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월 넷째주]
우리나라에 비해서 외국에서는 하우스 파티를 많이 하는 편이라
나도 숱한 하우스 파티 -영어로 말해서 그렇지 결국 집에서 모여서 노는 것이다- 를 참석해 보았다.
하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하우스 파티를 호스팅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조차 집에서 잔치(?)를 열어본 적이 없다.
물론 나의 작은 원룸에 사람들을 초대해 본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자취생의 작은 원룸에 몇명까지 초대하겠는가. 그래봤자 서너명 와서 같이 뭐 시켜먹는게 끝이라 파티라고 할 수도 없겠다.
명절이나 친척 모임을 집에서 한 적이 있지만, 우리 엄마가 호스팅 하는 거지 내가 호스팅 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사람들이 집에 모이면 우리 엄마나 큰이모는 상다리가 휘어지게 며칠간 준비해서 상을 차리고, 후식과 안주까지 마련했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파티 호스팅에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른다. 엄마와 이모들이 어떻게 잔치 준비를 하는지 옆에서 보고 자란 세대인 나는 절대로 저렇게 하지 않겠다, 속으로 생각했으니까.
아니면 그냥 게으른 귀차니스트라 그런 걸 수도.
파티 호스팅이라니, 생각만 해도 귀찮다.
사람들을 초대하고 몇명이나 오는지 파악하는 것 부터, 뭐 먹고 마실건지 계획하고, 방 쓸고 닦아서 자리 마련하고, 컵, 접시, 수저같은 같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 음악, 게임 준비까지 아주 골치가 아프다.
그 후에는 또 어떤가. 손님이 다 나간 자리는 내가 다 치우고 청소해야 한다.
하우스 파티 호스팅이란 이렇게 '큰 일'인 것이다.
그래서 파티를 계획 할 때 항상 나의 신조는 '나가서 사먹자' 였다.
하지만 서양 문화에서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집에서 노는 것이 흔하다.
대도시가 아닌 이상 다들 일찍 문을 닫기도 하고, 나가서 술마시고 노는게 너무 비싸기도 하다.
또 아늑한 '우리만의 공간'에서 '우리끼리' 노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좁아 터진 원룸이나 기숙사 방에도 사람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연다.
하우스 파티라고 해서 엄청 대단한 것도 아니다.
정말 간단하게 그냥 같이 집에서 밥 해먹고, 차 마시고, 디저트 먹고
심심하면 카드 게임이나 보드 게임 하는 거다.
안주놓고 맥주 마시면서 수다떨거나, 치즈 플레이트 해놓고 와인 마시거나.
물론 테마를 정할 수도 있다.
Taco Tuesday라고 과카몰리 만들고 타코 해 먹으면서 데킬라를 마신다던지,
만두 소 준비해놓고 다 같이 모여서 만두 빚고 쪄먹기 파티도 했다.
무비 나잇을 준비할 수도 있다. 같이 팝콘 먹으면서 영화 보기.
수다만 떨기 심심하니까, 보드게임 같은 걸 하거나 음악을 틀고 춤 추기도 하는거다.
내가 호스팅 하기 싫은거지, 파티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20대 열심히 하우스 파티에 참석했고, 친구들이 호스팅 하는 걸 보면서 어깨 너머로 배워왔다.
뭘 어떻게 준비하는지, 어떤 음식을 만드는지, 어떻게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지 같은 것들.
그리고 네덜란드에 와서, 드디어 내 안의 호스팅 본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사실 코로나때부터 점점 강화되어 온 나의 집순이 기질도 한 몫 한 것 같다.
나가기 귀찮고, 나가는 순간 돈 쓰기 시작 하는 것도 싫고, 와글바글 한 것도 싫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맛있는 거 먹고 마시고 놀고 싶다, 는 마음.
그래서 처음으로 친구들을 초대해서 하우스 파티를 열었다.
나의 첫 파티는 칵테일 파티였다.
10명 내외로 초대했는데 소정의 참석비를 받아서 칵테일용 술과 음료를 사기로 했다.
내가 정한 술은 화이트 럼. 럼에 콜라를 섞으면 럼콕이 되고, 오렌지주스를 섞어도 된다.
그리고 토닉워터와 민트, 라임을 넣으면 모히토가 된다.
사실 내가 모히토를 먹고 싶어서, 나의 방에서 키우는 민트들을 가지치기 좀 하려고 정한 테마다.
럼 두병에 추가로 부족할까봐 진도 한병 샀다. 진이 있으면 간단하게 토닉 워터를 섞어서 진토닉을 만들 수 있다.
저녁은 최대한 간단히 하려고 비건 미트볼 토마토 파스타로 정했다.
파스타 면 따로 삶아 놓고, 소스 따로 만들어 놓고 각자 덜어 먹으라 하면 되니까 제일 쉽다.
그리고 집 앞 마트에서 우연히 사 본 비건 미트볼이 너무 맛있어서 베지테리안 친구들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었다.
추가로 디저트가 있으면 완벽하겠지만, 그냥 칩, 견과류, 치즈, 살라미 등 추가 안주만 준비했다.
