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년 속곳 가랑이 빠지듯

아들 혼인예식에서 생활한복 바지저고리와 배자를 걸친 내가 보인다

by 꿀벌 김화숙

인사동 한복집을 구경하다가 생활한복으로 50만 원을 질렀다. 7월에 있을 막내아들 혼인예식에서 입을 '혼주 예복'을 12월에 샀으니, 질러도 제대로 질렀다. 전날 혜화에서 두 군데 둘러보기만 하고, 인사동에서 한 군데서 잠시 입어본 한 후 네 번째 매장에서 끝낸 셈이다. 무엇에 씌었을까, 아들에게 통보만 하고 사계절용 생활한복으로 시원시원 사버렸다.


연한 팥색 저고리에 진한 감색 핫바지, 그 겉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보라색 배자를 입기로 했다. 옷이 날개라 했던가? 배자와의 첫 만남에 기분이 아주 좋다. 사각대는 소재에 고운 생활한복이 나를 하늘로 날려줄 듯 가볍다. 흰머리 파마에 화장기 없는 내 얼굴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래, 너로구나 영접했다. 후에 혼주 예복값으로 아들이 돌려주면 기쁘게 받는 거고, 아니어도 내게 쏜 셈 치기로 했다.


"평소와 다르게 과감하게 결정하네? 막돌이도 아직 더 둘러볼 줄 알았대."

내 패션쇼를 지켜보며 사진 찍어주고 가족 톡에 올리고 하던 짝꿍이 놀란 티를 살짝 냈다.

"맞아. 내 기분이 오늘은 그렇게 하고 싶대. 사장님이랑 말도 통하고, 과감히 결정했어."

내가 쐐기를 박고 결제했다.

"패션쇼만 하고 나올 줄 알았는데, 역대급으로 빨리 샀어. 사장이 말을 잘 알아듣더라… "

가게 문을 나서며 덕이 거듭 신기해했다. 그랬다. 내 마음을 따랐을 뿐이다.


원하는 물건을 잘 골라 좋은 가격으로 사는 건 늘 어려운 과제였다. 주머니가 두둑한 것도 아니고 쇼핑을 자주 하는 사람도 아니니 더 그랬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할 수도 있었다. 내 마음의 소리가 워낙 분명했고 나는 거역하고 싶지 않았다. 내 뜻에 잘 응대하는 사장님과의 케미도 한몫했을 것이다. 과하게 친절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은, 스토리를 만드는 쇼핑이었다. 심각한 주제를 놀이하듯 가볍게 풀어보는 경험이었다.


쇼핑이야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는 거 안다. 7월까지 내 맘이 변한다거나 내 뜻을 관철하지 못 하게 된다거나. 그러나 지금은 대만족이다. “옷에 갇힌 인형으로 막내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지 않다. 엄마들 옷은 왜 똑같은 치마저고리여야 하냐. 컨베이어벨트 물건처럼 흘러가고 싶지 않다.” 그런 고집이었다. 짝꿍은 무난하게 양복 입겠다 했고, 신부 측 부모들은? 원하는 대로 입으시리라.





통념과 관습의 두려움

옷 좀 편하게 입고 아들 결혼식에 참여하는 엄마는 문제적 사람일까? 영화 <애비규환>의 앤딩 결혼식 장면이 떠오른다. 대학생 토일이 고등학생 호훈을 과외하다가 연애하고 임신해서 결혼하는 이야기다. 똑똑한 여자가 어리고 어리바리한 남자와 엮여 삶이 예상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토일은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새아빠와 엄마와 15년째 살고 있다. 철부지 호훈과 결혼하는 게 맞나, 망하는 결혼이면 어쩌지, 두려움과 번민이 없을 수 없다.


"무서워 죽겠다고. 엄마는 결혼하고 이혼하기라도 했는데 나는 벌써 이렇게 됐잖아."

토일이 결혼 앞두고 털어놓은 말이다. 배는 점점 불러오는데, 결혼은커녕 파혼하고 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였다. 앞길엔 확실한 게 하나도 없었다. 엄마는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그러냐면서도 토일의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을 마주하게 도와준다.


