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조직검사 후기
어제 점심 조직검사 결과를 들었다.
문제가 없었다.
아니, 검사를 받을 때만 하더라도 3개월이나 뒤늦게 병원을 찾은 나의 상태를 보는 의사선생님의 눈빛은 마치 죽어가는 고양이를 보는 눈빛이었다.
나는 그저 운동을 할 수 있는지만이 궁금했다.
보통 4군데의 조직을 떼어낸다는데, 7번이나 찝혔다.
작년 여름부터 올 여름까지 잘못된 약처방으로 위궤양을 겪고 있었는데,
이젠 자궁이네.
나이가 들면 으레 그렇듯 하나씩 고쳐쓴다고 하지 않는가.
고장났다고 하더라도 고칠 생각은 없었다.
암보험 지원비를 살펴보고, 내가 돈을 걸어둔 곳들을 정리해서 동생에게 일단 알고 있으라고 했다.
1억이 되지 않는 돈이지만 어딘가엔 쓸모가 있겠지.
그 외엔 걱정이 없었다.
삶의 전체적 관점에서 봤을때 개체의 소멸은 불가피한거니까.
게다 난 사후장기기증 신청자라서 오히려 좋은 일이 된다.
예전에 읽은 기욤뮈소 작가님의 책 중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라는 책이 있었다.
대충 한 남자가 스스로를 죽이기 위해 1년 후 자신을 죽일 킬러를 고용했는데, 그 사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버려서 그걸 막으려하는 내용이었던것 같다.
우리는 자신을 죽일 킬러를 고용하진 않지만
술이나 담배, 과식 등 온갖 자기파괴적 행동으로 자신을 죽이며 살아간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타나토스라고 했다.
유전자에 내재된 암 발병의 가능성을 트리거링 하는 건, 결국 자신이 만들어가는 삶의 습관.
예전에 누군가 아픈 나를 보고 '자기관리 잘해.'라고 냉정하게 말한 적이 있다.
이제는 100%동조한다.
질병도, 갑작스러운 죽음도 모두 그 원인은 본인이다.
그리고 그건 생물의 자연스러운 소멸, 조화와 균형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원인이 본인이라고 해서 그게 본인의 탓은 절대 아니고, 그냥 전체의 관점에서 소멸할 하나의 존재였을 뿐이라는 것이 전부이다.
감정을 이입할 것도, 집착할 것도, 후회나 미련을 가질 것도 없다.
어찌 될지 모르니 부차적인 것들을 중단을 하고,
컨디션을 보면서 운동할 기회를 노렸다.
운동을 하지 못하니 나머지 시간은 공부를 하면서 보냈다.
아, 나는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이렇게 살고 싶구나.
갑작스러운 죽음은 잔인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 죽음을 내가 당해봤고.
오히려 천천히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게 좋지 않나 싶었다.
그건 주변 사람의 이기적인 입장이었다.
고통을 감내할 수 있을 정도의 등가교환.
그러니까 사랑이 필요하다.
그런 인간 사이의 사랑이 존재한다면 고통을 감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더 큰 범위에서 이 지구와 우주를 생각했을 때,
인간 간의 이별 역시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이 된다.
그러므로 죽음은 합리화되고, 아름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