특히 하우스 파티에서는 의외로 저녁을 간단히 먹고 (타파스 같은 핑거푸드 종류로) 디저트를 빡세게 준비하기도 한다. 몇몇 파티에서 내놓은 홈메이드 디저트는 정말 아직까지 길이길이 생각난다.
하지만 디저트까지는 무리다. 나는 그 정도까지 마사 스튜어트스럽지는 못하다구.
파티 시작은 7시 반이었는데, 1시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장보고, 파스타 재료도 미리 손질해 놓고, 리커 스토어에 가서 술도 사오고, 손님맞이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새 친구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대체 얼마나 음식과 음료와 알콜을 준비해야 할지 감도 안잡혀서 걱정스러웠던 것이 무색하게,
다들 알차게 먹고 마시면서 나의 파티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게임도 했고 춤도 췄고, 집에 가면서 다들 파티가 너무 좋았다고 하는데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는게 뿌듯했다.
남이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게 너무 좋아서 요리를 하게 된다는 기분을, 나는 느껴본 적이 없는데(내 음식을 그렇게 맛있게 먹어준 사람이 없었던 걸까..?) 파티 호스팅을 하고 나서 비슷한 뿌듯함을 느꼈다.
나의 첫 하우스 파티가 끝나고, 어느정도 자신감이 생긴 나는
소소하게 친구들을 초대해서 저녁을 해 먹거나, 새로 생긴 한국 음식점에서 다같이 한국 음식 주문해서 먹는 등 사람들을 종종 나의 방에 초대하기 시작했다. 각종 레시피도 파티 호스팅을 하기 위해 시험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망의 10월 마지막 주,
할로윈을 맞아 하우스메이트들끼리 모두 합심해서 하우스 할로윈 파티를 열었다.
코로나 락다운 전이긴 했지만 여기저기서 코로나 확진이 출몰하고 있어서 다들 오전에 가서 코로나 검사도 받고 왔다.
우리는 3층까지 있는 큰 집이고, 방도 8개나 있어서 이 중 방 4개를 열고 파티를 하기로 했다.
다행히 내가 아니라 이만과 호아킴이 호스트가 되어 장보기, 집 꾸미기 등을 다 했는데,
이 사람들...이번 할로윈 파티에 진심이었다.
집 곳곳에 거미줄 치고, 빨간 페인트로 벽에 손바닥 찍고, 조명도 달고, 호박 놓고, 흑백 영화도 틀어놓고, 심지어 호아킴이 드라이 아이스 머신까지 공수해왔다. 대형 바스켓에 과일과 보드카를 때려 부어서 펀치도 만들었다!
할로윈 파티에 온 사람들도 많았고, 정말 성공적이었다.
야심차게 만든 펀치는 간신히 한 컵 맛보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베스트 드레서 시상도 있었다.
특히 해외에서 할로윈 파티를 가는데 어떻게 드레스 업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는 사람들에게 팁을 주자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가짜 피와 메이크업으로 좀 꾸며주면 된다.
과한 느낌도 들지 않고, 돈도 안들고, 코스튬을 살 필요도 없다.
코스튬 플레이 같은 복장 시도, 섹시 복장 시도, 아무것도 안하기 등등 다 해봤는데,
어디에서든 가장 과하지 않게 먹히는 방법이다.
특히나 요즘은 코스튬보다는 롯데월드에서 좀비 메이크업 해주는 것 같은
프로페셔널 메이크업으로 할로윈을 즐기는 추세다.
하지만 호아킴은 대형 파티 호스트(?)로서의 중압감을 못이기고 엄청 초조해 했다.
파티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에 모든걸 완벽하게 준비 해 놓아야 한다는 초조함,
그리고 파티가 시작하고 나서는 다들 이방 저방에서 잘 즐기고 있는지, 사고 안 날지, 화장실, 쓰레기통은 괜찮은지 전전긍긍,
파티가 끝나고 나서는 사람들 다 보내고 어마어마한 쓰레기 치우기까지.
호스트가 그렇다.
사실 온전히 파티를 즐길수가 없다. '내' 파티니까,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게스트들은 바닥에 쓰레기를 버려도 상관이 없지만, 호스트는 그 쓰레기를 주우면서 돌아다녀야 한다.
남들은 다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있는데, 호스트는 테이블에 음식이 부족한지 등을 확인하면서 계속 채워줘야 한다. 게스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분위기도 띄워야 한다.
예전에는 그 모든 것들이 나의 능력 밖이라 생각했고, 자신감도 없었다.
내가 초대해봤자 누가 올까 하는 걱정했고, 완벽한 파티를 계획할 자신도, 실행할 자신도 없었다.
초대한 사람들이 재미없게 있다가 돌아갈까봐 걱정됐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내가 사람들을 초대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파티가 실제로 완벽하게 진행되지 못한다 해도 스트레스 받지 않을 자신감도 생겼다.
다들 나름대로 즐기다 가는거지, 내 생에 최고의 파티를 열 필요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만나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겠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대접해 주고 싶다.
언제부터 내가 변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우스 파티에서 쭈뼛대고, 어색해 하던 내가
호스팅 자체에서 오는 기쁨을 느낄만큼
나도 모르게 어느샌가 성장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