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고깃집 사장이 경험하는 '감동'의 순간들 2
"애 엄마가 저세상으로 간 지 1년"
중학교 1~2학년쯤 돼 보이는 딸과 50대 아버지. 둘이서 왔다. 혼자서 소주 한잔하기에 적적했는지, 아버지는 나에게 술잔을 건넸다. 고기를 굽다가 손님들이 건네는 술은 웬만해서는 거절하지 않는다. 고객의 성의도 있지만, 술잔을 건넨다는 것은 뭔가 '대화'를 하고 싶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고 싶다는 것은 고객이 나에게 듣고 싶은 말보다는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술잔을 받는 것은 고객의 말씀을 경청할 준비가 됐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역시나, 아버님은 술잔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말씀을 시작했다. "우리 딸이 여기만 오면 잘 먹습니다. 사실은 애 엄마가 저세상으로 간 지 1년이 넘습니다. 그동안 나는 회사일로 바쁘다 보니, 딸이 저녁마다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는데, 제대로 밥을 못 먹어서 늘 맘에 걸립니다. 집이 시내와 멀어서 배달음식도 많이 없고.... 그래서 주말마다 외식을 하는데, 나는 고기를 좋아하고 딸은 마라탕, 돈가스 이런 것을 좋아해서 늘 애 좋다는 것만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번에 여기 한 번 가보자 해서 데리고 왔는데, 딸아이가 이 집 고기는 맛있다고 잘 먹는 겁니다. 덕분에 저도 좋아하는 고기 먹게 되고요. 그래서 또 오게 됐습니다"
50대 아버지와 딸. 둘만 고깃집에 오는 경우는 드물다. 약간 어둡고 우울해 보이는 딸과 뭔가 안쓰럽고 지쳐 보이는 아버지의 표정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내가 구워주는 고기를 맛있게 먹으면서 표정이 밝아지는 딸아이. 맛있게 삼겹살을 먹는 딸을 보며, 흐뭇한 표정으로 소주 한잔 하는 아버지. 이 순간이 나에게는 뭉클한 감동이다. 이 가정에 따뜻한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또 휴가 나왔어요?"
강원도 양구. 육군으로 복무 중인 아들은 휴가 나올 때마다 아버지와 우리 가게를 방문했다. 본인은 너무 기다려지는 휴가를 가끔 나오는 것일 텐데. 나는 나도 모르게 반가운 표현을 "또 휴가 나왔어요?"라고 말했다. 순간, 아니다 싶어 바로 수습한다. "또 와서 너무 반가워서 그렇죠. 제대는 언제예요?" 아들은 웃는 표정으로 "이제 4개월 남았습니다" 한다.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아버지와 군 복무 중인 아들. 이 둘은 아들이 휴가 나올 때마다 우리 가게를 찾았다. 나중에 제대하고서는 명절 때 할아버지 할머니, 작은 아버지 댁까지 온 기족이 가게를 찾았다. 그야말로 찐 단골 고객이다. 그리고 경이로운 고객이다. 아버지와 아들. 단둘이서 2시간이 넘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주거니 받거니 저렇게 대화를 하다니. 아들이 군대 얘기를 하면, 아버지는 맞장구치면서 자신의 군대 경험을 얘기한다. 아들이 군대 동기들의 여자친구 얘기를 하면, 아버지는 또 맞장구치면서 자신이 청춘시절에 있었던 연애사 경험을 말한다. 아들이 진로에 대해 걱정을 토로하면, 아버지는 격려하고 힘을 주는 대화를 한다.
정말 놀랍고 멋진 장면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2시간 넘도록 대화를 하는 것도 놀랍지만, 저토록 다정하고 공감하고 위로하고 힘을 주는 대화가 지속될 수 있다니. 아들도 아버지도 존경스럽다. 2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단 10분도 대화를 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가슴 시리도록 부러운 모습이다. 우리 집 고기를 사랑한다는 아들은 제대한 날 저녁 가게를 또 찾았다. "사장님 드디어 제대했습니다", "우와 축하해요. 오늘 제대 축하 기념 서비스 팡팡 쏠게요", "감사합니다. 역시 우리 사장님 최고!".
나의 아버지를 추억하게 하고, 나의 아들과 따뜻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기여해 준 고맙고 감동적인 고객이다.
