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흔희 Aug 21. 2024

팀장님처럼 되고 싶진 않아

#9. 비전 없는 회사




 오 팀장은 회사에서 소문난 대표 바라기다. 대표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는, 대표가 없을 때는 세상 의기양양하게 사무실을 휩쓸고 다니다가, 대표가 사무실에 등장하면 철썩 붙는 충실한 심복이다. '대표님 덕에 십 년 넘게 이 회사에 남아있는 것'이라는 그의 스토리는, 회식 때마다 되풀이되는 통에, 이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다. 


 오후 3시 10분. 

 대표가 외부 출장으로 자리를 비우고, 영업 사원들이 외근으로 자리를 비운 사무실에 오 팀장과 정민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오 팀장은 오늘도 유튜브 영상 몰아보기 삼매경이다. 


"와 씨, 진짜 웃기네, 정민 씨. 이거 봤어?"


 파티션 너머에서 배를 쥐고 웃던 오 팀장은, 정민에게 모니터를 쓱 돌린다. 모니터에는 최근 조회수 떡상했다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아, 그거 봤어요. 웃기더라고요."


 정민은 적당히 오 팀장 말에 호응해주고, 거래처에 답메일을 마저 쓴다. 

 입사 초반에야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성의 있게 리액션을 했지만, 끝을 모르고 길어지는 사담에 지금은 적당히 차단하는 기술을 익혔다. 시답잖은 농담과 가십거리를 MZ와의 소통으로 포장하는 오 팀장. 유치해서 대꾸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지만, 너무 칼같이 자르면 서운해해서 삐지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맞춰주는 편이다.


 시큰둥한 정민의 반응에 멋쩍게 모니터를 제자리로 하고, 다음 영상을 클릭하는 오 팀장. 때마침 그의 핸드폰이 울린다. 


"예. 대표님. 네네. 분기별 정산 자료, 아, 그거 정민 씨가 작업하고 있습니다. 

지금 보내드릴까요? 네! 바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아까 말씀하신 거 말입니다 (뚜뚜뚜뚜)"


 이번에도 오 팀장의 통화는 일방적으로 차단당했다. 오 팀장은 끊긴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민의 자리로 다가온다.


"정민 씨, 분기 정산 자료 다됐지?"

"그거, 아직 하고 있는데요."

"어제 다했다지 않았어?"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었는데요."

"아씨, 지금 보내달라잖아, 대표님이"

"메일 보내고 바로 작업할게요."

"지금 필요하다고 했다고!!!!"


 

 어느 회사의 비전을 보려면, 위 상사의 모습을 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민은 지금 회사에 비전이 없다고 느낀다. 누군가는 상사를 존경해서 회사에 남아있다던데, 정민은 앞으로 절대 팀장님처럼 되고 싶지 않다. 대표님 말 한마디에 전전긍긍하는, 자아실현보다는 자리보전에 급급하는, 나가면 전쟁터라며 어떻게든 잘리지 않으려고 바득바득 애를 쓰는 모습이, 이해도 안 되고 절대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다.






 정민에게 이 회사는 애초에 징검다리 같은 존재였다. 대학 졸업 후에 쉴 만큼 쉬었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용돈 받기 슬슬 눈치 보이던 차에, 식사 시간마다 은근히 가해지는 부모님의 압박에, '어쨌든 직장인'이라는 방패막이가 필요했다. 이런저런 모임에 나가서도 백수로서는 소개할 거리가 없기도 했고. 거창한 목표가 있는 친구들과 달리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와중에 면접본 회사, 규모는 작았지만 워라밸을 최고로 여기는 정민에게 맞는 곳이었다. 중소기업이라 지원자가 없는지 면접 때부터 팀장은 '우리 회사 최고 복지는 칼퇴'라며 달달한 찌를 정민에게 던졌다. 그러면서 자세를 낮추고 은밀하게 속삭였다. "여기, 일도 그렇게 많지 않아요."라며.

 애초에 빡세게 일하는 건 싫었고, 회사 일로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도 없었던지라 정민은 지금의 직장이 자신에게 참 잘 맞다고 생각했다. 통근거리 20분도 최대 장점이었고.



