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아직 '대박'을 꿈꾸는가?
"대박 나세요"
가게 오픈 이후 지난 2년 동안 거의 매일 듣는 말이다.
'대박'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불편하다.
난 대박의 꿈을 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버렸다기보다는 현실 불가능을 확실하게 인지했기 때문이다. 고깃집 매장 하나 운영하면서 '대박?'.
어림도 없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불경기 상황에서. 가당치도 않다. 버티기도 버거운 현실이다. 버티고 살아남는 것이 '대박'이다.
진짜 '대박'은 가능성을 향한 도전에서 시작된다. 부딪히고 또 부딪혀서 뚫고 나아가야 한다. 좌절을 딛고 다시 부딪혀서, 돌파구적인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 비즈니스에서 대박은 최소 연간 100억 매출은 돌파해야 '대박'의 시작이라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안정적으로 1천억 매출을 향해 꾸준한 성과를 이룩해야 회사다운 면모를 갖출 수 있다. 실재 매출이 아니라도, 그 정도의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신기술이거나 마케팅 잠재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 시장에서의 대박은 최소한 코스닥 상장사가 돼야 대박이라 부를 수 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나도 젊은 시절 '대박'을 꿈꾸었다.
무수히 도전했다. 자본금 한 푼 없이, 사돈의 팔촌까지 도움의 손길 없이 외길로 도전했다. 지인들과 함께 다양한 비즈니스 아이템에 도전했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 '대박'의 가능성은 있었으나, 성공 확률은 높지 않았다.
확률 게임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무한 경쟁 시스템은 정글이다. 나의 도전은 이미 호랑이, 사자가 존재하는데 토끼가 덤비는 꼴이었다. 사자가 없고, 오지 않을 곳을 개척하기 위해 들어가면 이미 다른 토끼 경쟁자들이 무수했다. 그들과 싸워 겨우 승자가 돼도 어김없이 사자들은 영역을 넓혀 진입했다. 공룡 대기업은 거대 플랫폼을 무기로 골목상권까지 집어삼키고 진입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스타트업 중에서 그나마 '대박'이라 불렸던 몇몇 기업들조차 지금은 경영상태가 좋지 않다는 뉴스를 접한다.
나의 대박을 향한 20여 년의 도전은 한국 시장에서 애초에 성공 확률이 낮은 무모한 행동이었다. 무모했다는 것을 나이 50이 돼서야 처절하게 인지했다. 내가 깨달은 무모한 도전들을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이미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가게에서 만나는 아르바이트 20대 청춘들은 모두들 나와 같은 무모한(?) 도전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껏 수 십 명의 대학생들에게 물어봤지만, 모두들 안정적이고 가능성이 확실한 직업선택과 진로를 지향했다.
전문대학을 다니는 A 군은 자격증을 취득해서 대기업 생산직 취업이 목표다. 서울에서 4년제 대학을 다니다가 군대 다녀온 B 군은 휴학하고 소방관 시험에 도전이 목표다.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진로를 결정한 K 양은 메이크업아티스트 분야로 진로를 정했다. 그들은 극소수 성공 사례의 달콤한 '말'들을 믿지 않았다. 현실을 정확히 인지했다. 그리고 확실하고 실현 가능한 자신들만의 꿈을 설계했다. 나처럼 끌리는 대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꿈꾸지 않았다. 자기 자신의 성격, 장단점 등에 대해 면밀히 탐구하고 진로와 적성을 선택했다.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경제적 조건을 타산했고,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정확히 설계했다.
꿈만 꾸었던 나와는 달랐다. 어쭙잖게 진로와 적성을 코칭하려 했던 내가 오히려 더 배운다. 물론 찜찜하다. 가치 있고 낭만 있고 멋있어 보이는 '꿈, 도전, 진취, 가능성'의 키워드가 사라진 느낌. 틀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옳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 들수록 세상사를 알수록 '선악과 옳고 그름'의 영역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현실 타산과 계산적인 20대 청춘들이 지혜롭다고 생각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무모한 도전과 허황된 꿈을 꾸는 특권이 청춘일 텐데 말이다.
나는 나이 50이 돼서야 '꿈'이 아닌 설계를 했다.
그래서 기존의 정체성이라면, 접근하지 않았을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선택했다. 도전보다는 안정성을, 실패할 확률이 낮고,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아이템을 찾았다. '대박'과 '확장 가능성'은 낮았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으로 작은 '매장'을 오픈한 나에게 '대박'은 없다. 연 매출이 일정 수준을 벗어날 수 없는 구조에서 '대박'은 없다. 다만, 빚이 늘지 않고 줄어든다면 대박이다. 대출 원리금 갚아나가면 대박이다. 아이들 교육비, 생활비 충당하면서 노후자금을 저축해 나간다면, 그것이 대박이다. 이렇게 5년만 유지해도 대박이다. 현실은 이조차도 녹록지 않다.
매출이 반 토막 난 지금은 이 작은 가게 하나 유지하는 것도 벅찬 현실이다.
월세, 전기세, 보험료, 세금 납부도 벅찬 현실이다.
지금은 잘 버티는 것이 '대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