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으로서 겪는 불편을 처음으로 찐빵장미에서 솔직하게 고백했다
연희: 안녕? 어제 화숙말 듣고 생각해 봤어 ㅋㅋ 너무 충격이기는 했어 ㅜㅜ 진작 말하지. 다들 알고 있으니 따라갔을 텐데...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어!!! 선택지가 많지는 않지만 한 달에 한번 채식위주의 뒤풀이를 하는 것도 우리에게도 의미있을 것 같아 ㅋㅋ 페미니즘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 날마다 배워 ~~~~
나: 아웅~~ 고마워 영희. 눈물이 울컥 난다.
연희: 아이 ~~~~ 그동안 얼마나 고민이 많았어 ~~
나: 페미니즘 공부 좀 해야 비건을 공감하니까, 너무 부담 줄까 봐 참고 기다렸지.
연희: 아~~ 그런 깊은 뜻이 ㅋㅋㅋ 맞아 처음에는 나도, 안 먹으면 되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자꾸 듣다 보니 그러네. 사람이 자꾸 배워야 하는 것 같아 ㅋㅋ
나: 페미니즘 열심히 하자고 강조하는 이유지. 아무리 설명해도 소수의 목소리는 이상한 취급되고 무시되는 걸 다수는 잘 모르지. 눈물 나서 글씨 잘 안 보여 ㅋㅋㅋ
연희: 아이 어째~~~ 울지 마 ~~~~ 서러우면 안 되는데...... 화숙의 힘이야 ㅋㅋ
나: 내가 참고 살다가 어느 날 이혼하자 했듯, 모임이 너무 육식주의라 때려치울 고민 여러 번 했어. 가부장제는 여자 보고 참으라, 너 한 사람 입다물면 다수가 편하다, 그러잖아.
연희: 아~~ 큰 위기가 있었네!! 고민 많았을 것 같아. 일상에서 많이 부대끼니깐.... 맘고생 많았겠어...... 힘내... 자꾸 이야기해야지. 사람들은 쉽게 잊어버려. 위기감이 없어서. 화숙은 이중고인 것 같아
여자여서... 채식주의자여서... 더 많이 그럴 거 같아
나: 이 사회가 다 맞물려 돌아가니 같이 불편에 동참하지 않으면 결국 소수가 배제돼. 진보한다는 사람들이 감수성 너무 없는 게 너무 똑같아 보여서 괴로웠어.
연희: 아 ~~ 한숨이 나오네
나: 흔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잖아. 같이 고민할 뜻이 없다는 게 확인되니 오래 별렀어.
연희: 이참에 페미 말로만 하지 말고 제대로 하면 좋겠어... 그래야 바로 배우지.....
작년 11월 마지막 화요일의 카톡을 조금 옮겨 보았다. 한 달 한 번 있는 '찐빵장미' 토론모임을 했고 다음날 오전에 연희가 말을 걸어와 이어진 수다였다. 그만 일로 눈물까지 또르르 흐를 게 뭐람. 그래도 내 맘을 알아주고 토닥여주는 벗이 고맙고, 좀 더 솔직하게 말하는 내가 고마운 시간이었다.
찐빵장미는 진보당 안산상록구지역위 벗들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토론모임이다. 재작년 가을 내가 페미니즘 강사로 초대받아 6주간 책과 영화로 토론을 진행한 게 시작이었다. 그 후속 모임으로 '찐빵장미' 분회가 만들어져 1년을 채우고 2년째 이어지고 있다. 남녀노소 당원들이 서로 평어 쓰며 페미니즘 토론으로 성평등공동체를 실험하고 있다. 살면서 진보운동한다는 남성들이 페미니즘에는 까막눈인 경우를 하도 많이 봐서, 분회장으로서 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여기도 역시 가부장적 질서를 기본값인 걸 볼 때마다 그랬다. '진보할애비당'이라도 별 수 없는 게 한국사회라고, 나는 남몰래 한숨 쉬었다. 막막하다가 화나다가, 귀엽게 보이다가 답답하다가, 감동하고 재미있고, 울고 웃고... 내 기분은 매달 널뛰기를 했다. 게다가 내게 가장 큰 옥에 티, 육식주의까지 만연했다. 모임 뒤풀이는 육식이 기본값일 줄, 나는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비건으로서 뒤풀이가 점점 마뜩잖은 자리가 돼 갔다. 맥주 한 잔 입가심 수다 정도면 좋겠는데, 육식이 불편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앉아 있는 나 자신이 싫었다. 나를 위해 '따로 준비된' 샐러드도 과일채소도 맛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비건 한 사람 곁에 앉혀 놓고, 옛다 채식이다, 그 곁에서 무자비하게 고기를 즐길 수 있을까? 차츰 뒤풀이 메뉴에서 육류 비중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 마음엔 질문이 와글거렸다. 대놓고 주장하지도 싸우지도 못하는 나는 뭘까? 이런 식의 '인내'가 과연 누구에게 좋은 일이지? 육식 문화가 관용의 대상 맞나? 나 하나 참으면 모두 평화인가? 내가 내 불편을 무시하면서 다른 소수자와 연대한다고? 이런 나를 과연 누가 존중할까? 사람들에게 내 괴로움을 더 솔직히 알게 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게 맞지 않을까? 비건 새벗이 오면 또 이렇게 대우할 것인가....
