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에서 불거져 나온 다짐
5:29. 요 근래 일찍 잠에서 깨어나도 억지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오늘은 뒤척이다 포기하고 일어난다. 불면증이 시작되니 건망증도 덩달아 심해졌다. 좀처럼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없던 나는 소지품을 잃어버리고, 외출할 때는 스마트폰을 두고 나가는 일이 생겼다. 설단현상도 늘었고, 말이 흐릿해지고, 또한 장황해졌다. 모든 것이 경보음이다. 아, 잠이여 돌아오라.
요즘 잠에서 깨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심경은 슬픈 허무다. 아내의 작은 이모부님이 편찮기 때문이다. 편찮다는 말은 증상을 왜곡할 수 있으니, 직설적으로 말하면 위암 4기로 이미 여러 장기에 암세포가 전이되어 손 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건강검진을 받고 위험신호를 알아챈 것은 지난 5월. 급하게 대형 병원을 찾았지만, 의료 사태로 예약도 쉽지 않았다. 겨우 찾아 이주일을 기다린 끝에, 이모부는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시작된 곳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암세포가 전이되었고 위 외벽 쪽으로 전이되었다고 한다. 청천벽력이다. 가족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마음만 저린다. 이후, 자택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주변 대학 병원으로 옮겨 항암치료를 받았다. 호전되는 듯했으나, 현재는 위에 천공이 생겨 식사도 어렵다. 수술은 곤란하다고 한다.
병문안을 가니 이모부는 민머리에 창백한 얼굴로 애써 웃음 짓는다. 자식이 없는 이모부는 조카손주가 보고 싶다고 하신다. 다행히 아들은 평소처럼 천진한 모습으로 할아버지에게 인사하고 말을 건넨다. 아내는 다른 필요한 건 없는지 꼼꼼히 살핀다. 스마트폰 조작, OTT 설치, 전산 서류처리 등 어른들의 IT도우미 역할이다. 난 안부인사만 하고 모든 장면을 눈에 담을 뿐이다. 머릿속은 애써 문장을 찾지만, 어떤 위로의 말도 내뱉기 어렵다.
하나뿐인 조카손주를 누구보다 이뻐하며 힘들게 손수 지은 채소도 가져다 주신다. 채소 핑계로 편도 3시간 거리를 당일에 오가신다. 과묵한 이모부는 ‘허허’ 웃음지으며 ‘곰할아버지’라 부르며 주위를 맴도는 손주를 귀여워한다. 10살이 넘은 아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저 높은 곰할아버지의 어깨에 얼마나 많이 올라타서 해맑게 웃었는지.
안타깝게도 코로나로 3년간은 함께 여행하기 어려웠지만, 정년퇴직을 하면 다시 가기로 약속했다.
이제 정년퇴직을 했다. 잠시 숨 돌리며 새로운 여생, 즐거운 여생을 계획하고 있었다.
35년간 직장에서 일했다. 자식이 없어 조카들을 가족처럼 챙겼다. 챙기기만 했다. 자신보다 가족과 주변을 더 챙겼다. 이제 여유롭게 즐기고, 아쉬움을 달래며 당일치기로 왔다가지 않아도 될 터였다.
이제 정년퇴직을 했다. 그러나 숨 돌릴 새도 없이 병원만 오간다.
신에게 불공평하다고 따지기도 했다. 수술하기도 어렵다는 의사의 말은 시한부 인생 선언이었다. 이모부 마음을 헤아릴 수 없지만, 울분을 애써 참으니 허무하고 처량하고 고독할 뿐이다.
지난날은 행복하셨을까. 웃음 지으며 떠올린 계획은 무엇일까.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내가 무엇을 도와드릴 수 있을까.
작년 이맘때, 장모님은 즐겁게 말씀했다.
‘곰 서방, 내년에 어디 갈까?’
이제 정년퇴직을 했다. 그런데 올해를 넘기기 어려울지 모른다고 한다. 예정에 없었다.
6:23 난 오늘도 출근한다.
무거운 감정을 안고 현실로 돌아온다. 나에게 묻는다. 이별이 영원한 슬픔이 될지라도 추억 곳곳에 미소를 심어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난 이모부를 위해,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나를 돌아본다,
지금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사는가. 웃으며 꿈꾼 계획을 미루고 있지 않은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슬픈 허무 속에 겸손해지며, 죽음 앞에 후회 없는 희망을 꿈꾸고 의지를 품는다.
사람들은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믿지 않는다 - 톨스토이
메멘토 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