 그렇게 입사한 회사는, 정말 팀장이 말한 그대로였다. 처음 몇 달은 적응하느라 정신없긴 했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이보다 편한 곳이 없었다. 마감이 있는 월말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날들은 주로 웹서핑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로 인해 평일에는 누구보다 연예계 소식에 빠삭해졌다. 기사 검색하다가 지치면 즐겨찾기에 저장해 둔 쇼핑몰을 하나둘 씩 방문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주변 친구들도 정민을 꿀빤다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편했던 마음은 점점 불편해졌다. 이대로 계속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맞나 싶어졌다. 월급을 저당받아 자유를 속박당하는 느낌이랄까. 여기 계속 있으면 소위 말하는 물경력이 되는 건 아닐지, 속절없이 들어가는 나이도 신경쓰였다. 마냥 편하게만 있다가 바보 되는 건 아닐까, 이직하게 되면 지금 회사에서 했던 경력을 살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심란해졌다.


 사실 편하기로 치면 지금만 한 회사가 없을 거다. 적당히 팀장을 구슬리는 법도 체득했고, 눈치 보며 무리하지 않으며 일하는 법도 익혔다. 문제는 '배울 만한 게' 없다는 것. 이 회사에서 배운 것이라고는 분위기를 읽는 눈치와 상사 비위 맞추는 법뿐이다. 커리어 성장 욕심은 개나 줘버린 지 오래다.


 이런 고민을 털어놓아도 친구들은 배부른 소리 한다지만, 이대로 시간만 허비하는 게 맞나 싶다. 월급 루팡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퇴근하며 느끼는 건 성취감도 뿌듯함도 없이 오늘 하루도 잘 흘려보냈다는 생각뿐이다. 이 상태로 십 년을 있는다면 지금의 팀장님처럼 되겠지. 연봉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여기 계속 다녀도 될까?'


 요즘 부쩍 많아지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하다. 

금세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상념을, 기계적인 엑셀 작업으로 날리려 애쓴다.



 그때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던 오 팀장이,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쑥 내밀며 말한다.


"맞다, 정민 씨~ 대표님이 랍스터 사준다네. 내일 저녁 시간 괜찮지??" 





직장생활은 왜 힘든 걸까?



#. 비전 없는 회사



 사회생활하며 배울 게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올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워라밸이 좋다고 해도 더 이상 성장하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현타가 오게 되죠.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이 도전하지 않고 현상 유지만 하게 되면 이 회사에 계속 다녔을 때 미래가 괜찮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시장에서 내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고, 여기 계속 있어봤자 상사처럼 될 텐데,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기에,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몸값을 높여 이직해야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많아지게 되죠


 특히 이런 고민은 신입이거나 저연차 경력직인 경우 많이 하게 됩니다. 한창 배우며 성장해야 할 시기에, 더 이상 발전 없는 회사에 나의 성장도 가로막힌듯한 기분이 들지요. 상사로부터 더 이상 배울 것도, 본받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커리어를 쌓을 수는 있을지, 자칫 물경력이 되는 건 아닌지 고민이 깊어지고요.


 보통 비전 없는 회사는 고인 물이 대다수인 경우가 많습니다. 일보다는 외적으로 바쁜, 사내 정치질이 만연한 케이스도 많고요. 결국 회사에 남게 되는 건 사내 정치로 살아남은 이들 뿐, 적응 못한 신입은 몇 달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는 통에 악순환이 반복되고는 하지요.


 사실 개인적으로 '비전 없는 회사'에 대한 관점은 주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느끼기 나름이고, 이를 상황에 따라 잘 활용해서 본인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거나, 근무 시간 이후에 자기 계발해서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도록 갈고닦을 수도 있지요.

 확실한 건 '비전 없는 회사'라고 느끼고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면, 계속 그 상태에 머무르는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

.

.


'비전 없는 회사'라고 느껴 퇴사를 고민 중이라면, 

아마 아래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게 되실 겁니다.



벗어나려 노력하거나.

머무르되,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거나.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요?

이전 08화 한 지붕 아래 느끼는 소외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