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연말의 특별한 겨울여행이 끝났다.
이름하여 39일(11/20~12/28)간의 '내 몸사랑 자연치유 여행'이었다. 영덕 자연생활교육원 9박 10일 후, 서천 단식원과 집에서 2주 단식 2주 보호식을 하는 일정이었다. 암수술 후 일곱 번째 새해를 맞기까지 잘 버텨온 내 몸에게 주는 특별한 상이자 치유 여행이었다. 비워진 새 몸으로 칼바람 부는 선자령에 오르는 것이 겨울 여행의 마지막 이벤트였다.
보호식 14일, 소식은 언제나 어려워!
6년 만에 하는 단식과 보호식은 즐거웠다. 그동안 더 알게 된 내 몸과 읽은 책이 잘 이끌어주었다. 날마다 나는 몸 이야기를 글로 썼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기쁨도 맛보았다. 1일 2식과 '한 접시로 끝내기'를 지켰다. 아침은 효소수 또는 차. 점심 저녁은 죽과 채식단으로 40~50분간 씹어 천천히 먹었다. 보호식 기간에도 소식이 가장 어려웠다.
6년 전에 비해 훨씬 부담이 없었다. 별다른 어려움도 명현 반응도 없고 몸은 가벼웠다. 주 중엔 매일 12,000보 이상 걸었고 맑은 머리에 집중력도 좋았다. 소화도 잘 되고 똥도 아주 잘 눴다. 식간에는 묽은 차를 마셨다. 저녁 식사 한 시간 전에 과일 조금 먹는 날도 있었다.
단식 전 체중 48킬로, 단식 2주 후 44.4킬로, 보호식 2주 끝난 다음날 아침 46.3킬로였다. 6년 전 3주 단식 때보단 체중 변화가 적었다. 보호식 14일 동안 똥 안 눈 날은 두 번이었다. 3일 차 첫 배변 후, 보호식 7일과 12일에 걸렀다. 두 번 다 그다음 날에 어김없이 대량 배변했다. 보호식 11일부터 무르지 않은 덩이 똥으로 점점 형태가 좋아졌다. 1년 내에 단식 전 체중으로 회복될 것이다.
칼바람 부는 선자령에 올랐다.
2020년 12월 28일 월요일 아침 6시 40분 안산을 출발해 짝꿍과 함께 흐리고 안개 낀 고속도로를 달렸다. 강원도 들어서서야 해가 조금씩 비치더니 우리가 선자령 주차장에 도착했을 땐 맑아왔다. 10여 년 전 세 아이들 청소년일 때 가족 여행으로 온 게 처음이었으니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땐 양떼목장 들러 아랫길로 내려오느라 더 오래 걸리고 추웠던 기억이 난다. 이번엔 푸근하게 느껴질 정도의 겨울 날씨였다.
역시 1,157미터 정도는 돼야 산 오르는 맛이 있다.
양지바른 입구의 이정표가 선자령까지 5킬로라 가리켰다. 임도를 걸어 통신탑을 지나고 전망대로 갔다. 숲길은 다채롭고 깊고 아름다웠다. 올라갈수록 응달엔 눈이 쌓여 발이 빠지는 구간도 있었다. 밤새 내린 듯 사람의 발자국 없이 싸락눈이 얇게 깔린 길도 있었다. 눈 비탈에 선 야생화 안내 팻말들만이 이곳이 야생화 산이란 걸 말해주었다. 봄에 꽃 필 때 꼭 오자고 우리는 다짐하며 걸었다.
죽죽 뻗은 일본 잎갈나무니 전나무 숲을 지나니 키 작고 꼬불꼬불한 나무들이 이어졌다. 신갈이며 굴참 등 떡갈나무 종류인데 모양은 아주 독특했다. 대관령 선자령이 '국가 숲길 1호'로 지목됐다더니, 과연 나무 모양만으로도 독특했다. 2024년까지 지속적인 관리로 명품 숲길로 만들 계획이라는데, 아마추어인 내 눈에도 선자령은 이미 명품이었다.
정상 가까이 풀밭 언덕에 드러누워 풍차 소리 바람 소리를 들었다. 내려다보이는 능선마다 거대한 바람개비의 행렬이었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드는 바람이었다. 내 작은 몸을 누이니 내 아래 더 낮게 누운 마른풀들이 나를 받아 줬다. 내 위엔 하늘과 햇살과 바람이 나를 어루만졌다. 주차장 출발 후 1시간 40분 걸려 정상에 설 수 있었다.
정상은 우리를 칼바람으로 맞았다. 정상 표지석도 사람도 나무도 바람 앞엔 장사가 없었다. 하늘이 있고 햇살이 있어 더 머물고 싶었지만 바람이 내려가라 했다. 내려올 땐 하늘이 조금 더 걷혀서 전망대에서 서니 강릉 시내와 동해가 더 잘 보였다. 따뜻한 물로 목을 축이며 쉬었다. 세 시간 10분 걸려 다시 주차장에 도착했다 (또 TMI를 하자면, 출발 때 누고도 거기서 빅 똥을 또 한 번 눴다).
보호식이 드디어 끝났으니 오늘 점심은 식당 밥으로 가볍게 먹기로 했다. 채식 잡식, 무얼 먹느냐보단 늘 명심할 건, 어떻게 먹느냐다. 즐겁게, 가볍게, 꼭꼭 씹어서, 적정량으로! 대장정의 마무리 이벤트답게 외식의 예외를 즐기는 날이었다. 그날의 스마트 워치 걸음수는 19,970보를 기록했다.
거기 칼바람을 버틴 나무가 있었다.
겨울 여행 선자령에서 너는 무엇을 보았느냐? 칼바람이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바람을 보았다고? 그래 또 무엇을 봤니? 그럼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칼바람을 버틴 나무들이 있었다고.
선자령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나뭇가지들은 모두 꼬불꼬불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밑둥치에서부터 이리 휘고 저리 휘어 자라는 나무들이었다. 거기서는 예외 없이 그리 될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사시사철 불어대는 칼바람이 나무를 그냥 두지 않았을 테고 나무는 몸으로 고스란히 버텨내야 했을 것이다. 지울 수 없는 기록이었다.
내 몸을 닮은 나무들이었다. 가족력 B형 간염 보균자, 암 수술, 자연치유, 단식, 갱년기……. 내 삶에도 바람이 불었고, 때로 너무 칼바람이었다. 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내 몸은 높이를 줄이고 부피도 줄이고 아래로 아래로 힘을 길러야 했다. 칼바람의 흔적을 가진 내 몸이 거기 있었다.
올 겨울에도 선자령에는 칼바람이 불 것이다. 그 바람 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것 같다. 버티고 선 나무들이 보인다. 나는 또 가고 싶다. 꼬불꼬불 비뚤비뚤, 바람 부는 날 우리가 선자령에서 다시 만날 날이 기다려진다. 바람의 흔적을 가진 몸으로 우리는 서로를 단번에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따뜻하게 포옹할 것이다. 바람소리보다 우리 목소리가 더 잘 들릴 것이다.
그래, 너구나. 그래, 나야.
나는 너에게 왔어. 나는 나에게 왔어.
칼바람의 흔적을 가진 몸, 잘 버텨낸 몸 그대로 최고다. 나는 멋지다!
감사 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