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프와 무선 감각 신호 - 1

by 송혜미

무대 위, 인간의 윤곽이 드러났다.


어슴푸레한 빛을 등에 업은.


옅은 빛엔 힘이 있다. 서서히 말을 빨아들이는 힘이다. 미세한 빛 입자의 유영과 잦아드는 수 만 관객의 소음. 차디찬 백색의 핀 라이트가 그를 향했다.


왼손잡이 기타리스트 지미.


지미는 자정에 작열하는 태양을 연상시켰다. 별빛처럼 무수한 관객의 동공들이 순간 쪼그라들었다가 다시 확장으로, 그 사이 어떤 기운은 서서히 선명해지고 공간으로 깊이 가라앉았다.


고요하게 끓어오르는 적막. 폭발을 눈 앞에 둔 적막. 질주를 예측하는 적막.


4,000평 규모의 공연장에서 지미는 언제나 고전을 추구했다. 튜블러 나일론의 기타 스트랩으로 오른쪽 어깨에 걸친 6현 일렉트릭 기타, 그리고 니켈 현을 감싼 다섯 개의 티타늄 손가락.


그는 숨을 몰아 쉬었다. 스피커가 그 자그마한 숨을 내뿜자 관객들의 정수리 위에 점 하나를 찍어 간지럽혔다. 피부가 남아있는 자들의 표피가 오그라들었다.


그러나 지미는 아랑곳 않았다. 자신의 숨소리가 누군가의 소름을 달라붙게 하건 말건. 수 천의 관객 중 단 한 명도 지미에게 남은 피부가 몇 점 없다는 사실을 아랑곳 않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지미는 그저 계약으로 점철된 자신의 생처럼 임무를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지미는 기타 하부에 갈피 없이 매달린 케이블로 기다란 왼손을 뻗고, 이내 모든 이의 숨은 완전하게 멎었다. 사막 위로 빙하기가 드리우듯.


멈춘 공간, 묵묵히 고개를 숙인 지미는 케이블 잭을 와락 쥐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존재처럼 보인다.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지미가 퍼포먼스를 하기 직전 나는 잠시 울적 해진다.


그는 왜 죽음을 결단하는 것일까?

왜 투신할 듯한 각오가 되는 것일까?

왜 차디찬 강물로 몸을 던질 준비가 되어버릴까?

왜 퍼포먼스를 감행 하고야 말까?


나는 짐짓 슬며시 다가온 바람을 느꼈다. 그때 동요하는 것은 마젠타 색상으로 흔들리는 지미의 머리카락뿐이었다.


그는 티타늄 재질의 팔꿈치를 구부렸다. 잭을 앰프에 꽂았다. 광기에 서린 개들처럼 튀어나갈 곳을 찾던 전기 신호가 방출된다. 개방된 댐으로 들이닥치듯 광기를 피해 달아난다. 아니, 광기를 향해 달아난 것일까?


깊숙하게 음각된 접촉 단자. 그것은 모든 것을 연결해버린다.


전기와 지미, 지미와 잭, 지미와 기타, 지미와 관객, 관객과 기타, 기타와 지미, 지미와 지미, 지미와 과거.


지미의 뒷덜미에 서늘하게 피어 있는, 그 투명한 은색의 단자는 마치 세상에 피어난 모든 자율성을 시기하듯이 모든 것을 연결하고 삼키고 잠식해 버린다.


하지만 나조차 시기당하는 그 슬픔이 무엇인지 알 겨를 없이 케이블 끝에 난 잭이 지미의 뒷목에 결속하는 순간에 공연장의 온도는 끓는점에 도달한다.


모든 차가움과 너른 서늘함, 지미 자신을 향한 체념과 포기,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카타르시스와 경외, 생과 사, 기대와 긴장. 연주가 시작되는 찰나는 이 모든 온도와 관념과 감정을 흔들고 뒤섞고 박살냈다. 동시에 공연장에 거듭 축적된 광기의 압력이 바늘 구멍으로 밀려 나가듯 관객들은 제각기 기괴하게 입을 벌렸다.


공간은 비명과 같은 함성으로 가득 찼고, 나는 그 정제되지 않은 포효에 전율을 느끼며 심장이 수축되는 감각에 잠시 아파했다.


나는 카메라를 놓칠까 투지를 다져 쥐어야만 했다.


그렇게 지미는 스스로 전기 신호를 증폭하는 앰프가 되어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무엇을 느끼며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읽은 이들은 지미의 감각을 함께 느끼며 고통과 비슷한 오르가즘을,

오르가즘과 비슷한 고통을,

정의할 수 없는 자극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혹은 스스로를 내던지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지미를 채찍질하며,

스스로를 쓰다듬고 매만져주면서,

사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쾌락 이상의 감각을 느끼기로 결단하며 무언가와 맞바꾼 차원의 세계로 진입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