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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본 자의 두려움, 그걸 깨부숴야 해!

비상계엄 내란 1년, 정치권력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사회의 꿈

by 꿀벌 김화숙

2024년 12월 3일로부터 1년이 차고 넘쳤다.

비상계엄령 이후 지난 1년은 내 삶에는 어떤 시간이었을까? 정리하고 넘어가고 싶어서 쓴다.


가장 기억나는 건 계엄의 그 밤 국회 앞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달려갈 때만 해도 가짜뉴스 같아 믿을 수 없었다. 심각성을 몰랐으니까 아직 두려움도 없었다. 잠자리에 들려다 말고 반사적으로 옷을 입고 진보당 벗들과 함께 승합차에 올랐을 뿐이다. 이런 말이 안 되는 상황에 짜증만 났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가마떼기 되고 나중에 더 부끄러울까봐, 직접 가서 내 눈으로 봐야 했다.


"21세기 민주공화국에서 비상계엄이라고? 미친 거 아냐?"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한대. 지금이 어느 시대길래, 창피하다 정말."


여의도에 들어가자 엄중한 현실이 눈 앞에 펼쳐졌다. 자정이 한참 넘었건만 사람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와 있었다. 차 댈 곳이 없어 우리는 내려서 걷고 운전자만 국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대고 따로 와야 했다. 국회 앞에 과연 탱크가 있었다. 국회 담장엔 사람들이 빽빽히 둘러서 있었고 온갖 깃발이 나부꼈다. 전국 곳곳에서 한달음에 달려왔다며 고등학생 대학생 남녀노소 시민들이 자유발언대에서 말하고 있었다.


"정적제거 국민억압 윤건희를 타도하자."

"계엄 철폐"

"계엄으로 국민과 전쟁하자는 윤석열을 당장 끌어내리자."


그밤 이후 내 일상은 와장창 깨져갔다. 규칙적인 잠 대신 올빼미가 되어 새벽이 되도록 뉴스를 찾아보지 않으면 마음이 안 놓였다. 집회 또 집회, 주말도 없고 저녁도 없는 혼란의 시국이 이어졌다.


그밤에 함께 국회 앞에 같이 갔던 친구 B가 어느날 조용히 내게 말했다.

"만약에, 윤석열 탄핵이 기각될 경우.... 아주 만약이지만.... 내가 수배자가 될 수도 있어. 만약을 대비해서 하는 말인데.... 화숙네 어느 공간이건 내가 좀 지낼 수 있을까? 교회라든가...."

쾌활한 친구가 그렇게 조심스럽게 말하는 건 처음이었다. 0.1프로도 농담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심각하다기 보단 흠칫 놀랐다. 내가 전혀 가정해 본 적 없는 경우의 수였기 때문이다.


"아.... 물론이지. 걱정하지 마. 얼마든지 있어."


나는 짐짓 담담하게 답하며 B를 안심시켰다. 내 상상력은 아주 만약까지 간 적이 없었다. 친구는 두려움을 감각하는데 나는 왜 상상도 못 했을까? 내 몸으로 당한 적이 없으니까. 중년 시민 활동가라며 집회에 나가지만 나는 비상계엄 시국을 몸으로 싸운 청춘이 아니었다. 혹시 지금도 싸움의 '흉내'만 내고 있는 걸까? 친구 B가 느낀 두려움은 그 몸이 기억하는 감각일 것이다. 아주 만약, 윤석열이 직무에 복귀한다면, B같은 사람은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거나 수배자가 될 것이라는, 겪어본 몸이 기억하는 두려움이었다.


탄핵이 가결된 후 안산시민 집회에서였다. 내가 발언 기회를 얻었을 때 그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아주 만약에, 수배자가 될 B의 은신처 걱정하던, 그 만약이 만약으로 끝났다"라고 기뻐하면서 말이다. 그러곤 아차! 했다. 계엄과 내란의 두려움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차이였다. 만약은 끝까지 비밀로 지켜줬어야 했다. 이제 다시 아주 만약, B가 수배자가 되는 상황이 온다면, 이제 나는 그의 은신처도 못 되게 생겼다. 그 광장에 짭새가 없었으란 법 없는데, 여기 있다, 떠벌인 셈이 됐으니 말이다.




백윤식 주연의 한국 영화 <싸움의 기술>을 소환해 본다. 평소엔 깡패 영화, 주먹 쓰는 '남탕' 영화에 눈살을 찌푸리던 내가 예외적으로 재미있게 본 영화다. 조직폭력배의 주먹싸움이건 국가 간 전쟁이건, 솔직히 내게 와 닿지 않는 남성 세계 같았다. 사람이 사람을 패고 피 흘리게 하는 싸움 장면이 뭐가 좋다고 보냔 말이다. 그런데 <싸움의 기술>은 달리 보았다. 두 눈 뜨고 싸움의 기술을 진지하게 탐구하듯 보았다.


“니 안에 가득 차 있는 두려움, 맞아 본 자의 두려움, 그걸 깨부숴야 돼.”


오판수(백윤식)가 싸움 못하는 고등학생 병태(재희)에게 가르쳐 준 핵심 싸움의 기술이다. 나는 싸울 줄은 모르지만 두려움은 좀 안다. 맞아 본 자의 두려움이다. 중년에 '싸움'에 꽂힌 이유도 바로 평생 맞고만 살 수 없다는 '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감정이입 대상은 싸움 고수 판수가 아니라 많이 얻어맞는 남자 고등학생 병태였다. "내 안에 있는 두려움, 맞아 본 자의 두려움"이 바로 내 진짜 싸움의 대상이란 말씀.


맞아본 자의 두려움, 이거 내가 좀 안다. 아니,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다. 이전엔 그저 내가 싸움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려니 했다. 폭력은 보는 것도 상상하는 것도 싫었다. 그런데 물리적인 폭력 말고도 나를 두들겨 패는 힘은 너무 많았다. 나를 알아서 굽히게 하는 상황,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내가 사과하고 회개하게 하는 권력이 있었다. 평화를 유지하려면 말을 삼키고 힘에 굴복해야 했다. 불화할까, 욕 들을까, 미움 살까 두려워, 미소와 침묵 뒤에 숨어야 했다.


내 인생 50 즈음, 맞고만 살던 인생에 변곡점이 왔다. 암수술과 갱년기는 나를 일깨웠다. 자연치유와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맞아본 자의 두려움 때문에 계속 쳐맞고도 괜찮은 척 할 건가? 나를 함부로 대하는 병원에 분노하는 건 시작에 불과했다. 가족과 교회와 국가가 달리 보였다. 나 하나 미소짓고 참아서 유지되는 평화는 가짜였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숨이 잘 안 쉬어지고, 말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두려움을 깨부수어야 했다. 분노로 폭발하며 싸우는 것 말곤 길이 없었다.

나처럼 싸울 줄 모르던 우리 큰아들도 이 영화를 좋아했던 게 기억난다. 사람 얼굴 그림을 붙여 놓고 동전을 던져 인중을 맞추는 연습하던 녀석. 싸울 줄 모르는 엄마가 아이를 싸울 줄 알게 키울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태권도장 보내는 것뿐이었다. 아, 지금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덜 혼내고, 맞아본 자의 두려움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아이로 키울 텐데. 스스로 자신을 지키며 싸울 줄 아는 아이로 키울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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