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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Dec 03. 2020

속전속결 간암 절제 수술

4시간 수술로 내 간의 20%와 담낭이 잘려 나갔다


7월 2일 저녁, 수술실에서 4시간여 만에 나왔을 때 나는 '중환자'가 돼 있었다


지난 5일간은 익살스러운 사진으로 SNS 하는 '나일론'이었지만 이젠 '찐 환자'였다. 복대로 단단하게 싸맨 배가 아팠다. 중심이 사라져 버린 듯한 몸도 의식도 낯설었다. 팔엔 바늘과 약 줄이 주렁주렁, 바지 밖으론 소변 주머니가, 복대 밖으론 피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수술실 들어가던 순간을 기억하려면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속은 메스껍고 의식이 오락가락했다가족들 얼굴만 확인하고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깨어 보니 곁을 지키는 사람이 바뀌어 있었다. ‘기록을 남겨야 하는데…….’  시간이 가니 '작가정신'이 나를 채근했다그러나 볼펜 들 힘도 없었다복부에선 붉은 액체가 관을 타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계적인 간 절제 명의가, 분명히, 수술 잘 됐다 그랬다.


나는 출산 후에 그랬듯, 고통의 바다에서 약간의 '뿌듯함'을 건져보려 애썼다. 그러나 내 몸도 정신도 그게 아니었다. 이송 직원이 내 병상을 밀어가던 건 기억났다수술실 문 앞에서 가족들과 작별하고 밀려들어가던 때도 생각났다수술실 문이 닫혔고 맨살에 차디찬 수술대가 닿던 순간도 떠올랐다마취 주사가 꽂혔고그다음 4시간여는 내 기억에 없었다


복대로 동여매진 배가 내게 일어난 일의 증거였다. 칼로 뱃가죽을 잘랐을 것이다. 명치끝에서 배꼽 위까지 자르고 다시 오른쪽으로 길게 '니은'자로 잘랐겠지. 간을 밖으로 끄집어내서 잘라내고 다시 집어넣었겠지. 담낭도 싹둑했겠지! 피가 흘렀겠고 닦았겠지. 혈관은 빠짐없이 붙였겠지? 무참히 잘려 나간 내 간 20%, 그 조각, 그 살덩이는 어찌 생겼을까? 온통 암 덩이였을까? 


나 몰래 해치운 갑작스러운 '대사건'이었다. 가족력 B형 간염 보균자 27년 만에 간암 환자가 됐다. 나는 암이 내 일이 될 수 있다고 진지하게 생각한 적 있던가? 아닌 거 같다. 오빠에게 일어난 일인데 말이다. 암 원인 74.2%가 B형 간염이라는데 나는 왜 내게 일어날 일로 생각해 본 적 없었을까.


나는 널브러진 환자였다. 내 몸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가 하면, 살아 있어서 고마웠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정신이 없었다. 정신이 들면 강도 맞은 사람이 떠올랐다. 내 소중한 무엇을 순식간에 도둑맞은 기분, 크게 당하고 쓰러져 속수무책 '구조'를 기다리는 상태, 그게 내 몸이었다. 


간암 절제 수술이라 쓰고 속전속결이라 읽는 게 맞지 싶다




"아이고, 기운 좋네정신이 드는가 봐.”

무통이 훨씬 더 힘들어 원래그냥 두면 기운 못 써서 안 돼바꿔 달라고 해요.”


잠에서 깬 나를 보며 병실 환자들이 하는 말이 가물가물 들렸다. 다 알아들을 순 없지만 눈치로 알아들었다.

그게 뭐죠나한텐 말해 주지 않은 거 같은데. 선택권이 있었어요?

병실 사람들에게 들리게 말하려니 배에 힘이 없어 말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병원이 그래수가 때문인지 일단 그걸 꽂더라고얼른 바꿔 달라 그래요.”


내가 정신이 몽롱한 것도, 몸이 속수무책 널브러진 것도 다 약 때문이었다니! 입이 심하게 마르고 어지럽고 메스꺼워 토할 거 같은데 잠도 달게 들지 않는 상태. 최악의 입덧도 이보단 견딜만했던 거 같다. 끙끙거리는데 간호사가 들어왔다나는 힘을 다 해 하소연했다.

무통 진통제 너무 힘들어요못 하겠어요. 약 바꿔 주세요.” 


처방전을 바꿔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설명은 없었다침대에서 일어나 몸을 직립해 보고 싶었다어림없었다어지럽고 다리도 몸도 말을 안 들었다. 


수술 3일이 돼서야 나는 잠깐 힘을 내어 몇 단어 기록할 수 있었다. 오락가락하는 내 기억을 믿을 수 없었다. 있는 힘을 다 끌어와야 한 줄 썼다. 그렇게 수술 후 9일, 입원 14일 만에 나는 퇴원했다. 내 발로 걸어 병원 주차장에 갈 때 뜨거운 여름 햇볕이 고맙고 반가웠다.



수술 3-9일의 기록

수술 3일- 소변줄 뺌. 소변은 안 나오고 배만 빵빵. 저녁에 다시 줄 삽입하고 도뇨. 밤늦게 요의, 조금씩 흘러나옴. 소변량 확인. 수술 4일- 줄 빼고 자연 배뇨. 작은올케 보호자 1박. 수술 5일- 입원 열흘째, 죽 세끼 맛없이 억지로 먹음. 장기 내 가스, 팽만감 불편. 좌약을 넣었지만 변의 없음. 방귀도 안 나옴. 큰아들 휴가. 집에 와서 알고 통화. 거짓말인 줄 알았다고. 수술 6일- 엄마 왜 이렇게 말랐어. 큰아들 눈물 그렁그렁. 보호자 아들 1박. 저녁 관장약으로 변 조금. 뜨거운 팩 배 덮음. CT 촬영. 수술 7일- 수술 명의 회진. 금요일 퇴원 시사. 수술 8일- 남동생 들름. 캐나다 선교사 S,P 부부. 권 소장님. 밤 10시 넘어 레지던트가 실밥과 줄 제거. 한 달 정도 복대 계속해야 됨. 명치끝에서 아래로 내려와 배꼽 위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진 긴 '니은'자 상처를 제대로 봄. 가스가 심하게 차고 변 안 나오는데 퇴원이라니 맘 편하지 않음. 밤에 관장. 


2014년 7월 10일(금)수술 9일 차, 입원 14일 차퇴원하는 날. 49.5킬로.

퇴원일 아침밤새 가스 좀 더 빠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듯상처 부위 진통제 없이 잠직립보행 가능아침 6시 배가 고파 복숭아 한 개요구르트 한 개 먹음빈속에 먹으라는 변비약 두파락 시럽을 빈속 아닌 상태로 먹었다식욕이 돌아오려나맛있었다창밖 햇살이 눈부시다. (병원에서)


아들딸 남편과 퇴원해서 차로 집에 왔다햇살이 지글거려 뜨거운 열기가 어깨를 누르는 게 느껴지지만 반갑고 고마웠다복대 배는 아프고 다리에 힘은 없고차 안에 앉아 한 시간 달리는데 눕고 싶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안산 도착해서 식당을 찾아 아이들 좋다는 데서 비빔국수나는 제육덮밥을 시켰다맛이 하나도 없어 새 모이만큼 먹고 애들 줬다기운이 너무 없다집 4층 계단 오르기 숨차고 배가 땅기고올라오자마자 쓰러져 가쁜 숨 몰아쉬었다이제 회복하기까지 아득한 시간이 남은 걸 알겠다.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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