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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Nov 04. 2017

회사에서의 '책임감'이란.

자신의 목을 칠 단두대를 짜는 장인의 마음.

1. 당신이 흔히 들었을 책임감의 표현들


"이번 거래 잘 못 되면 내가 책임질게!" 

업무를 하며 종종 듣게 되는 호언장담이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책임감'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일에 대한 결과를 자신이 짊어지겠다니 일견 멋져 보이긴 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화자가 내뱉는 말의 데시벨이나 단호함으로 책임감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라면, 웅변대회는 서로 책임감이 크다고 성토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회사 일을 하면서 필요한 책임감을 이렇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2. 호언장담의 오점


호언장담이 내포하고 있는 귀결 내지 담보는 '퇴사'다. 즉, 내가 책임지고 물러날게.라는 뜻이다. 화자가 퇴사함으로써 비롯되는 것은 수입이 단절된다는 것밖에 없다. 화자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서 헝클어진 일이 풀리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을 어려움에 밀어 넣으며 죄의식을 덜려는 것뿐이다. 영화 '밀양'에서 스스로를 용서한 죄인과 다를 바가 없다. 회사 또는 동료의 입장에서 보자면 팩트는 변하지 않았다. 일은 여전히 헝클어진 채로 남겨져 있다.


3. 회사에서 필요한 '책임감' 


회사 업무를 할 때 필요한 책임감은 다르게 정의해야 한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게끔 하는 것". 이것이 진짜 책임감이다. 회사의 업무는 혼자서 완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단계에 참여하고 있다. 나의 업무처리가 이후의 다른 사람 업무에 영향을 미치고, 그 이전 업무의 성과를 비틀어 놓게 되는 것이다. 내가 할 몫을 온전히 했을 때 그 일은 제대로 흘러갈 수 있다. 일이 제대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 회사에서의 책임감이다. 


4. 진짜 책임감이 어려운 이유


일상적인 업무에서 이런 책임감의 정의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울 것이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가 처리해야 하는 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봉착했거나, 이미 내 손을 떠난 뒤 실수를 발견했을 때를 생각해 보자. 일이 틀어진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런 스트레스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퇴사를 하는 것이 책임을 지는 행위인가? 그렇지 않다. 


퇴사하려던 발걸음을 돌려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은 정말 어렵다. 나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용기'와 '만용'의 차이를 배웠지만, 저 진정한 '용기'를 발휘할 기회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도망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다. 주변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문제에 맞서는 사람을 칭찬하기보다는 '이거 왜 그랬어?'라고 추궁하는 경우가 잦다. 개인의 본능, 주변의 반응, 모든 면이 진정한 책임감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5. 극단적 비유, 그리고 해결책


아직 이런 일에 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혹은, 자신이 일을 꼬아놨는데 늘 뒤처리는 다른 사람들이 해줘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주변에 피해를 줘 왔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정말로 있다.) 아니면 일부러 그럴 때마다 '내가 딸린 식솔이 있어서..."라며 자리를 피해버린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들은 진정한 책임감을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비유를 해 보자. 어떤 나라에 단두대(기요틴)를 만들 줄 아는 유일한 장인이 있다고 하자. 어느 날 그는 치명적인 죄를 저질렀고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목을 칠 단두대를 만들어야 하게 되었다. 그런 순간에도 그 단두대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책임감의 극단적인 예라고 하겠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주변에 이런 용기를 지닌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그리고 문화 자체가 이런 이의 노력에 박수를 쳐 줄 수 있어야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법 쪽 얘기는 자주 인용된다. 유사한 구분법으로, 실수와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각자 평가를 받을 자격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퍼져야 한다.




* 때로 단순한 진리는 많은 선현들이 오랜 시간 강조해도 쉽게 와 닿지 않는다. 너무 당연해 보여서 그냥 잔소리처럼 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잭 웰치의 '위대한 승리'에 내 생각과 유사한 문맥이 나온다. 회사의 가치 (특히 Integrity)를 수호하는 사람을 공개적으로 칭찬하라는 내용이다. 잭 웰치의 해당 저서 한글 번역본이 처음 나온 것은 2005년이다. 그동안 이런 사고나 문화가 많이 자리 잡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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