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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Sep 13. 2024

연길에서 도문으로, 두만강공원, 눈물 젖은 두만강

여행이 2주 남은 오늘에사 일정표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사)한겨레평화통일포럼 중국(연변-백두산-집안-단둥) 견학'은 꼭두새벽에 인천공항을 출발해 오전에 연길에 도착한다. 첫날 두만강을 보고 이튿날 새벽 둘째 날 새벽에 백두산 천지에 올라간다. 어지간히 빡센 일정, 우리 집이 안산 출발지와 가까운 게 다행이다.


 백두산에서 발원해 한반도의 북쪽 국경이 되는 두만강 압록강을 다 걷게 된다. 둘째 날 백두산에서 내려오면서부터는 압록강이 일정표에 등장해 마지막까지 계속 나온다. 그러니까 여행 4일 중 3일은 계속 압록강을 보고 압록강변 어딘가를 는 일정이다. 강주원 교수의 책과 강의 덕에 내 여행 공부엔 압록강과 단둥이 먼저 등장했지만 이제 일정표 순서를 따라 두만강을 시작해보려 한다.  


고백할 게 있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두만강과 백두산 그리고 압록강이 만드는 국경을 구체적으로 살펴본 적이 없었다. 막연하게 두만강은 러시아랑 압록강은 중국과 국경을 이루는 줄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 세상에! 중국은 한반도와 두만강 백두산 압록강을 모두 국경으로 공유하는 나라였다. 러시아와 접하는 두만강 국경은 중국과의 그것보다 훨씬 짧아 보인다. 국경의 역사와 비밀은 역시 공부 주제란 걸 알겠다.



두만강 하니 가수 김정구가 부른 노래 '눈물 젖은 두만강'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눈물 젖은' 이유가 뭘까? 이제야 궁금하다. 어릴 적 많이도 듣고 불렀건만 질문한 적 없었던 것 같다. 옛 노래엔 으레 눈물 바람이고 한이 있으려니 했을까. 작사 김형우 작곡 이시우, 1938년에 나왔다. 도문 두만강 공원에 가면 북한이 잘 보이는 야산에 이 노래비가 있단다. 이 노래를 들으며 두만강 뱃놀이도 하게 되려나?


조선 사람들은 왜 두만강을 건너갔을까? 해외여행 떠났을까? 강주원 교수의 책은 두만강 압록강은 이전엔 명확한 경계가 아니었고 강 양안의 나라가 강을 공유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왜 조선 사람들은 두만강을 건너 남의 나라로 가야 했을까? 두만강 이쪽에 남은 사람들은 왜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에게 님의 안부를 물으며 눈물 지어야 했을까?


조선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눈물로 두만강을 건너간 역사였다. 실제 이 노래의 작곡가 이시우가 두만강변 어디에 묵었는데 옆방에 우는 여자가 있었단다. 사연을 들어보니 남편이 독립운동하러 두만강을 건너갔다는 이야기였다. 그랬다. 조선 사람들은 일제와 싸우려, 독립운동하러, 먹고살려고, 혹은 일본 제국주의를 피하려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 만주 러시아로 가야 했다. 쉽게 돌아올 수 없는 도강이었다.  


조선총독부가 이런 맥락을 놓칠 리 없었다. 민족의식을 고취한다는 이유로 1943년 이 노래 음반은 판매금지당한다. 다시 대중의 인기를 얻은 건 1960년대였다. 1963년에 동명의 영화가 나왔고, 1964년엔 KBS에서《김삿갓 북한방랑기》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게 계기였다.




눈물 젖은 두만강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강물도 달밤이면 목메어 우는데
님 잃은 이 사람도 한숨을 지니
추억에 목메인 애달픈 하소연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임가신 강 언덕에 단풍이 물들고
눈물진 두만강에 밤새가 울면
떠나간 그 님이 보고 싶구나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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