. 그치만 시간이 가르쳐주더라. 나를 위기에서 구해줄 비밀의 문을. 그게 나에게는 글을 쓰는 거더라고. 써내려가지 않으면 터질 것 같은 마음에 숨이 차오를때면 하얀 페이지에 깜박이는 커서를 따라 한자, 한자 적어내려가. 글로 수를 놓듯 종이에 남겨지는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면 마음의 짐이 하나씩 내려지고 풀어지는 것 같아. 그렇게 다시 웃을 수 있게 되더라고. 나는 차분하고 담백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글을 쓰는 순간의 내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아.


 넘치치 않게 담담한, 그러나 꽤나 깊은 너의 글을 읽을 때면, 글을 쓸 때 너도 나와 같은 해방감 같은 것을 느끼진 않을까 생각하곤해. 마음속에 무언가가 차오르기전엔 하염없이 손을 놓고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나이지만, 꾸준히도 자리를 지키며 글을 써내려가는 네 덕분에, 그리고 너의 글로 인해 나의 일상이 얼마나 든든하고 풍성해지는지. 너는 아마 모르겠지?


 잠시도 진득히 붙어있지 못하고 여기저기 세상 곳곳을 탐험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래서 즐겁지만 때론 이래도 괜찮은가 싶은 나인데. 그래도 다시 글쓰기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네 덕분이기도 해.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글을 통해 전해지는 고향의 계절을, 아이들이 자라나는 소식을 듣지. 거기엔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영상이나, 정사각형 안에 담긴 사진으로는 차마 다 표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 그 따뜻한 감동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이유인가봐. 진심과 애정같은 것이 내 마음에도 전해지는 것 같아. 그럴때면 나도 다시 자리에 앉아 글이 쓰고 싶어지더라고. 펜을 들고 이리저리 마음을 살피며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흩어져 버릴 오늘의 나를 붙잡아 봐. 그 순간들을 꺼내어 볼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한지.  


 오늘도 아이들과 분주한 아침을 보내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을 너를 생각하다, 네가 그리워하는 여름을 담은 그림과 글을 보내. 마음이 참 좋다. 내 친구 여름아, 찬바람이 두터운 옷의 틈새를 파고드는 요즘이지만 겨울을 사랑하는 나의 글이 너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었으면 좋겠어. 너의 글이 나에게 그러하듯 말이야. 이제 곧 비행기를 타고 너와 친구들이 있는 한국으로 날아갈게. 우리 곧 만나 늘 그렇듯 쉴새없이 떠들며 신나게 놀아보자.


 너희와 함께 하는 따스한 겨울을 고대하며, 낯선 땅에서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겨울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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