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그래퍼 - 1

by 송혜미

무아지경의 현장에 둘러 쌓일 땐, 셔터를 누른다. 본능이다.


무릎 관절을 굽히거나 종아리를 3m, 10m, 혹은 허벅지를 52.5m까지 연장하면서. 때로는 재빨리 2.3cm로 줄여 관객들이 구르는 발바닥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그들이 구르는 메탈 소재의 발 뒤꿈치에 머리통이 밟히면 가차없이 깨져 나갈 것이다. 그러므로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다시 전경을, 그리고 포효하는 이들의 눈동자를, 지미의 마젠타 머리칼 한 올을, 드러머의 팔뚝에 난 반가운 땀방울을 포착한다.


가끔은 견딜 수 없다. 미칠 듯이 소모적이다. 극단의 감각에 몰두해 있는 미치광이들이 에워싼 풍경은 나를 사로잡으면서도 동시에 멀어지게 한다. 토가 쏠릴 것 같은 순간엔 그들에게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나를 가까스로 붙잡는다. 서둘러 카메라 렌즈 뒤에 쪼그려 숨는다. 함께 돌아버릴 수는 없다. 그건 나의 결정권에서 벗어나 있다.


나에겐 무선 감각 신호를 수신하지 않을 책임이, 정신을 차릴 의무가, 또렷한 판단력으로 사진 찍을 임무가 있다. 나는 지미의 공연을 감각 너머 몇 발자국 멀리서 관조해야 한다. 그래서 도무지 어찌 할 도리가 없으면 잠시 의식의 영역 내에서 아무도 알지 못할 사적인 도주를 감행한다.


상념. 잠시간의 상념.

단 한 번의 기나긴 한숨과 같은 상념.

상념이 나의 도피처다.

허락된 – 아니, 그 누구도 허락한 적은 없다. - 2초 속으로.


상념 속에서 물줄기가 거꾸로 솟는 모양새를 상상했다.


깨끗하고 투명하고 끝내 하야디 하얀 거품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물줄기를. ‘그것’의 형상이 무의식과 의식의 언저리를 떠돌았다. 그러니까 그건, 그건. 그것에 길고 긴 들숨과 날숨을 할애했다. 그것. 어떤 부분도 분명하지 않은. 지미의 목소리가 말했다.


“분수”


그래, 분수. ‘분수’라 했다. 분수에 대해서 생각했다.


언젠가 지미는 분수에 대해 이야기 했다. 쉬엄쉬엄, 생각 나는 말들을. 지미가 튕기는 현의 가공되지 않은 멜로디와 물이 거꾸로 솟는 원시 장치에 대한 말소리가 촘촘하게 섞였다. 그리고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맑은 물처럼 흘렀다.


물 속에 숨어있던 미꾸라지처럼 나는 조화를 흐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용이야? 물이 거꾸로 솟도록 하는 거. 물을 쳐다보는 게 궁극적으로 ‘분수’라는 시스템의 목적인 거야?”


“나도 모르겠어∙∙∙∙∙∙. 별 거 아니었겠지. 물을 편하게 마시려고 만들었으려나. 아무래도 물은 수시로 마셔야 했을 테니까." 지미는 조금 신난 기색을 보이다 말았다. "처음엔 그랬을 거야. 하지만 결국은 변한 거지. 쉽게 말해 ‘관상용’인 거야. 이해해? 아마도 순수 인간들은 그 주변에 둘러앉아 있었을 거야.” 지미는 스스로의 말에 아랑곳 않는듯 현을 튕겼다.


들릴 듯 말 듯 읊조리며 “졸졸졸∙∙∙∙∙∙” 그는 구전처럼 전해오는 물소리를 흉내냈다.


“하지만 왜∙∙∙∙∙∙” 지미가 혼자만 아는 말을 할 때 나는 머저리가 된다. 그 느낌이 싫다.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야.”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고작 이정도였다.


“이봐, 리틀B.” 그는 현에서 손을 떼고 내게 말했다. 다소간 서운한 얼굴로.


“넌 포토그래퍼잖아, 안 그래?”

keyword
이전 02화앰프와 무선 감각 신호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