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벌 김화숙 Jul 22. 2021

분노하는 여자 치유하는 여자

분노는 내면의 지혜가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다


나는 분노하는 여자가 됐다


어느 날 나는 뚜껑이 열렸고 화산 같은 분노를 폭발하고 말았다. 나는 목소리를 높여 부부싸움 한 번 한 적 없었다. 우리 부모처럼 살까, 좋은 부부가 못 될까 두려웠고, 아이들에게 화목한 가정을 주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그건 지속 가능한 삶의 모델이 아니었다. 의사도 가족도 나라에 대해서도 화가 났다.


몸과 맘은 날로 살아나고 건강해지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덤으로 얻은 삶, 모든 게 새로운 즐거움인데, 앞뒤가 안 맞았다. 혹시? 갱년기를 인정하까진 시간이 걸렸다. 나와 상관없을 줄 알았던 개념이었다. 예민하네, 변덕이 죽 끓네, 우울하네, 그런 소문과 거리를 두고 싶었을 것이다. '잉꼬부부'니까, 나는 우아하게 늙어갈 줄 알았으리라. 만 52세, 암수술과 함께 완경한 내 몸은 자연치유와 함께 갱년기를 만났다. 


헤매고 더듬으며 만난 책과 영화 몇 개만 정리한다. 




1. <폐경기,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크리스티안 노스럽, 한문화, 2002) 


책은 나 같은 갱년기 과정을 겪고 분노를 에너지로 이용한 산부인과 의사의 자기 고백이었다. "24년 동안 지속해온 결혼생활의 망령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개척할 힘을 준 것은 바로 끓어오르는 분노였다. 나는 자신의 욕구를 인식하고 성취하기 위한 안내자로 분노라는 에너지를 이용했다."(53쪽)


목차만 봐도 좋았다. 1. 폐경기는 삶을 재조명하게 한다 2. 폐경기에는 뇌가 흥분한다 3. 자신에게 돌아가자 4. 설마, 폐경기는 아닐 거야!……. 14장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로 끝난다. 1장 "중년에는 왜 결혼생활이 변해야 하는가"는 나를 잘 대변해 주었다. 갱년기 만세!

여성들은 생리적으로 가임기 동안에는 자신을 희생해서 가족을 돌보려는 모성본능이 있다. 그렇지만 성차별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여성의 이런 생리를 이용해 교묘하게 그 본능을 더욱 부추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호르몬 베일이 걷히고 여성들이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판단하는 시기가 되면 이런 사회적 억압에 대해 강력한 반발심을 느끼게 된다. (34쪽)


2장에 "분노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자"는 호르몬 베일이 걷힌 나를 정확히 읽어 주었다. 

우리 여성들의 분노는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분노 이외에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쉽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남성의 분노는 다방면으로 철저하게 연구된 반면, 여성의 분노에 대한 연구는 오직 어머니로서의 분노, 즉 아이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상에 대한 분노가 대부분이다..... 분노는 표출되어야 한다. 특히 중년에는 분노를 발산하는 것이 자신의 삶이나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분노는 내면의 지혜가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우리는 그 소리를 귀담아듣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84쪽)


 

2. <82년 생 김지영> 그리고 <세 자매>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분노하는 여자 이야기로 보면 어떨까? 


지영이 말고 엄마가 분노한다. 크리스티안 노스럽의 지적대로 그나마 '자식을 위해 분노하는 엄마'기 때문에 용납된 캐릭터 인지도 모른다. 김지영은 왜 화내지 않았을까? 평범하고 별 문제없어 보이는 젊은 여자가 왜? '나쁜' 남편이 있나, 아이가 없나, 육아 엄마 복에 겨워서 화를 내? 욕바가지 되기 십상이다. 지영은 '별 게 다 섭섭하다'라며 자신을 탓할지언정 화를 눌렀을 것이다. 심각한 해리장애 환자가 됐다. 


엄마는 남편과 아들 앞에서 폭발한다. 멀쩡한 아들을 위해 남편이 한약을 지어온 날이었다. 누워있던 엄마가 총알처럼 튀어나와 한약 상자를 패대기쳐버릴 때, 쓰레기처럼 약봉지들이 바닥에 널브러진다. 엄마는 지영아~ 오열한다. 엄마는 미친 듯 소리 지른다. "이게 다 뭐라고. 이까짓 게 다 뭐라고!" 버려져야 할 것과 아껴야 할 걸 분명하게 드러내는 분노였다. 삶을 바꾸는 분노였다.


김지영과 달리 <세 자매>의 미옥은 분노하는 젊은 여자다. 미옥이 4남매와 엄마는 아빠의 폭력 피해자들이다. 첫째 희숙(김선영)은 엄마처럼 저항하지 못하는 캐릭터. 둘째 미연(문소리)은 매사에 완벽하고 반듯해 보이는 기독교인. 셋째 미옥(장윤주)은 알코올을 의존하며 수시로 분노하는 글쟁이. 아버지의 생일 가족 모임에서 미연과 미옥이 폭발하며 아버지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아버지는 결코 사과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가 모두 나였다. 세 자매는 나를 3 분할한 모습이다. 미연이는 겉에 보이는 내 모습이었다. 믿음의 가정과 아름다운 교회의 나 말이다. 암과 함께 나는 딱 희숙으로 드러나기도 했다(내가 개성과 목소리를 죽이고 살았다면 믿어줄 사람 많지 않을 것이다). 미옥이는 극소수만 아는 내 모습이다. 나는 눌려 살다간 한 번씩 광기로 '자폭'하는 사람이었다. 암과 갱년기를 통과하며 제대로 분노했지만. 


한 사람 더, 영화 속 엄마도 내 모습이었다. 엄마는 "이제 그런 사람 아니다. 내 죽는 거 볼라 카나" 아버지 앞에 절절매며 아버지를 대변했다. 나는 '믿음 있고 현숙한 아내'가 되려 남편 앞에 '절절매며' 살았다(이것 또한 누가 믿을지 모르겠다). 그에게 잘 보이고, 사랑받고, 화목한 가정을 지키려고 그랬다. 내 솔직한 목소리를 내면, 그의 사랑을 잃을까 봐 그에게 맞춰주고 살았다. 결국 우리는 다시 살아야 했다.




3.  <무엇이 여성을 분노하게 하는가>(해리엇 러너, 이대 출판부, 2011) 그리고 <아름다운 분노>(야사카 유코, 지식의 날개, 2010)


분노가 단지 폐경기 여성의 히스테리일까? 해리엇 러너의 책은 여성과 분노의 상관관계를 정리해줬다.

"분노는 하나의 신호이며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우리가 상처 받고, 권리를 침해당하고, 욕구나 바람들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호소가 분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감정적인 문제들을 표현하도록 일깨워주는 것이 분노이며,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이나 가치 욕구 야심 등이 너무 많이 위축될 때 생기는 것이 분노이다."(12쪽)


내 분노는 지성이요 성장이라고 말하는 야사카 유코의 책으로 마무리해 본다.

"인간이 분노를 억누르고 참는 것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건 착각이다. 분노를 버리면 행운을 잡을 수 있다는 것 또한 거짓말이다. 분노를 참게 하는 힘은 이성이고, 표현하게 하는 힘은 지성이다.... 분노를 표현하고 그것을 반복함으로써 여자는 성장한다." (4-5쪽)
이전 25화 "저는 의사이고, B형 간염 보균자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