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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사이 Jun 06. 2024

성인 ADHD라니. 내가?

아내가 좋아하면 됐다.

뜬금없이 끓어오른 감정은 사소했던 기억들을 집어삼키며 자가발전하며 몸집을 키운다. 영문도 모르는 가족은 또 그런다며 거리를 둔다. 시간이 지나고, 다 타버린 성냥개비처럼 쪼그라든다.

왜 그랬을까 후회하고, 멋쩍은 웃음으로 돌아온다.

‘난 그냥 답답했던 건데,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어’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눈다지만, 어느새 내 말만 쏟아내고 있다. 머릿속 이야기들이 좁은 입술 틈새에서 막히듯 말은 점점 빨라지고 급기야 두서없이 내뱉는, 아무 말 대잔치가 된다. 상대도 분명 말을 했지만, 기억할리 없다. 머릿속 이야기를 완전히 비울 때까지 쉼 없이 배설한다.

상대는 지쳐, 휴대폰을 바라본다.

‘난 대화를 하고 싶었어.’


가족과 함께 드라이브를 한다.

‘와, 여기 경치 좋네. 이 동네에 이런 곳이 있었네’

아내와 아들은 이구동성이다. ‘여기 왔었잖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런 적 없다고 따진 것도 여러 번.

아내의 마지막 말은 늘,

“넌 항상 새로워서 좋겠다”

난, ‘음, 솔직히 새로워.’


모니터를 바라보며 일에 열중한다.

수많은 데이터를 조합하고 적절히 배치하며 멋진 보고서를 만들고 있다. 얼굴은 모니터를 향한다. 잠시 고민할 때면, 손은 악력기를 움켜쥐고 다리는 떨고 있다. 갑자기 다른 일이 생각난다. 전화기를 집어든다. 한참을 통화하고 곧바로 자료를 보내기로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새로 온 메일이 와 있다. 열어서 읽는다. 열심히 답장을 적는다. 다시 한번 읽어 본 뒤 보낸다.

앗, 잘못 보냈다.

앗, 그런데 뭔가 할 일이 있었는데?

‘멀티태스킹을 멋지게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난 주말, 또다시 멋쩍은 웃음만 짓는 내게 아내가 말한다.

“혹시 성인 ADHD가 아닌지 검사해 봐”

현대인이 갖는 고질적인 ‘화병’, 유능한 회사원이 갖는 ‘건망증’이라고 치부하던 나는 코웃음 쳤지만,

아내의 눈초리에 근처 정신의학과를 검색한다.


며칠 후 퇴근하고 찾은, 생애 첫 정신의학과.

‘아니, 이렇게 정신줄 놓은 사람들이 많다니’

환절기 소아과를 방불케 하는 인파였다. 어른들로 가득한 것이 다를 뿐이다. 어색함을 꾹꾹 누르며 접수를 하고, 벽면 테이블 쪽 빈자리에 앉았다.

눈치를 살피듯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본다.


병원 입구 바로 왼쪽에는 접수처를 마주 보며 2열 횡대의 긴 대기석이 있고, 대기석 끝자락에 사람 하나 다닐 통로를 사이에 두고 벽면을 따라 붙박이형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마치 컨테이너 박스처럼 옆으로 길고 폭은 좁은 공간이었다.


대기석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마치 접수대를 향해 스마트폰을 성경삼아 두 손 모아 쥐고 기도하며, 자신의 고해성사 순서를 기다리는 듯했다. 또, 이름이 불리면 들어갔다가, 돌아오면 성수를 받고 다음 만남을 약속한다.

이런 상상을 하며 혼자 피식 웃고 있었다.


“유린기 님!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미리 진행했던 테스트의 결과를 말해준다.

“ADHD로 볼 수 있습니다. 주의력은 양호하지만, 충동성이 모든 테스트에서 범위를 벗어납니다”

아니, 실수를 인정한다. 모든 평가에서 마우스 버튼을 조금 일찍 누르거나 여러 번 누르거나..

실수가 아니었나.


약을 처방받는다.

처음이니, 가장 적은 함량으로.


테스트 결과지와 약 봉투를 쥐고 집에 왔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표현이 딱이다. 성인 ADHD는 새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 증상이 이어진 것이라고 했다. 문득, 지난 시절의 기억들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진다.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여러 돌발행동들, 혼자 정한 계획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빠른 포기.

잠시, 비운의 주인공 행세를 한다.

‘그래, 정상이 아닌 뇌라 힘들었던 거야’


다음날, 회사에서 넌지시 말을 던져본다.

“하하, 제가 ADHD라던데요?”

팀장이 말한다.

“요즘 누구나 하나쯤 정신병 갖고 있지 않냐?”

동료는 말한다.

“에이, 넌 정상이야. 회사에 너 말고 정말 이상한 사람들 많아”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지만 그들의 말에 솔직히, 반박할 수 없다.

‘내가 ADHD면 전부 ADHD다!’


나이를 먹으니, ADHD에 살짝 나르시시스틱 오만함이 더해져 이 모양 이 꼴이다.

타격감이 없다. 다행인가.


자 이제, 약 먹을 시간이다.

—————————

약을 먹으니,

텐션이 오르다 만다.

1.4배속 세상이 0.8배속이 된 듯, 느려진다.

말을 내뱉는 것조차 힘에 부쳐, 입을 닫는다.

이제, 가만 듣고 있다.


아내가 좋아한다. 그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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