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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Nov 30. 2020

간암 절제 수술 전 입원 5일 일기

암인 게 맞네. 수술 가능하다면 얼마나 감사하냐


'최악의 상황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자.'


서울 큰 병원 예약일이 다가올수록 나는 8년 전 '간경화와 간암'으로 떠난 오빠를 생각했다. 배가 아파 병원 갔는데 퇴원하지 못하고 6개월 만에. 나이 49세였다. 식도정맥류 파열로 피를 양동이로 쏟으며, 약 줄을 주렁주렁 달고, 뼈와 가죽만 남은 몸…. 가족력 B형 간염 보균자가 맞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내 죽음도 상상해 보았다. 집안도 내 물건도 정리했다. 만 52세, 아쉽지만 홀가분한 것도 같았다. 나 없어도 세상은 돌아갈 것이다. 양가 노모들과 식구들이 걸렸다. 애 셋 딸린 홀아비에 가난한 목사 남편. 사회적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세 아이들. 나와 띠동갑인 고등학교 2학년 막내가 안쓰러웠다. 딸이 엄마 없이 여성으로서 살아갈 걸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그리고 군대 가 있는 큰 놈 생각해도 마음이 아팠다.


2014년 6월 27일 나는 서울의 A병원에 갔다. 안산에서 CT 검사받은 후 8일 만이었다. 대형병원 시스템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안산의 주치의와 의사 벗의 도움으로 세계적인 간절제술 명의 B교수에게 안내되었다. 첫 만남은 짧고 긴장된 시간이었다. 그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내 자료를 일별 한 후 한마디만 했다.


"암인 거 같네요. 바로 입원하시죠. 하루라도 수술은 빠른 게 좋습니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온갖 최악의 상황을 그리고 왔지만 당일 입원은 예상 못한 일이었다. 철컥! 나와 세상 사이에 철문이 닫히는 기분이었다. 감옥에 갇힌 나를 상상하다가 살짝 안도의 숨도 쉬었다. 수술이란 말은, 최악의 상황은 아닐 가능성으로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014년 6월 27일(금) 입원 첫날. 체중 49.5킬로

아침 8시 30분 남편과 차로 안산 출발. 9시 30분 병원 도착. 10시 45분 B교수 진료. CT 영상 확인 결과 바로 입원. 하루라도 수술 빠를수록 좋단다. 주말도 진행된다고. 1인실. 큰 병원은 상급 병실로 시작하는 듯. 심전도, 흉부 X선, 호흡기 폐활량 검사. 아침 금식 채혈, 2시 밥. 저녁 금식 후 8시 CT. 9시 MRI 촬영. 입원 검사 4-5일 걸림. 이후 어찌 될까. 이대로 이곳에서 마지막 삶의 날을 보낼지. 수술 시술 후 퇴원해서 일상 복귀할지. 오늘은 아버지 호국원 안장 날. 가족들은 내가 허리 아파 못 간 걸로 이해하는데….


2014년 6월 28일(토) 입원 2일. 날 맑음 혈당 105

엊저녁 9시 40분경 MRI 끝. 내가 자꾸 졸아서, 호흡하라고 여러 번 담당이 깨우며 진행. 집 떠나 1인용 병실에 홀로 남으니 환자 실감. 잠 여러 번 깨며 뒤척임. 오후에 2인실로 옮김. 아침 금식 물만 많이 마시고 PET 검사를 방사성 조영제 주사 맞고 한 시간 정도 누워 있다가 다시 동굴 속을 들락거리며 촬영.


2인실 함께 쓰는 환자는 50세 아줌마간경화로 식도정맥류 터져서 2011년 처음 병원으로건강검진 위내시경에서 식도 정맥류 발견되어 간 검사간경화에 작은 암까지 발견색전술 2고주파술 2이번에 큰아들에게서 간 이식받기 위해 입원그 남편께서 활달하고 얘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인 듯투병 이야기를 소상히 해줌같은 병을 앓고 싸운 사람이 내 친구로 보이는구나딸과 남편이 다녀감.


2014년 6월 29일(일) 입원 3일.

