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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Dec 07. 2020

항바이러스제 안 쓸래요!

항바이러스제, B형 간염 치료약이 결코 아니다


퇴원 전날 나를 수술한 명의와 심야 면담이 있었다. 


퇴원 병원비(550여만 원), 외래 방문 일시. 그리고 퇴원 후 한 달간 복약 방법 등을 안내받았다. 입원 기간 회진 때 바삐 스쳐가던 그를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 보는 기회였다. 우리 부부는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학생들처럼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수술 후 한 달간 복약 안내가 가장 중요해 보였다. 


통증완화제 아큐판 캡슐, 간장 보호제 코덱스 캡슐, 변 무르게 하는 라시도 필 캡슐, 췌장 효소제 노자임 캡슐, 기능 무력증 보조치료제 시티몰 액. 이런 건 다 먹어야 하는 거냐고 내가 재차 물었고 그는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마지막 마무리인 듯 명의가 말했다.


항바이러스제는 퇴원할 때 처방해야 좋아요. 쓸 거면 결정해 주시죠.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였다. 예 또는 아니오 대답 대신 내 입에서는 질문이 나왔다. 

"지금 처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수술 직후엔 간 수치가 높게 나오니까요. 이때 처방을 해야 약 값이 적게 들어요.”

아, 그렇지. 나는 보균자이면서도 대체로 간 수치 좋은 '건강보균자'라 믿고 살았지. 가족력 있는 B형 간염 보균자로 27년을 살았는데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약이었다. 다시 질문했다. 


“그럼 항바이러스제는 간염 바이러스를 잡는 약인가요? 안 먹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그가 빠르게 내 말에 답했다. 항바이러스제는 바이러스 활동을 억제하는 거지 치료약은 아니다.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 잊어버리고 거르면 바이러스가 확 설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요지였다.


약을 안 먹으면 바이러스가 폭주하고 먹어도 직접적 치료와는 상관없다? 치료제도 아닌 약을 평생 달고 살아? 게다가 내가 깜빡 빼먹지 않을 자신도 없었다. 지금까지도 항바이러스제 모르고 살았는데 지금 새삼 평생 먹을 약을 시작해? 나와 남편은 미심쩍은 눈빛과 고갯짓을 주고받았다. 


항바이러스제에 대해 더 말해 줄 건 없는지 내가 물었을 때 의사가 대답했다.

“알아 둘 거 또 있어요. 모든 약이 그렇듯, 항바이러스제도 내성이 생깁니다. 그러면 다른 약으로 바꿔 줘야 하는 거죠. 오래 먹는 약은 바꿔주고 그러잖아요

“교수님은 그럼 제게 항바이러스제를 꼭 먹으라고 권하시는 건가요?” 내 질문에 그가 건조하게 답했다.

“저야 안내하는 거죠. 환자분이 결정하실 문젭니다.”


쿨~~. 간암 절제 수술 외에 항암치료도 방사선도 안 하겠다 했을 때처럼 쿨했다. 간은 어차피 항암제가 잘 안 듣는 장기라 안 하는 게 좋다고 했더랬다(간에 화학치료가 안 좋으면 다른 암에도 마찬가지! 약은 간을 거치니까). 회진 때는 질문할 틈도 안 주던 '야속한 님'이 마지막 밤엔 '좋은 님'으로 보였다. 


그럼 항바이러스제, 그거 안 쓸래요!


오래 고민할 것 없이 내가 말했다. 알고 한 결정이라기보다는 순간의 판단이었다. 짝꿍과 나는 같은 마음이었다. 암 수술한 몸에 평생 먹을 약을, 그건 결정하기 찜찜한 일이었다. 항바이러스제, 그거 안 쓸래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알진 못했지만, 나를 새 길로 이끈 인생 결단이었다. 


명의도 고개를 끄덕이는 건 살짝 의외였다. 반드시 써야 한다거나 지금 처방받아놓으라든가, 그런 설득이 없었다. 다시 한번 쿨~~~. 나는 감사합니다, 로 그에게 인사했다. 항바이러스제 안 쓰면 재발 위험이 크다거나, 간이 계속 나빠질 거라거나, 두려움 장사하지도 않았다. 그건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합니다! 




“교수님, 이제 퇴원하면 생활은 어떻게 하죠?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도…….”


이제 진짜 내가 마무리 질문을 했다.

“잘 먹고 잘 쉬고 평소대로 살면 됩니다. 수술 잘 됐으니 한 달 정도면 다시 하던 일로 복귀해도 돼요. 두 주 후에 병원 한 번 오시고요. 됐죠?” 

좀 싱겁고 뻔한 답을 하고는 그가 일어나려 했다. 

“잠깐만요 교수님. 하나만 더요. 수술 때 잘려 나간 제 간 조각 있잖아요. 그거 좀 볼 수 없을까요? 어디로 가서 신청해야 볼 수 있나요?”

이제 후면 다시 오지 않을 님의 바짓가랑이를 잡듯 내가 물었다. 그가 황당하다는 듯 버럭 했다.

“아니 그게 왜 보고 싶다는 겁니까? 뭐 하러 봐요.”

“보고 싶죠. 그놈이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 궁금하잖아요. 확인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보여주세요!”


스물다섯 살에 급성간염으로 입원하면서 나는 B형 간염을 처음 알았다. 어머니와 우리 5남매 모두 B형 간염 보균자, 오빠를 간경화 간암으로 잃은, 가족력 고위험군. 만 52세에 간암 절제 수술하게 한, 내 간에 붙어먹은 바이러스와 암. 아~~ 잘려 나간 내 간 쪼가리가 나는 진심 궁금하고 보고 싶었다. 


“볼 필요 없어요. 참 나.”

그는 나와 더 이상 할 얘기 없다는 듯 일어났다. 쌔~~ 하게 돌아서는 그는 역시나 야속한 님이었다. 그 길로 나는 간호사실에 가서 물어봤다. 이상한 눈길을 받았던 거 같다. 그 밤에 더 씨름할 기운도 시간도 없었다. 그걸 못 보고 온 게 이렇게 아쉬울 줄, 그땐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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