"그러니까 우리처럼 될까 봐 무섭다 이거네? 나라고 망할 줄 알고 결혼했겠냐?"

엄마는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덧붙인다.

"생각해 보면 망해도 완전히 망한 건 아닌 거 같아. 그 인간 때문에 너를 만났잖아."

망하는 거 두려워하지 말고 용감하게 살아보자고 모녀는 손잡고 두려움을 넘어간다.


그들의 결혼식은 통념과 관습의 두려움을 깨는 잔치였다. 한복 입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는 아빠. 단발머리에 투피스 정장을 입고 자유롭게 웃고 떠들며 즐기는 엄마. 신부 쪽 부모는 어떤가. 볼록한 배를 드러낸 신부는 엄마와 입장한다. 엄마는 흰 셔츠와 짙은 넥타이 위에 까만 바지 정장을 입었다. 토일이를 15년간 키운 현재의 아빠는 양복저고리에 꽃을 꽂고 혼주석에 앉아 모녀 쪽을 자꾸만 돌아본다. 토일이 생부는 꽃을 꽂고 하객석에 있다. 토일과 엄마가 나란히 손을 잡고 입장하는 뒷모습을 비추며 영화가 끝난다.



미친년 속곳 가랑이 빠지듯

호훈이 엄마아빠처럼 나도 아들 결혼식에 내 뜻대로 입고 갈 수 있을까?

토일이 엄마처럼 나도 통념과 관습의 두려움을 넘어갈 수 있을까?

신랑 엄마가 생활한복 입겠다는 게 도대체 왜 고민할 문제냔 말이다.


"미친년 속곳 가랑이 빠지듯."

여성의 옷차림을 흉잡을 때 쓰는 우리말 속담이 떠오른다. 미친 여자가 옷을 단정하게 제대로 여미지 않아서 속바지가 삐져나온 상태를 보여준다. 옷차림이 좀 자유롭다고 바로 미친년 소리 듣는 세상이었다. 이게 과거형이기만 할까? 여성으로 살아보면 안다. TV에 나오는 여자들을 보라. 거리에 다니는 여자들을 보라. 옷차림이, 머리 모양이, 백인백색이던가?


포털에서 '미친년에 관한 속담'을 쳐 보라. 주르륵 15개가 넘게 이어진다. "미친년 속곳 가랑이 빠지듯"과 용호상박으로 "미친년 치맛자락"도 있다. 옷차림 하나만으로 여자는 쉽게 미친년이 되는 거다. "미친년 널뛰듯" "미친년 방아 찧듯"은 또 뭐란 말인가. 활기차고 행동이 자유로워도 미친년이다. 그럼 '미친놈에 관한 속담'은 어떨까? 달랑 2개다. 그나마 둘 다 "자식 추기 반미친 놈 계집 추기 온미친 놈"란 내용이다. 남자는 아내 자랑하면 완전 미친놈이 된다. 이러니 여성혐오하고 목석같은 남자만 양산되는 거다.


7월에 과연 나는 '미친년'에 등극할까? 욕먹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아주 스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남모르는 이 즐거움에 어찌 비하랴. 올림머리에 조신한 치마저고리 화숙은 큰아들 결혼식 때로 끝냈다. 대신 이번엔 산발한 흰머리로 보라색 배자를 펄럭이며 위풍당당 걸어가는 거다. '미친년 속곳 가랑이 빠지듯' 내 뜻대로 입고 웃어젖히는 나를 보는 즐거움.


오늘은 12.3 내란 1년이 되는 날이다. 작년 오늘처럼 영하의 추운 날씨에 국회 앞에서 진행 중인 "12.3 내란외환청산과 종식 사회대개혁 시민대행진"을 들으며 현장에 가지 않은 미안함을 달래며 쓴다. 반성조차 하지 않는 내란 세력을 향해 함성이 울려 퍼진다. 내란 세력을 완전히 청산하고 내란 이후의 대한민국을 만들 용기가 있느냐고 연사가 묻고 있다. 끝까지 싸우자고 외친다. 그래, 민주시민의 용기가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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