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고깃집 사장이 경험하는 '감동'의 순간들
'감동'이야말로 삶의 최고 형태가 아닐까?
감동을 주고받는 삶. 매일 감동하는 삶. 일상에서 감동하는 삶. 감동을 기대하는 삶. 감동을 일으키기 위해 헌신하는 삶.
지나온 내 삶은 감동 없는 삶인 듯하다. '감동적인 장면'을 떠올려보는데,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몇 개의 장면만이 희미하게 스쳐 지날 뿐이다. 수도 없이 쏟아져야 할 감동적인 장면들이어야 하는데, 그래야 마땅한데... 왜 떠오르지 않을까? 정말로 '감동'을 느낀 적이 별로 없나? '감동'을 느꼈던 매 순간들을 기억하지 못하나? 아니면, 수많은 '감동'의 순간들을 '감동'이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정서가 메말랐을까? '감동'이 없는 메마른 삶이었다면 어떤 삶이었을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존에만 급급한 삶이었거나, 목표 성취를 위한 투지로만 가득한 삶이었거나, 정치적 '옮음'의 신념에 똘똘 뭉쳐있었던 삶이었거나.
어쩌면 나는 늘 '감동'하면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기억이 나지 않은 이유는 지금의 내 삶과 멀어져 버린 그 시절의 과거에 갇힌, 뭔가 유통기한이 지난듯한 '감동'이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중학교 시절, 종교적 세례에 다시 태어난 듯한 구원의 극한 감동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정치적 신념으로 절대적 진리를 향한 참된 삶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가슴 뛰는 감동이 있었다. 대학시절, 심지어 죽음마저도 두렵지 않은, 내 전부를 내어 줄 수 있는 동지와 조직에 속했다는 벅찬 감동이 있었다. 다 흘러간 옛 유행가이다. 다시 듣고 다시 부르면, 그 기분과 감동이 느껴지지만, 그 순간 잠깐의 추억일 뿐이다.
이보다 좀 더 유통기한이 길고 신선함이 있는 '감동'은 결혼과 출산이다. 결혼식은 나와 사랑하는 나의 아내가 온 세상의 주인공이 된 순간이다. 드라마 속 주연배우가 된 느낌. 모두의 시선과 모두의 관심과 모두의 부러움을 받고 있다는 기분. 쓸쓸하고 외로웠던 혼자만의 홀로서기를 끝내고, 마주 보며 함께 보며 나만의 삶이 아닌, 우리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 사랑해서 사랑하고 있음을 사랑할 것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의식은 감동 그 자체였다.
그리고, 최고의 감동은 첫아이의 출산이었다. 그동안의 '감동'은 내가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고 내가 새로운 것에 눈을 뜬 경험이었다. 첫아이의 태어남은 내가 아닌, 온 세상과 온 우주가 새롭게 열리는 기분이었다. 정말 새로운 '감동', 완전히 다른 '감동'의 경험이었다. 온 세상이 새롭게 열리니, 보이지 않던 '별'들도 보이고, 맡아지지 않던 꽃향기도 맡아지고, 들리지 않던 바람 소리 새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울음소리, 웃는 표정, 눈동자, 손짓 발짓 모든 것이 설레이고 가슴뛰는 '감동'이었다. '감동'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얻은 순간이었다. '감동'은 모든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해방시켜 주는 최고의 명약임을 얻은 순간이었다. '감동'은 인간이 인간에게 표현하고 베풀 수 있는 사랑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주는 에너지원임을 얻은 순간이었다.
'감동'으로 가득 찬 최고 형태의 삶이던, '감동'이 별로 없는 메마른 최저 형태의 삶이던, 어쨌든 지나가 버린 과거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일상이다. 지금의 '삶'에서, 매일 일상에서 '감동'을 생산하고 향유하자. 그래서 그 뭉클하고, 뜨겁고, 황홀한 '감동'의 세게로 나를 안내하자. 고깃집 사장의 일상에서 최고의 감동은 '고객'이다. 고객으로부터 감동받고, 그 받은 감동을 다시 고객에게 선사하는 행위. 이것이 고깃집 사장으로서 최고 형태의 삶일 것이다. 내가 감동받은 고객들을 소개한다.
미얀마에서 온 아르바이트생
아르바이트생 T 군. 미얀마에서 왔단다. 인근 4년제 대학 유학생으로 한국에 왔다. 벌써 4년 가까이 돼서, 한국말을 한국인보다 잘했다. 면접 볼 때 그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에 깜짝 놀랐다. 대학생이라 목. 금. 토. 일만 근무하기로 했다. 인사성 밝고 성실하고 친절하고, 최고의 근무태도를 보여주었다. 손님들의 칭찬도 받고 팁도 종종 받았다. 근무하지 않는 화요일쯤 이 친구가 매장에 나타났다. 친구들 5명을 데리고. "웬일이야!" 하면서 인사했더니 "친구들이랑 고기 먹으러 왔어요" 하며 친구들을 자리로 안내하고, 본인은 물이며 반찬이며 서빙을 한다. "손님으로 왔으니 가만히 앉아 있어요"라고 말해도 굳이 음료수며 컵이며 직접 가지러 간다. 손님이 줄어들고 매출이 반 토막 나는 상황에 한숨짓는 사장을 위해 버스로 40~50분 거리를 달려온 것이다. 대학 근처 많은 고깃집을 뒤로하고...
"사장님! 또 친구들이랑 고기 먹으러 자주 올게요", "교수님께 회식 가자 했는데, 너무 멀다고 안된다 해서 친구들끼리 와야겠어요" 눈물 나도록 고마운 VIP 고객이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고객이다!
3형제 5 가족이, 4형제 6인 가족으로
다둥이 가족에게는 4인석 테이블만 있는 식당이 불편하다. 그래서 난 6인석 다둥이 석을 만들었다. 이 6인석 다둥이 석을 오픈 초기부터 애용해 주던 가족이 있다. 3형제를 둔 5인 가족이다.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3형제는 잘 먹고 많이 먹었다. 아이들에게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부모는 찌개에 공깃밥을 먼저 드신다. 아이 셋을 키우며 어쩌다 외식하러 가면 항상, 사이드 메뉴부터 시켰던 우리 부부와 같다. 고깃집 가면 밥부터 먹고, 파스타집 가면 수프부터 리플해 먹었다. 동병상련이다. 고기도 더 주고, 서비스도 더 준다. 아무리 퍼줘도 아깝지 않은 고객이다. 2년여 동안 1~2달에 한 번씩은 꼭 오셨던 단골이다. 그런데 한동안 뜸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갓난아이를 안고 나타났다. 늦둥이 막내 넷째가 태어났단다. 또 아들이다. 4형제다. 어머니 아버지께 "축하드립니다. 존경합니다. 부럽습니다" 했더니, "아이고 사장님, 기대했는데 넷째도 아들이 네 유" 하신다. 아쉬워하면서도 아이를 바라보는 눈길은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세 명의 형들이 막내를 서로 안아 보려 하고, 서로 챙기려는 모습이 아름답다. 5인 가족으로 처음 만났는데, 이제는 6인 가족 고객이 됐다.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따뜻한 감동이다.
<감동 고객은 다음 편에 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