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3월 9일 20대 대통령 선거일
마흔까지 천일이 남았다.
서른이 될 무렵,
나는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과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잘 살고 있다고 확신했다.
비록 어린 시절 그리던 서른의 모습보다 많이 부족하고, 많이 철이 없고, 많이 불안했지만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세네갈에서 맞이했던 나의 서른은 그렇게 내가 되고자하는 모습과 내가 가고자하는 방향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제 마흔까지 천일이 남았다.
서른에 나름대로 만족해 마지 않았던 그때와 같이 마흔에 내가 나의 모양새에 만족할 수 있을까.
삶이란 길지 않다.
마흔까지 1,000일의 시간이 남아있지만 마흔을 맞이 한다는 보장조차 없다.
평생을 마흔에 죽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살았다.
그렇게 죽게 되는 날, 후회없이 죽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최근에야 알았다.
'죽고싶다'는 말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다른 표현일 뿐임을...
마흔-1,000일
하루 5분 일기를 몇개월간 써왔고,
새벽운동을 시작한지 이제 한달이 넘었고,
리더십과 자기관리를 위한 책을 올해 초부터 보기 시작했다.
나는 죽고싶었던게 아니라, 변화하고 성장하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그러다 한없이 무력해지고, 내 자신이 하찮게 느껴지는 어느 때에
역시 마흔에 죽겠다는 희망하나로 이 삶을 이어온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리도 끔직히 사랑하는 나 자신을, 이리도 귀하고 소중한 나 자신을
나는 그저 변화하고 성장시키고 싶었을 뿐이었으며,
어린 날의 무지와 객기와 오만으로
인내심없이 죽음을 이야기 했을 뿐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해서 마흔까지 천일의 기록을 시작하려고 한다.
삶이 나에게 마흔까지의 삶을 허락한다면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게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이다.
마흔이 코앞인 나는 서른 무렵의 그때처럼
한없이 부족하고, 불안하고,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것은
25년 만에 데미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는 것과
20대에는 데미안 오마쥬로 '알'을 그렸다면,
최근 나는 '새'를 그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