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아빠진 나는 책을 읽는다
살고 살아 사람이라고 했던가. 모난 것보다 둥근 편이 낫다고, 아니 모가 났어도 살다 보면 모난 자리는 깎여 나간다고 했다. 흔적이 쌓인, 둥근 나이테처럼.
할머니는 철부지 손자의 주머니를 손때 묻은 잔돈으로 채웠다. 정이란 이름으로, 사랑이란 이름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어린 손자는 불거진 주머니를 보며 볼멘소리만 했다.
그리고 스물넷의 가을, 마치 더 이상 줄 것이 없다는 듯 홀가분하게 떠나셨다. 할머니의 부재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과 함께 잠시 반짝였을 뿐 이내 잊혔다.
그리고 다시 이십 년이 흘렀다.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고 귀여운 아이를 키우며 살던 어느 날, 문득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약게 살아야 혀. 미련곰퉁이처럼 살지 말고”
철부지 손자는 몰랐다. 주머니가 터져버린 것을.
마음에 소나기가 내려 결국 눈으로 흘러넘친 것일까.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닦지 못하고 멀거니 과거 속에 잠긴다. 직장 생활은 울퉁불퉁했다. 모두가 상하 직급으로 나뉜 채 작은 팀들로 옹기종기 모이고 또다시 그룹을 만들었다. 회사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일개, 대체 가능한 세포가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눈을 치켜뜨고 소리치며 전화기를 집어던지는 상사들은 무시무시했다. 담배연기 자욱한 회의실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를 하면, 잠시 후 따가운 눈 비비는 손조차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칭찬 따위는 없다. 마치 지적질이 상사의 일이라는 듯이.
눈도, 뺨도, 마음도 빨갛게, 타들어가듯 익어갔다. 새하얗던 손자는 나이가 들수록 검붉어지고, 결국 입 밖으로 불을 내뿜는다. 동료에게, 아내에게, 아이에게. 철부지 손자는 의심하지 않고 답습하고 있었다.
거울 앞에 서서 눈물 젖은 뺨을 바라본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본 내 모습에서 얼마나 달라졌을까. 슬픈 얼굴 곳곳에는 주름이 만든 그림자로 얼룩져 있고, 짙은 점들은 어둠을 더하고 있다.
‘왜 나는 약지 못한 걸까?’
나이테의 수가 나이를 가리킬지라도 마음의 넓이는 지름에 비례한다. 지름은 나이테 사이의 간격으로 이루어지며, 시곗바늘처럼 한 바퀴 돌면 분절된 생의 적분이 된다. 삶의 높이는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으로 본다면 알기 쉬울까. 땅 위에 얼마나 높게 치솟았는지를 보면 되리라. 그러나, 땅 속에 얼마나 견고하게 뿌리 박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좋은 터 잡았다면 깊을 테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서 있으면 다행일 테다. 애초에 씨앗의 정착이란 바람 따라 어디에 자리 잡을지 모르는 운의 영역이었다.
분명, 삶의 부피는 커졌다. 나이테는 개수가 많았지만 간격이 좁았다. 다만 회사에서 치열하게 산 덕분인지 높이는 그리 낮지 않다. 결국 삶은 얇고 긴 봉상이 되어 있었다. 어느덧 중년이 된 손자는 걱정하기 시작한다. 거센 바람에 흔들려 부러지진 않을까.
다시 따져본다. 무거우면 버틸 수 있으리라. 그럼, 삶의 무게는 얼마일까.
사춘기인 중학교 2학년 때, 도서 대여점에서 책을 빌려보는 취미가 생겼다. 쉬는 시간뿐만 아니라 수업이 끝나면 늘 도서관에 들렀고 다양한 국내외 소설들에 심취했다. 그러나 3학년이 되면서 고입시험 준비, 고등학생이 된 후에는 취침 시간 외에는 대입시험 준비에 집중하면서 책과는 멀어졌다. 책을 덜어낼수록 삶은 한없이 가벼워졌다. 생각은 짧았고 부끄러운 행동은 모두 ‘청춘’을 면죄부 삼았다. 취직 이후에는 자기 계발서와 재테크 서적을 보았고, 승진이나 노후를 위한 공부가 유일했다.
그러던 중 마흔셋의 어느 날, 친구가 죽었다. 꿈을 꾸고 이루며 살던 친구였다. 대기업에 다녔음에도 어릴 적 꿈이던 파일럿이 되겠다며 소식을 끊더니, 몇 년 후 나타나 파일럿이 되어 무지개를 그리듯 세계를 넘나들었다. 환한 표정의 친구는 힘든 내색 없이 웃기만 했다.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일 년 전 연락이 왔다. 대장암 말기라고.
그날도 회사 퇴근 후 동네 독서실에서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독서실을 박차고 나왔다.
‘왜 나는, 도대체 왜 그는 약지 못한 걸까?’
한동안 시도 때도 없이 멍해졌다.
우연일까. 집 안을 서성이다 책장에 꽂힌 책을 한 권 꺼내 들었다. 순식간에 복잡한 사념은 사라지고 책 속에 몰입했다. 마치 다른 차원으로 순간 이동한 듯,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시간이 꽤 지나 있었다. 마음은 온기로 가득했다. 잃어버린 금고 열쇠를 찾은 듯, 마음은 오직 책을 통해서 열렸다. 소설부터 고전, SF, 시, 희곡, 수필까지 가리지 않고 게걸스럽게 읽어댔다. 이백여권이 될 즈음, 나는 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삶을 내 목소리로 그려내기 시작하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소중히 여겨야 하는, 묵직한 가치가 무엇인지.
밀도는 무게에 비례하고 부피에 반비례한다.
이제야 가치를 그러안는다. 강풍에 부러지지 않도록, 진한 향기가 배어 나오도록 삶의 밀도를 한껏 올려 나간다.
이제야 비로소 내 삶이 조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