작년 11월 책『에코 페미니즘』(여성환경연대 펴냄)이 내게 기회였다. 진행자로서 참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해서 토론 끝까지 내 할 말은 참아야 했다. 토론 말미에서야, 내 고민을 간결하게 말했다.
"우리 모임 뒤풀이 때마다 육식이 디폴트라 불편했다. 우리 중에 장애인이 한 사람 있다면, 그에게 비장애인이 보조를 맞추는 게 맞다. 마찬가지로 비건이 있는 모임이라면 비건도 즐겁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게 맞다. 비건에게만 채식 던져 주고 나머지 사람들이 고기 먹는 자리, 비건에겐 고역이다. 페미니즘 토론 모임이니, 이젠 한 달 한 번은 채식하는 문화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게 어렵다면 나는 이제 뒤풀이 빠질까 한다. 비건 때문에 고기도 맘 놓고 못 먹는다고, 역차별 운운하는 끔찍한 소리 들을까 두려웠다...."
내가 흥분하지 않고 깔끔하게 말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말하며 보니 나를 향한 싸움의 전운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모두 공감하는 눈빛, 미안해하는 표정,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모습을 보았다. "이젠 채식 뒤풀이 하자"라는 호응도 들을 수 있었다. 그 밤 10시 줌 회의가 있어서 나는 뒤풀이 빠지고 자리를 떴다.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나요?"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에코페미니스트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을《Ecofeminism: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나요?》이 해줬다. 찐빵장미 벗들은 내가 걱정한 것보다는 훨씬 열린 맘이었다. 어조는 부드럽고, 교조적으로 몰아가지 않는, 쉽게 읽히는 책 덕분이겠다. 하지만 책이 제시하는 질문에다 '성차별',. '육식주의', '기후위기'를 대입해 보라. 백래시가 두려워지고 어조를 가다듬게 될 것이다. 현실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서다.
진보당에서 한 4년 전 내 책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북토크 기억을 소환해야겠다. 자연치유니 단식 채식 책 이야기를 했건만, 뒤풀이엔 돼지수육이 중심 메뉴였다. 당원 중 한 분이 '특별히' 맛있게 삶아온 거란다. 초대받은 작가로서, 수고한 이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불편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순식간에 태도를 결정해야 했다. 더러 고기 먹기도 하는 척, 심지어 맛있는 척, 수육을 먹었다. 제법 많이. 그러나 몇 년 만의 육식이 내 몸과 맘을 괴롭혔다. 집에 가서 싹 다 토해야 했다. 잊히지 않을 흑역사다.
인정하자. 내 안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관대함과 융통성을 가장한 두려움. 비건 때문에 고기 먹는 분위기 망칠까, 사람들한테 받을지도 모를 비난과 편견과 배제에 대한 두려움. 답 없는 논쟁에 내몰리게 될 두려움, 나를 싸움닭 취급할 거라는 불신. 환대와 우정의 외피를 쓴 불신과 두려움이었다. 다 먹고살자는 건데 왜 굳이 비건이냐, 가부장적인 육식 남성들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었다.
남성 권력에게 많이 맞아 본 여자의 두려움이라고 하자. 내 깊은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는, 상처받고 오해받고 두들겨 맞은 아이.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들에게 내 입이 틀어막히고 제압당해 본 기억. 궁금해하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고 비난할 거라는 두려움. 11년 차 비건 중년 속에 사는 두려움이다. 다 같이 채식하는 모임 하자, 그 한마디를 왜 못 했을까? 위풍당당 반대말 두려움이었다.
정작 찐빵장미 벗들이 포용적이었다. 조심스러운 비건의 고백에 그 누구도 비난하거나 반격하지 않았다. 다수를 불편하게 하지 말라거나, 소수더러 찌그러지라 하는, 가부장제의 폭력이 설 자리가 없었다. 내가 그들을 포용한 것 같지만 알고 보니 다수 그들이 나를 수용하며 함께 변하고 있었다. 환대와 우정의 싸움이었다. 그래, 나이 먹어도 결국 내 안의 두려움과의 싸움이구나, 그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