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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유감, 불륜 찬미

고깃집 사장이 사랑하는 고객들

by 고굽남 Feb 20. 2025

 대화가 춤춘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활력과 생동감이 넘친다. 부딪히는 술잔 소리가 경쾌하다. 상기된 표정, 자유로운 손짓, 힘 있는 목소리. 신나는 에너지가 온 매장을 가득 채운다. 에너지는 나에게도 전달돼서, 온몸을 휘감는다.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목소리가 커지고, 즐거운 기분과 가득 찬 흥분을 경험한다. 이렇게 신남과 흥이 있는 모임을 하는 집단이 있다. 이 집단은  맛있게 먹고, 잘 먹고, 많이 마신다.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집단이다.


 내가 사랑하는 첫 번째 집단은 병원 회식 팀이다. 이토록 친밀하고 유쾌할 수 있을까? 병원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행정 직원의 집단이라기엔 놀라울 정도로 밝고 유쾌하고 생동감이 넘쳤다. 무엇보다 격의 없이 직원들과 간호사를 대하는 의사 선생님의 리더십이 훌륭해 보였다. 특히 의사 선생님이 자신의 속내를 자유롭게 터놓고 대화했다. 부하 직원들을 친구처럼 편하게 대했다. 그러니 모두가 서로에 대한 불만, 자신의 고충, 병원 시스템, 환자 응대 등에 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나아가 개인 사생활, 가정사까지 영역을 넘나들며 말하고, 서로가 서로를 코칭하고 조언했다. 특징은 모든 대화가 심각하고 무겁게 흐리지 않고, 가볍고 호탕하게 이어졌다. 왁자지껄 대화가 끊기질 않고,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늘 이어진다. 20대부터 50대까지, 남녀노소가 이렇게 재밌게 즐겁게 회식을 할 수 있다니, 놀랍고 멋있는 집단이다. "또 오셨네요. 환영합니다" 하고 인사를 건네면 "사장님께서 고기를 너무 맛있게 구워주시니, 또 올 수밖에요"라고 말씀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다.


내가 사랑하는 두 번째 집단은 대기업 회식 팀이다. 일단 이들 집단은 강력한 '법카'와 '회식비'로 돈 걱정 없이 맘껏 먹고 마시는 집단이다. 거의 30분 동안 고기만 집중해서 먹는다.  고기 주문이 계속 이어진다. 우리는 쉴 새 없이 굽고 또 굽는다. 고기로 배가 채워진 이들은 이제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2030대 젊은 남성 집단답게, 술 먹는 속도는 빠르고 양도 많다. 취기가 올라올 때쯤 되면, 그때부터 이들의 대화가 시작된다. 이들은 회사보다는 주로 연애, 결혼, 재테크(주식, 부동산)가 대화 주제이다.  고기를 구우면서 잠깐 엿듣는 내 입장에서는 하나도 웃기지도 재밌지도 않은 말에 이 집단은 박장대소를 한다. 50대인 나와 유머감각과 코드가 확연히 다름을 경험한다. 10여 명의 건장한 젊은 남자들이 동시에 큰소리를 내며 웃으면 매장이 울린다. 소리의 음파가 모두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기분 좋은 음파다. 젊음의 에너지가 전달되는 파장이다. 이 집단의 특징 중 하나는, 꼭 마지막에 냉면, 김치볶음밥 등의 사이드 메뉴를 1인 1개씩 주문해서 다 먹고 간다는 것이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고마운 단체 손님이다.


내가 사랑하는 세 번째 집단은 중년 남녀들의 모임이다. 가족이나 부부 모임은 아니다. 서글픈 현실은 가족이나 부부 모임은 신나고 즐거운 분위기가 아니다.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50대 이상의 중년 부부들이 가게에 와서 식사를 할 때는 그냥 고요하다. 단골로 오시는 60대 부부의 경우는  고기 굽는 나에게 '소주 한 잔' 권하며 나와 대화를 시도하신다. 부부뿐 아니라, 가족모임에서도 대화는 거의 없다. 초등생 아이들 2명과 부부. 4인 가족이 오면 또 고요하다. 아이들은 고기와 음식이 나오기 직전까지 핸드폰 하고, 고기와 음식을 먹자마자 또 핸드폰 한다. 4인 가족모임의 유일한 대화는 "이제 폰 그만하고 고기 먹어라", "그만하랬지?"이다. 부부와 가족모임은 재미있지도 즐겁지도 신나지도 않다. 서로에게, 사람에게 집중하지 않으니, 접시에 작은 티끌 하나 고기 끝 미세한 탄 자국에도 민감해한다. 고요하니, 주문한 지 5분만 지나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느낀다. 음식 늦게 나온다고 불평한다. 오랜만에 가족 회식이 만족스러울 리가 없다.  


그런데 중년 남녀들의 가족 아닌 모임은 2030대 청춘 모임보다 더 활기차고 더 즐겁다. 50대 60대의 중장년 모임. 자주 만나는 친구관계나 정규 모임도 즐겁지만, 가장 뜨거운 분위기는 처음 만나는 소개팅 같은 모임이다. 남녀의 '첫 만남'은 연령대와는 상관없이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찬 법. 맛있는 고기로 배를 채우고 취기가 올라올 때쯤 되면 점차 목소리가 커진다. 여성분들의 '까르르~' 웃음소리와 남성분들의 '왁자지껄' 힘이 가득 실린 소리가 섞여서 중후하고 노련한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적당하게 서로를 탐색한다. 적정하게 욕망을 표현한다. 거리를 두는 척하면서도 동시대를 살아온 희로애락의 공감대로 연결된다. 감추는 척하면서도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을 교감한다. 탐색하고 표현하고 교감하면서 그들의 얼굴은 상기된다.  몸은 들썩이고 흔들린다. 맘껏 소리 내고 실컷 표출한다. 힘이 나고 에너지가 샘솟는다. 살아있는 생명체로써의 생동감이다. 로맨스냐 불륜이냐를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대화가 죽고 소통이 없는 만남보다 낫다.  흥이 있고, 신남이 있다. 표현이 있고 끌림이 있다. 인간적이고  인간다운 모습으로 보인다. 청춘 이상의 청춘을 창조하는 중장년 남녀 모임을 찬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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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깃집 사장은 단체 고객을 무조건 환영한다. 특히 이렇게 돈뿐만 아니라, 힘과 에너지를 주는 단체 고객은 사랑할 수밖에 없다. 짧은 2~3시간. 그 시간 동안 만이라도 고객들이 즐겁고 행복하다면, 나 또한 행복하다. 부부도, 가족도 고기 먹고 밥 먹는 그 시간만이라도 오손도손 대화가 춤추며, 행복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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