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모먼트를 1년 내내 리마인드 하는 방법
거실에 걸린 캘린더에 12월이 다 지나가고 새 캘린더를 사려던 즈음이었다. 깔끔한 틀에 예쁜 이미지가 들어간 월력 디자인이었는데, 매번 비슷한 캘린더를 사기가 뭔가 심심했다. 틀만 분리하면 직접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리해보니 단순했다. 나무틀과 걸이끈, 나사가 전부였다. 길이도 A4 사이즈에 꼭 맞았다. PPT 세로형 탬플릿 상단에 사진을 넣고 구글에서 무료 캘린더를 다운받아 넣었다. 예상대로 간단한 작업이었고, 오히려 1년 동안 찍은 많은 사진 중 12장을 고르는 게 더 힘들 정도였다.
우리 닉네임을 딴 표지 이미지까지 총 13장을 출력해서 21년 1월 1일, 같은 자리에 직접 만든 캘린더를 걸었고 가족 생일과 기념일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정말 간단하고 만족스러운 작업이었다.
매년 좋아하는 사진들이 1년 내내 거실에 걸려있었고 올해 달력까지 이어졌다. 23년은 보는 날이 적은 표지는 생략하고 월력만 제작했다.
사진을 고를 땐 되도록 해당 월에 찍은, 그중에서도 계절이 느껴지는 사진을 쓴다. 처음 시작할 땐 한 해 추억을 고스란히 담는 의미였는데, 취미의 중심이 캠핑으로 옮겨가면서 이젠 캠핑사진을 주로 고르게 된다.
3월엔 포천 캠프운악에 갔었지, 4월에 먹었던 저 오픈토스트가 맛있었지, 저땐 롤테이블을 썼구나 하면서 매달 월력을 넘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정도면 거의 캠핑 캘린더에 가까운데 그럼 어떤가. 우리 가족의 모습이고 내가 좋아하는 모먼트들이니 어느 하나 좋지 않은 사진이 없다.
한여름, 한겨울처럼 캠핑이 없던 달들은 가족여행 사진을 담는다. 7월 달력은 작년 여름 휴가지 전주 한옥마을에서 찍었던 아네스(=아내)의 독사진이다.
작년 9~11월은 카키/밀리터리 세팅이 갖춰가던 시기에다 날씨요정도 도왔던 때라 맘에 드는 컷이 많았다. 위 10월 사진은 올해 인스타그램 좋아요 베스트를 찍었던 사진인데 텐풍과 단풍, 그리고 아들의 자연스런 뒷모습이 맘에 든다.
말 그대로 셀프 제작이라 출력도 직접 하기 때문에 너무 어두운 사진은 잉크가 번져서 밤풍경은 걸러낸다. 그리고 일반 A4 복사지(75~80g)보다는 두꺼운 종이를 써야 출력해도 울지 않고 걸어도 휘지 않는다. 처음엔 180g 용지를 썼는데, 프린터에 따라 용지가 걸리기도 해서 이후론 120g 용지를 쓴다. 10장 단위 2천 원대 가격이고 여유분까지 2묶음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캘린더 월력 이미지도 구글에 검색하면 무료로 배포하는 버전이 많아서 원하는 타입과 디자인을 골라서 쓰면 된다.
3년째 새해 첫날 직접 만든 캘린더를 거실에 걸었다. 첫 사진은 지난겨울, 아파트 단지에 쌓인 눈에 누워 바둥거리는 아들의 모습이다. 한 달 내내 볼 생각에 이미 즐겁다.
요즘은 버라이어티 예능 캘린더, 캐릭터 캘린더, 인기 웹툰 작가가 굿즈로 제작하는 캘린더도 많은 것 같다. 물론 다 예쁘고 좋지만 사진을 좋아하고 추억을 많이 남겼다면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제작 사이트도 있지만, 직접 고르고 디자인하고 만들어보면 한 해가 조금은 더 즐거워지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