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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잡문인 Nov 04. 2019

커피를 만드는 일이 세상을 구하는 일이라면

  만약 커피를 만드는 일이 세상을 구하는 일이라면. 아니, 뭐, 그렇게까지 거창한 상상을 하는 건 아니지만. 세상을 구하는 일까지는 아니라도, 세상에 일부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지. 흠, 한번 상상해 볼만하지 않은지. 나는 워낙 한가하고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편이라, 종종 아무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상상을 하기도 하지만.


  마치 램프의 요정이 소원을 들어주는 것처럼, 커피 한 잔을 만들면 가난이 해결되고, 두 잔이면 질병이 사라지고, 세 잔이면 지구 온난화가 해결되는 상상이다. 나비효과처럼 지구 반대편에서 마신 커피 한잔으로 다른 반대편의 인류문제가 말끔히 된다. 만약 그렇다면 커피 한잔 내리는 일에 자부심이 생기고 근사한 기분이 든다.

  커피를 마시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뭐? 4,000원짜리 커피 한잔을 마시면, 지구 반대편에 근사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라고 하며 커피 한잔 거뜬히 마시게 될지도.

  그렇게 커피를 마시는 손님이 늘어나면 영세한 카페 사장님도 숨통이 트이고, 경제도 활성화되고, 추락하는 세계 경제가 활기를 띄며… 까지는 아니지만. 에헴, 커피를 한잔 마시는 일은 마치 물에 빠진 생쥐를 구하는 것만큼 쉬우니까. 커피를 마시는 일이 의미가 있다면, 누구든 쉽게 동참할 수 있지 않을까.


  커피 한잔 마시는 게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진지하게 상상해보자. 이를 테면 누군가가 커피 한 잔을 마시면, 카페의 매출이 오른다. 덕분에 사장님은 꾸준히 가게를 운영하게 된다. 가게 운영이 지속되니 원두도 계속 구매하고, 원두 소비가 늘어나면 커피 생두 소비도 늘어나고, 커피 생두 소비가 늘어나면 아프리카에서 커피나무 농사를 짓는 농부의 수입이 늘어난다. 그리고 그 수입으로 농부는 귀여운 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 수 있게 된다. 커피 한잔을 마셔서 세상의 아름다움에 작은 보탬을 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극히 작은 일부이겠지만.

  귀여운 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 농부는 기쁜 마음으로 커피나무 농사를 건실하게 짓는다. 그리고 그 나무에서 수확한 커피 생두가 한국으로 들어와, 원두로 로스팅되고, 카페에서 커피로 내려지고, 우리는 커피 한잔을 마시며 작은 행복을 느끼게 된다. 모두가 상부상조. 소소하고 아름다운 세상의 글로벌 시스템이다.

  이런 순환은 다양한 산업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시스템이다. 이런 이야기는 자본주의의 행복 회로다. 다만 실제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이처럼 순수하고 투명한 시스템으로 돌아가지 않는 게 문제지만.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시스템이니 말이다.

  아무튼 커피 업계에서는 이런 선순환 시스템이 21세기 들어서 지속적으로 생겨왔다. 자본주의 행복 회로 말이다. 나는 직접적으로 느껴보거나 실제로 눈으로 확인한 내용은 아니지만, 많은 스페셜티 커피 카페들이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부분이라고 들어왔다. 커피를 판매한 수익으로 상대적으로 가난한 커피 농장들의 생두를 구매하는 방식이다. 이건 일종에 거래 계약인데, 농장에서는 더 좋은 생두 생산에 힘쓰고, 카페 측에서는 그에 합당한 가격으로 구매하기를 약속하는 것이다. 일종에 서스테이너블.

  이런 일들이 세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짐작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상상하면서 가치를 부여할 수는 있지 않은가. 어디까지나 행복 회로를 돌리면 말이다. 비록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는 만큼이겠지만, 그렇게 나는 나름대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으며 커피를 내린다. 비관 회로보다는 행복 회로다. 그게 정신건강에 더 좋다.


  그나저나 어쩌다 보니 ‘오늘 마신 커피 한잔으로, 미래의 행복을 삽니다.’ 같은 캠페인 글을 적은 것 같습니다. 글 마지막 부분에 적절한 브랜드 마크가 나오면 어울릴 것 같습니다. 이런 의도로 글을 적은 건 아니지만. 뭐, 적다 보니 가끔은 바리스타로서 이런 목소리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창피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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