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가 첫 현을 튕길 땐 모든 감각이 자명하게 깨어난다. 나는 그 순간을 프레임에 담는다. 티타늄 손가락이 현을 건드리고 지미가 얼굴을 종잇장처럼 구기는 첫 현의 순간을.
스스로가 앰프가 되었음을 포고하는 순간을.
그 순간마다 나는 지미가 죽어가는 것인지 살아나는 것인지 선택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지미는 신체 내에서 증폭하는 전기신호를 감당하려 척추를 움츠리다가 어깨를 활짝 펴고 발을 구르고 부르르 떨기를 반복하면서도 기타를 놓지 않는다. 어쩐지 그의 연주엔 놓고 싶어도 놓을 수 없는 운명의 지독함이 서려 있다.
지미는 내던져버리고 싶은 기타로 모든 것을 끌어안는 연주를 했다. 따듯하다고 느끼면 차갑고 차갑다고 느끼면 불에 타는 듯한 소리를 울리며 그는 그렇게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아마도 자신의 연주너머 신체의 감각 속으로 끝없는 도망을 치는 것 같다.
현의 진동은 지미의 성대와 몸짓과 눈빛과 쭈뼛 서는 마젠타 머릿칼을 통해 표현된다. 그의 소리엔 인간의 소리와 니켈 현의 소리가 견고하게 뒤엉켜 있다. 지미는 자신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다시 느낀다.
관객들은 관자놀이에 장착된 감각 수신기로 그의 것을 온전하게 공유한다.
지미의 감각, 그가 송신하는 무선 감각 신호를.
그들은 버틸 수 없다. 그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관객은 지미의 감각이 녹아 든 신경 세포의 발자취를 오롯이, 말그대로 오롯이 수신한다.
성대의 수축과 고막의 진동과 뼈와 피를 타고 흐르는 전기 자극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하고 더 큰 고통을 갈망한다. 관객들은 어느새 서로에게 엉킨다. 지미의 감각과 관객의 욕구가 엉키고, 관객과 관객이 엉킨다. 누가 누구에게 얽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얽힌다. 어딘가로 몸을 던지고 울다가 웃는다. 손을 뻗고 어깨는 바들거린다.
그렇게 지미의 연주를 감내한다. 그들은 버틸 수 없음을 버티며 감각의 극단을 시험한다.
곧 리듬이 가미된다. 지미의 뒤쪽으로 붉은 핀 라이트와 드럼 사운드가 페이드인 하며 드러머를 비춘다. 나는 반사적으로 셔터를 누른다.
“팟”
플래시가 터질 때 관객들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수축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몸을 흔들어 댄다.
음악에 박차를 가하는 킥과 스네어의 조화는 무엇이든 흔들어 깨운다. 동물의 가죽으로 제작된 드럼을 물리적으로 두드리는 양식은 현재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지미는 고전을 고수한다. 그리고 그에겐 그럴 만한 능력과 감각이 있다. 피와 유전의 재능이다.
피와 유전의 재능. 그래서 지미는 데뷔와 동시에 전설이 되었고 당연했다. 머지않아 독자적으로 프로듀싱 할 이례적인 권한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을 예견하고 있던 선지자처럼,
그럼에도 죽어가는 생명체를 살려낼 수는 없는 구세주처럼,
죽어가는 병자를 끌어안고 병원으로 뛰어가는 사람처럼,
그렇게 급히 드러머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중했다. 눈을 감고 귓바퀴에 집중해 심장이 두근거리는 리듬을 찾고 또 찾았다. 그리고 지금의 드러머를 만났다. 단 두 개의 팔과 두 개의 다리를 장착한. 심지어 오른쪽 팔뚝은 개조하지 않아 고유의 삼각근과 상완근을 사용하는 드러머다.
싱싱한 근육이 두드리는 스네어의 박동은 겪어본 적 없는 순수의 시대를 그립게 했다.
순수의 시대.
지미의 음악은 시절을 추구할지도 모른다. 순수 인간이 지배했던 시절을.
나는 그의 음악을 들으며 겪어 본 적 없는 그 시절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오히려 지미는 잃어가는 듯 하다. 감각을 공유한다는 건 그런걸까. 지미의 감각을 동일하게 체험하는 관객들은 정해진 대로 즐길 뿐이다. 지미는 그들을 더욱 즐겁게 한다.
집단무의식에 각인되었을 추억은 점차 깊이 파묻히고 있다. 무의식은 더 이상의 필요성이 없음을 깨달은 것처럼 자멸하고 묻혀서 썩어간다.
관객들은 감전된 벌레처럼 신경질적으로 꿈틀거린다.
근육의 수축, 더 강한 수축, 잠깐의 이완, 그리고 또다시 수축.
그들에겐 무언가를 그리워할 그 어떤 겨를도 없다. 지미의 감각을 감각할 겨를 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