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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Sep 04. 2024

1962년 이전엔 백두산 천지가 국경이 아니었다고?

천지도 백두산도 발해 이후 1962년까진 한반도 영토가 아니었다

어제 (사)한겨레평화통일포럼에 강의 차 강주원 교수님이 오는 날이었다. 강교수님은 이번 '백두산-중국일대 평화번영탐방'의 이끄미다. 9월 27일에나 뵐 줄 알았는데 인사할 기회가 앞당겨진 셈이었다. 통일포럼 수강생들과 백두산 여행팀이 함께 하는 자리였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저녁 일정이 겹친 날이었다. 좀 일찍 가서 인사하고 책 《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와 《휴전선엔 철조망이 없다》두 권을 받아서 돌아와야 했다.


"백두산에 대해 무슨 공부하세요?"

나와 인사하며 강교수님이 던진 첫 질문이었다. 포럼 담당자 현주 샘이 나를 "백두산 가기 전에 교수님만큼 공부 열심히 하는 분"이라고 뻥치며 소개한 탓이었다. 백두산 여행기를 써 보겠다고 공부 좀 하려는 정도였는데 이런 거창한 질문을 받다니. 나는 수다쟁이 아줌마 버전으로 응수할 수밖에 없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냥 '백두산'자 '천지'자 들어간 건 뭐든 찾아보는 정도죠."

"아, 그렇군요. 그럼 천지가 1962년 이전엔 조중 국경이 아니었다는 것도 아시겠네요?"

"네? 그래요? 전혀 몰랐어요."  

"발해 이후 1962년까진 천지도 백두산도 한반도 땅이 아니었어요."


쩝! 누가 교수 아니랄까, 첨 만나는 아줌마 앞에서 가오를 제법 잡으시네. 인간적 매력을 느끼긴 어려웠지만 내 공부 의욕에 자극은 됐다. 책에다 "김화숙 선생님 백두산에서 뵙겠습니다."라고 사인하며 그가 또 물었다.


"하시는 일은 뭐예요?"

내가 망설임 없이 답했다.

"하는 일 없는 백수건달이에요."

왜 그런 대답이 나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문화인류학 박사님 앞에 여성활동가요 작가라 소개하는 게 재미없을 거 같았거나, 학자님의 가오를 흐트러뜨리고 싶은 건달의 감각이겠다. 그가 건조하게 답했다.

"그래요? 건달 좋네요."


그랬다. 백두산 천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경이다. 그러나 해방 당시는 물론 발해 이후 1962년까지 백두산도 천지도 우리 영토가 아니었다. 중국과 북조선 간의 '조중 변계 조약(朝中邊界條約)'으로 국경이 된 게  역사적 사실이었다. 저우언라이(周恩來)와 김일성(金日成)이 1962년 10월 12일에 평양에서 만나 백두산과 천지(天池)를 분할했다. 북한 방향으로 뻗은 백두산 천지의 54.5%가 북한령, 중국 방향의 45.5%가 중국령이 됐다. 이로써 2,500m 이상 백두산 봉우리 16개 중 9개가 북한령, 7개가 중국령이 되었다.


그게 발해 이후 공식적으로 백두산이 우리 영토가 된 첫 역사란다. 영토며 국경의 역사가 참 복잡했다. 그걸 다 정리하긴 시간이 부족하니 건너뛰자. 중요한 건 어제 듣지 못한 강주원 교수님의 강의를 유튜브로 찾아보는 일이었다. 몇 년 전 《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가 나왔을 때 한 '중조 국경을 가다'라는 제목의 강의가 있었다.




강주원 교수/《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책 앞날개에서 옮겨 적음


서울대 문화인류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2012)를 받았다. 2000년 여름부터 한반도 밖이자 국경 지역인 중국 단둥을 포함해서 두만강과 압록강을 다니고 있다. 2020년 봄부터는 한반도 안인 임진강과 한강 그리고 DMZ의 안과 밖도 넘나들고 있다.


 북한사람·북한화교·조선족·한국사람의 관계 맺음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남북 교류와 만남, 분단의 풍경과 삶을 배우고 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북한과 한국 사회를 낯설게 보고 만나고자 노력한다. 한반도 평화와 공존에 대한 고민을 업으로 삼는 인류학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웰컴 투 코리아》92006, 공저),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2013, 한국연구재단 우수도서 사후 지원사업 전정), 《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2016),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2019), 《휴전선에는 철조망이 없다》(2022) 등이 있다. 2022년에 재외동포재단 학위 논문상을 받았다.





 "중조 국경(두만강, 압록강)에서 발 담그고 과일을 먹자"


7박 8일 정도 200만 원짜리 답사 여행을 짧게 요약한다. 이명박근혜 정부 때 애국주의 반공교육 공간으로 압록강 두만강으로 한국사람들 많이 갔다. 김을동 의원은 "강 중앙을 몰래 넘어봤다"라는 말을 버젓이 했다. 국경은 압록강 두만강 한가운데 그어진 게 아니다. 국경은 강을 공유한다. 철조망도 있지만 없는 데가 더 많다. 철조망은 반농반진으로 소가 강에 들어가지 못하게 설치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개성공단 금강산이 2016년에 폐쇄됐다. 내가 연구하는 단둥과 압록강 두만강을 통한 남북경협은 개성공단 훨씬 이전에 1992년 한중수교 이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선양과 베이징엔 대한항공과 고려항공이 같이 뜨고 같이 내린다.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거다. 끊어진 적이 없다.


