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전달에 관하여.
신부가 친구에게 부케를 던지는 장면은 결혼식에서 볼 수 있는 묘미 중 하나다. 대개 신부 지인 중에서 곧 결혼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꽃을 받곤 하는데, 식장 앞 켠에서 신랑신부와 같이 사진을 찍어 보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선행 연습이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날 결혼식을 지켜보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부케를 받는 사람은 누구일까? 지구 종말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해 보려 한다.
동갑내기에게만 부케를 줄 수 있는 사회가 있다고 가정하자. 동갑 친구가 100명인 그 집단은 99번째 신부가 마지막 100번째 친구에게 부케를 던짐으로써 그 나이끼리의 전달을 마치게 된다. 그렇다면 100번째 신부의 결혼식에서 누가 부케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앞서 가정한 것과 같은 사회라면 유사한 고민이 하나 더 생긴다. 100번째 신부보다 한살 어린 세대는 누구에게 부케를 받아야 할까?
두 집단을 이어 붙이면 간단히 답을 도출할 수 있다. 앞선 세대의 100번째 신부는 한살 어린 집단의 첫번째 신부에게 부케를 던지면 된다.
극단적인 예다. 하지만 이 장면이 머릿속에 맴돈 이유는, 이것이 '세대간' 이론을 보여주는 데 꽤 괜찮은 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비유는 경제학 교과서 등에서 나오는 '연금 수령'에 대한 것이다. 나이를 세대로 바꾸고 부케 대신 근로(일)를 넣어보면 된다. 앞 세대는 뒷 세대에게 근로를 넘긴다. 그러면 앞 세대의 연금 수령이 시작되고 뒷 세대는 근로를 하며 연금 재원을 마련한다.
경제학적 이론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연관 지을 예는 또 있다. 바로 직장 업무다. 주니어 직원이 어떤 업무에 역량을 발휘했다고 하자. 시간이 흘러 그는 매니저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전에 하던 일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후배에게 넘겨야 한다. (부케를 던져야 한다.)
간단한 얘기지만 현실에서 이를 말끔하게 행하기는 쉽지 않다. 일을 넘기는 사람의 기대치와 인계 역량, 받는 사람의 부담과 인수 역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인계자가 갖는 기대치다. 나는 이만큼 했는데 왜 너는 그만큼 못해내느냐는 비판을 받았거나 해 본 적이 있다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일을 받은 후배가 내 명성에 먹칠을 했다.'고 극단적으로 얘기하는 사람까지 봤다.
부케를 던지면 받은 사람이 그 꽃을 들고 간다. 받은 이후부터 다시 신부에게 돌아오는 경우는 없다.
일도 마찬가지다. 일을 넘겼다면 그때부터 다음 사람의 몫이다. 그 일과 자신을 동일시 하여 감정을 실으면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힘들다. 물론 일을 넘길 때 기본 지식과 더불어 자신의 경험을 보태는 것은 필수다. 부케를 '받을 수 있는 궤적'으로 던지는 것과 일맥상통 한다.
그 다음부턴 잊어야 한다. 일을 나만큼 못해내도 그건 나만의 생각과 시선일 뿐이라고 생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가 어떤 개선을 해내도 질투 할 이유는 없다. 설령 그 업무를 해 보니 불필요한 것이라 판단해 정식 절차를 거쳐 폐지를 한다해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개선이지 개악인지 알려면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역시 감정을 빼야 하는 것이다.
https://brunch.co.kr/@crispwatch/67
예전에 비슷한 맥락의 글을 쓴 적 있다. 그 글에서는 일단 가르쳐야 한다고 썼다. 그것에 보태어, 잘 가르치고, 일을 넘긴 뒤에는 잊으라고 말하고 싶다.
아, 모르겠고 이제부턴 네 책임이야.
이런 맥락이 아니라는 것은 다들 이해하리라 믿는다.
즐겁게 주말 마무리 하시길.
- 주말 출근날의 잡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