세끼 깨끗이 비워 먹다의식적으로 6천 보 넘게 걷다

어젯밤보단 좀 더 깊이 잔 듯. 옥에 티, 옆 침대 보호자의 코 고는 소리. 전망 좋은 2인실. 그분이 쉼 없이 떠들어서 부담이 좀 되려 했으나 공감대와 정보들이 오갔다. 평소 새벽밥 먹을 때완 달리 아침식사 커다란 공기 비워 먹음. 먹어야 한다는 절박감. 출근 전 아침 입맛 없어 괴로웠는데 병원 온 뒤 어제 점심부터 세 끼. 무조건 다 먹는 것으로. 어떤 시술 어떤 치료든 견뎌 내려면 감사하며 먹어야 하리. 몸이 힘들고 살이 빠진다 싶을 때 하루라도 서둘러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헛배 부른 느낌. 소화 불편하고 이유 없이 오심과 구토를 했었지. 아버지 장례식과 세월호 이후 급격히 안 좋아지는 걸 느꼈건만. 몸의 신호에 민감하지 못한 아쉬움을 떨치기 어렵다. 머리 감고 샤워하고 새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니 상쾌하다. 옆 침대 코 고는 소리. 나는 한 바퀴 산책하고 와야겠다. 


저녁 9시 25입원 3일 밤이다낮에 밥 열심히 먹고 좀 걸었더니 저녁 먹고 바로 지쳐 쓰러져 잤다가물가물, 6인 병실의 일상 소리는 들리나 몸은 잠으로 빠져들었다두어 시간 잤다. 9시 넘어 남편의 전화큰 놈이 휴가 앞두고 전화 왔더라고. 별일 없다 했고엄마 잠시 나간 상태라 했다고전화 올지 모른다고엄마 입원 얘기하면 놀라고 궁금하기만 할 뿐말하지 말고 휴가 나왔을 때 알게 하자고.


큰 놈 얘기를 하고 나니 잠이 확 깼다이놈아이 시점에서 니 얼굴 보게 되는 거 기쁘다만 왜 이리 마음이 무거워지냐. 바로 수술한다 하면 어째야 할꼬사무실도 어쩔지 모르겠다. “저는 국장님 의지가 많이 돼요그러니 검사 잘 받으시고 오세요.”라던 소장님기도 부탁 처음 받았다고 카톡 한 Y….



2014년 6월 30일(월) 맑음입원 4일. 49.5킬로. 

대변 조금. 옥외 휴게실 더움. 6인실로 옮겨와 달게 잠. 어제 오후 바깥 공원 걷고 예배도 다녀오며 6 천보 이상 걸었더니 모처럼 운동 통. 나는 곤히 잤다. 건너편 할머니가 장을 비우느라 밤에 화장실 여러 번 갔다는데 난 전혀 못 느낌. 다른 환자들 깨울까 봐 나는 병실 밖 복도 화장실 이용. 아침 금식으로 검사 두 개 하고 아침 먹기로. 다른 환자들 보기에 나는 멀쩡하다. 퇴원 언제냐고. 몰라요. 아직 검사 중인걸요. 금식 상태로 채혈 엄청 많이. 전신 뼈 영상 위해 방사선 약 주사. 심장 초음파. 쉬다가 검사. 옥외 휴게실에서 동생과 인증숏. 오후엔 S 세 시간 수다. 좋은 친구. 센터 직원들과 옥외 휴게소에서 인증숏. 긴 하루였다. 



2014년 7월 1일(화) 입원 5일. 49.5킬로.

6시 30분쯤 간호사가 일정 급변경 알려왔다. 오늘 검사 다 하고 내일 수술할 수 있다고. 장 비우는 약 콜론라이트 8 봉지 500밀리씩 물에 타 마시라고. 엊저녁 센터 식구들 보내고 뒤척이는 밤이었다. 4리터의 찝찌름한 물을 맛난 아침인 양 마시고 장을 비워냈다. 8시 B교수 회진. 내일 수술 확인 질문에, 검사 다 하고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는 한마디 하곤 휙 갔다. 젊은 의사들이 전문용어로 교수님께 보고. 어쨌거나 감사하자. 오늘 아침 점심 금식. 오후 1시 40분 위‧장 내시경. 4시 간 섬유화 검사. 저녁땐 모든 걸 종합하게 됨. 남편에게 전화. 퇴근하면 밤에 병원 오기로. 보호자 수술 동의서를 쓰겠지. 오늘 밤엔 아빠가 병실 보호자 하고 딸이 안산 가서 자고 막둥이 학교 보내야 할 거다. 그리고 나면 딸이 수술 후 수발하지 싶다. 언니 카톡 와서 알려줬다. 암인 게 맞네. 수술 가능하다면 얼마나 감사하냐. 큰 놈 휴가 왔을 땐 모든 게 끝난 후면 좋겠다. 살려주신다면 보너스 인생. 새롭게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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