백두산에 문재인 대통령 올라가신 곳이 동파이고 중국 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북파 서파 남파 세 경로다. 서파 계단 1400개. 서파 올라가면 오른쪽이 북한땅인 줄 아는 사람들 있는데 아니다. 백두산 남파 쪽으로 올라가야 오른쪽이 북한땅이다. 10년 정도 닫혀있었는데 또 언제 막힐지 모른다. 가장 코스 좋고 경치도 좋은 코스다. 천지 주변에 빨랫줄로 국경 표시돼 있다.


압록강 상류부터 혜산, 삼수갑산이라 하는 오지였다. 나는 압록강 상류에서 발을 담근다. 강 건너는 북한. 단절된 공간 아니다. 한중수교 전에는 중국 북한 한국 사람들이 공유했다. 단둥과 98년부터 페리 물류이동 있었다. 메이드인 차이나로 나오지만 북한에서 만들어진 옷이다. 북한 사람은 단둥에서 한국 물건 사서 평양 가서 판다. 중국산이라고 들어오는 들깨가 실은 북한산이다.


아들을 데리고 갔는데 압록강이라고 북한 보인다고 무서워하더라. 왜 그럴까? 유치원까지 할아버지 할머니한테서 컸다. 부모님은 하루종일 TV조선 틀어놓고 지내는 분이다. 압록강 뗏배. 중강진 운봉댐. 압록강 중류엔 철조망이 없다. 김훈 선생 등은 압록강에 철조망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지만 일부만 본 거다. 집안 너머 만포. 압록강 중류 장수왕릉. 압록강 하류 일제강점기 가장 큰 댐 수풍댐....


단둥과 신의주 사람들은 압록강, 물안개, 해와 달만 공유하는 게 아니다. 한국사람들이 포함된 그들은 압록강에서 삶을 공유하고 있다.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한국사람 한국어를 공유하는 인구. 그들은 남북을 연결하는 경제활동하고 있다. 경제학자들 눈엔 안 보인다.


단둥 시내 야트막하던 건물들이 10년 후 고층건물 도시가 됐다. 대북 제재 10년 동안 이렇게 변했다. 단둥에 2만 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2010년 이전부터 있었다. 한 달 300달러 받는 노동자들. 북한으로 들어가는 현금박스는 개성공 단 뿐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단둥에도 개성공단이 있다. 러시아 중동 등 북한은 10개 이상 해외공단을 가지고 있다. 개성공단 문 닫으면 북한으로 들어가는 현금을 막는다는 건 잘못된 정보였다.


나는 단둥에 15개월 살았고 40번 이상 다녀왔다. 그런데 북한에 백번 이상 갔다 온 분이 있는데, 그분한테 물었다. 어떻게 가셨나? 휴전선 넘어서 간 건 4번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베이징 선양 단둥 통해 들어갔다고 했다. 한국사회에서는 왜 휴전선만 뚫으려 하는지 모르겠다. 휴전선 넘어간 경우 별로 없다.


압록강에서 북한만 바라보지 말자. 본인의 편견에 따라 북한을 보고 해석한다. 단둥 평지에서 북한을 바라보고 인기척이 없다는 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 있더라. 무섭다고 단둥에 잘 안 간다. 단둥은 위험하다고 잘 안 잔다. 시내는 비싸서 외곽에서 자야 한다. 영화 <공작>, 내용 아쉬운 점. 단둥과 베이징을 공작원들만 있는 공간으로 묘사했다. 100명 이상 일상적으로 만남 있어야 공작 가능하다.


한국 것 북한 것 구분 안 되는 곳이 단둥이다. 오늘 부친 한국 물건 모레면 평양에서 받는다. 홈쇼핑 단둥에 사는 북한 사람들도 본다. 남북철도 없어도 계속 물건은 들가고 있다. 지금 착공해도 5,6년 걸리는 남북철도만 기다릴 건가. 개성공단 외에 남북교류협력했던 업체가 1200여 개. 개성공단 125개 업체. 어디서 했을까요? 휴전선 통해서? 아니다. 압록강 두만강 통해서. 대표적으로 단둥에서.


중국북한 오가는 단둥 국제 열차는 물류이동경로다. 1000명 정도 매일 평양으로. 통계에 안 잡히는 1년 3천4천억 이동. 한국사회는 선입견 고정관념. 개성공단 천억 인건비가 북한으로 들어가는 거 막으면 북한 붕괴할 거라 생각했다. 통계에 안 잡히는 돈이 북한에 들어가고 있다. 평양 변했다는 소리 있는데 이유를 몰랐다.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나라라는 관점 있다. 20년간 연구해 보니 폐쇄된 국가 맞다. 한국 사회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지는 않다. 김정일 김정은만 기차 타고 단둥 오는 거 아니다. 2만여 북한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북한 화교가 운영하는 식당에 한 번씩 간다. 1,000명 들어갈 수 있는 식당. 북한 종업원도 120명 정도. 인천 단둥 물류, 반 이상 북한으로 간다. 신한반도 경제 지도에는 이게 안 들어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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