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고객에게는 뭣이 중헌디?
고춧가루 묻은 컵.
고객 반응은 다르게 나타난다.
짜증 난 표정과 퉁명한 말투로 "아니 설거지를 어떻게 하길래?" 또는 "이거 봐요! 이거 봐".
그냥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표정과 말투로 "컵 바꿔 주세요".
주문 누락.
고객 반응은 다르게 나타난다.
화가 가득한 채 "직원 교육을 어떻게 시키길래", "똑바로 일을 안 하고, 쯧"
약간 아쉬운 표정을 하면서 "그냥 취소해 주세요", "기다릴게요, 지금이라도 빨리 해주세요"
고객의 다른 반응은 일하는 직원과 나에게도 다른 영향을 준다.
화가 가득한 고객 반응에는 나도 짜증 나고, 일하는 직원은 당황하고 힘들어한다.
특히, 초보 아르바이트생들은 내적 상처를 입기도 한다.
대신, 가볍게 아무 문제 아닌 것으로 대해 주는 고객에게는 '감사'한 마음이 우러난다.
절로 '서비스'를 푸짐하게 제공하거나, 가격을 할인해 주게 된다.
사실, 고객이 화를 내고 컴플레인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다. 나 또한 식당에 가서 똑같은 상황에 처하면 짜증을 낸다.
컵에 묻은 고춧가루를 보면, 식당 위생 전체에 대해 신뢰할 수 없는 감정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주문 누락돼서 기다리던 음식이 안 나오면, 무시당한 기분이 먼저 든다.
기대한 시간에 음식이 안 나오면 배가 더 고픈 느낌이 든다.
이런 식으로 일하는 직원이나 사장이 괘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아무 문제 없이 가볍게 우리의 '실수'를 대해 주는 고객들은 비범하다.
정확한 통계를 내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50대 중반 이상은 거의 대부분 '화'를 내고 적대적 '반응'을 하지만, 30대 중반 이하는 거의 대부분 가볍게 대하고 '이해'해 주었다. 왜 연령대에 따라 확연하게 다른 반응이 나타날까?
사실, 반응은 '상황 인식'의 결과물이다.
이 '상황'이 잘못됐고, 문제 있다는 생각을 하면 부정적 반응이 일어난다.
연령대가 있으신 분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면 '잘못됐다', '문제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평가', '판단'이 앞서는 것이다. 옳고 그름, 잘하고 잘못하고, 문제고 아니고를 따지는 것에 익숙한 것이다. 이 식당의 위생 상태를 평가하고, 이 식당의 운영 상황을 판단하고. 그래서 나름의 이유를 찾고 분석한다. 아르바이트 생이 신참이라서 그렇다는 둥. 이 가게가 오픈한 지 얼마 안돼서 그렇다는 둥.
직원 숫자가 작아서 그렇다는 둥.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경력이 짧을 수 있다는 둥. 사장이 초보라서 그렇다는 둥. 등등등.
사실, 이러한 분석과 판단은 본인의 '요구'에 부합하는 생각이 아니다.
지금 손님에게 필요한 것은 빨리, 고춧가루 안 묻은 새 컵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지금 손님에게 필요한 것은 누락된 메뉴를 재 주문할지, 취소할지 선택하는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요구하는 것을 먼저 보기보다는
지금 이 상황을 분석하고 평가하고 판단하려는 생각이 앞서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즉각적이다. 무조건 반사적이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대체로 이렇게 평범함 모습이 나타난다.
컵을 바꿔주세요. 주문 취소해 주세요.
이런 반응을 해주시는 분들은 '고춧가루 묻은 컵', '주문 누락'이라는 상황이
식당의 바쁜 시간대에, 손님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때에는 '그럴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인 것이다.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는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잘못됐다'는 평가보다 자신들의 요구에 먼저 깨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교육과 시대적 정서의 반영일 수도 있다.
연령대가 어릴수록 직업의 귀천을 평가하는 의식이 옅어졌을 수 있다. 또, 감정 노동자에 대한 예의, 식당 에티켓 교육 등의 영향 일 수도 있다. 연령대가 있을수록 더 대접받고 더 친절한 서비스를 받고 싶은 욕구가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젊은 고객들이 '평가' 보다는 '요청'에 깨어 있다. 상황을 평가하기보다 그 상황에서 나의 요구를 파악하는 것. 그리고 나의 요구사항을 적극적으로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상황을 타개하는데 효과적이다.
실제로, 나를 주어로 요청하는 표현과 너를 주어로 평가하는 표현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이렇다.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또 쓰레기와 식기가 쌓여 있을 때 아이들을 향한 다른 표현.
"너희들은 먹을 줄만 알고 치울 줄은 모르지. 게을러 빠져 가지고는..." 너를 주어로 게으르다고 평가한다.
"아빠가 힘들다. 설거지 좀 해주라" 나를 주어로 요청한다. 아이들은 평가의 표현에는 문을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고, 요청의 표현에는 나와서 설거지를 도와주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 내가 피곤하고 힘들 때는 나도 모르게 '요청'보다는 '평가'하고 화와 짜증이 섞인 말투가 튀어나온다.
사람들의 동의와 행동을 이끌어 내는 존재방식과 표현방식은 너를 주어로 평가하기보다는 나를 주어로 요청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듯하다. 너를 주어로 평가하는 고객은 평범하다. 평범하다고 해서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화와 짜증을 낸다고 해서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흔하고 보통이다는 것이다. 나를 주어로 요청하는 고객은 비범하다. 옳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보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50대 이상 연령대의 분들 중에서 대단히 비범한 분들의 표현방식은 이렇다.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장황한 설명이 없다. 짜증 화 등의 감정이 없는 평온한 말투다. 짧고 간단한 표현이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표정이다. 목소리 톤도 적당하면서, 발음도 명확하다.
"컵 바꿔 주세요"
"주문 취소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