"저희 아이가 이 집 고기만 먹습니다"
과잉행동, 주의 산만. 언뜻 봐도 ADHD 증상으로 보였다. 엄마가 아들을 대하는 것이 버거워 보였다. 엄마는 주변 시선을 의식해서 그런지, 아들이 큰 소리를 내거나 일어나서 식당에 돌아다니려 할 때는 극도로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외식을 나오는 것 자체가 엄마로서는 도전적인 결정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와 힘을 내서 외식을 오셨다. 그것도 자주 오는 단골이었다. "저희 아이가 이 집 고기만 먹습니다. 그렇게 고기를 먹이려고 했는데, 줄곧 안 먹었습니다. 이상하게 이 집 와서, 사장님이 구워주는 고기를 한 번 먹고 나서 계속 이 집 고기만을 고집합니다" 내가 구워주는 고기만을 먹는 아이가 있다니... 고맙고 보람되고 뿌듯한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아이가 고집을 피울 때마다 어린 둘째 딸까지 데리고 외식을 와야 하는 엄마가 안쓰럽기도 하다. 가끔은 친정엄마를, 가끔은 일터에서 퇴근한 남편을, 그나마도 여의치 않으면 혼자서 어린애 둘을 데리고 식당을 와야 하는 엄마의 고충이 짠하다. "우와 우리 00이 왔구나. 잘 지냈어요? 또 와줘서 고마워요. 아저씨가 오늘도 고기 맛있게 구워줄게요. 많이 먹어요. 우리 아들 좋아하는 00도 서비스로 줄게요?" 내가 이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특별한 것이 없다. 그냥 다른 손님들을 대하는 것과 똑같이 반갑게 맞아주고, 정성을 다해서 구워주고, 작은 서비스 메뉴 하나 더 드리는 것이다. 아이가 우리 집 고기를 좋아하는 것은 고기 맛도 있겠지만, 어쩌면 첫 만남에서 당황하고 걱정하면서 대해주지 않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아이에게 걱정과 불안의 시선이 덜어지면 좋겠다. 그냥 약간 다른 정서와 행동방식을 지녔을 뿐이라는 가벼운 시선이 많아지면 좋겠다. 이 아이가 살아나갈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약간 다른 행동으로 인한 영향들에 대해 허용하는 범위가 넓어졌으면 좋겠다. "사장님 맛있어요. 고맙습니다. 또 올게요" 아이의 말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혼자 왔는데, 1인분만 먹어도 되나요?"
밤 9시. 라스트 오더 시간이 다 돼서, 30살 전후쯤 되는 청년이 왔다. 그 시간에 새로운 손님을 받는 것은 가게 경영상 효율적인 선택은 아니다. 한 분의 손님 때문에 주방 마감, 숯불 마감 등이 30분~1시간은 더 늦춰지고, 이에 따른 인건비를 비롯한 각종 비용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 4명 이상도 아닌, 단 한 명의 손님을 받는 것은 한마디로 비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이 청년 눈빛이 아련하다. 배고프고 외롭다고 얼굴에 쓰여 있다. 그래서 "네 들어오세요" 했는데, 테이블에 앉자마자 "1인분만 먹어도 되나요?" 한다. 바로 짜증이 올라온다. 괜히 받아서.... 하는 후회가 올라온다. 그래도 들어오라 했는데, 다시 내쫓는 것은 뭔가 아닌 것 같고... "최소 2인분인데, 고객님이 마지막 손님일듯해서 해 드릴게요" 하고 삼겹살 1인분을 구워드렸다. 주변 고깃집은 최소 주문을 3인분으로 하는 곳도 많은데, 1인분 주문을 받다니. 밑반찬과 숯불 값도 안 나올 상황이다. 1인분을 구워주면서 "저녁이 늦으셨네요. 저희 가게 처음이시지요?" 하고 말을 건넸다. 내가 말을 건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분의 말이 시작됐다.
"사실은 저 일 때문에 장기 출장 왔는데, 아는 사람도 없고, 늘 혼자 밥을 먹습니다. 배달시켜 먹는 것도 지겹고. 고기는 먹고 싶은데, 혼자 고깃집 가기는 창피하고... 오늘은 용기 내서 일부러 손님 없는 시간에 늦게 왔습니다. 혹시나 혼자도 받아 줄까 해서 왔는데 사장님이 받아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무슨 일 하시는데 장기 출장을?"
"아~ 저 00 건설에 다닙니다. 이 동네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한 지 3개월 됐고요. 앞으로 1년은 더 있어야 할 듯합니다"
"아이고, 타향살이 힘들겠네요. 먹는 거 잘 먹어야죠 언제든지 혼자라도 오세요"
"사장님 고맙습니다. 정말 맛있네요. 고기도 맛있고 냉면도 맛있고"
이렇게 첫 만남은 끝났다. 그런데 이 친구 거의 매주 혼자서 고기 먹으러 왔다. 그리고 올 때마다 2인분을 시켜 먹었다. 그리고 한동안 뜸 하더니, 어느 날 일하면서 만난 친구라면서 데리고 오고. 학창 시절 동창이 와서 함께 왔다면서 또 데리고 왔다.
그리고, 어느 날은 함께 일하는 팀 회식을 한다고 단체 고객으로 왔다. 그렇게 1년 넘도록 단골이었던 그는 "사장님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덕택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습니다. 건설 현장이 좀 삭막하고 거칠어서, 힘들었는데..." 라고 말하고 장기 출장을 마치고 돌아갔다. 마감시간 다 돼서 1인분 고기를 구워줬을 뿐인데, 이 친구 10배 100배로 보답을 하고 간다. 회식 팀으로 함께 온 선배 직원이 "가까운 식당 많은데, 이 친구가 여길 가자고 몇 번이나 말하길래... 이 친구 이 가게 영업사원으로 투 잡 뛰는 줄 알았네요"라고 말한다. 또 보고 싶은 감동의 고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