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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잡문인 Oct 15. 2019

가게 안 차리세요?

  “가게는 안 차리세요?”

  삼십 대를 넘어선 시점에서부터 많이 듣는 말이다.

  “가게는 왜 안 차리세요? 가게 차리면 잘할 것 같은데요. 적당한 임대료 상가에 가게를 차리고, 단골손님 확보하면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텐데요.”라고 물어온다. 

  이럴 때면 마음속으로 ‘왜 가게를 차려야만 하죠?’라고 되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실제로 너무 궁금해서 물어본 적 있는데, 상대방은 이건 대체 무슨 외계인 지구 침략 같은 말이냐는 듯한 얼굴이 되었다. 정말, 당연히 가게를 차려야만 하는 걸까요?


  어째서 가게를 차려야만 하는지 생각해봤을 때, 가장 큰 이유는 바리스타의 임금체계의 문제가 아닐지. 서른이 넘어가면 자연스레 경제적 문제와 직면하게 되는데, 피하거나 도망 칠 수 없다. 그럴 때면 직업에 대해서 고용의 안정이 보장되는지, 결혼과 육아를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인지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바리스타의 임금과 고용의 안정성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니 상식적인 선에서 바리스타라는 직업은 청춘에 국한될 수밖에.

  그렇다면 어째서 바리스타의 임금이 적고, 고용의 안정이 불안정한가 하면,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가진 가치가 그만한 수준이 되지 않기 때문일 테다. 그러면 어째서 바리스타의 가치가 그만한 수준이 되지 않는가 하면, 산업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 산업의 본질적인 측면이라면, 으흠… 이렇게까지 파고들어가면 너무 복잡해지고 말하기도 어렵다. 

  아무튼 이런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카페 사장님이다. 비전문직이나 아르바이트 같은 이미지에서 벗어 날 수 있고, 사장님이라는 직위의 이름에서부터 느낌이 달라지니까. 게다가 한 가게의 사장님이라면 더 넓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들은 가게를 차리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사장님이 되면 고용의 안정이나 임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한계의 문제다. 바리스타는 한계가 그어져 있고, 사장님은 한계가 그어져 있지 않다는 차이. 그래서 사람들은 당연히 가게를 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추측하건대.


  그런데 말이지요. 세상에 카페 사장님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집 앞 버스정류장에도 카페가 두세 개씩 붙어서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더군요. 흐음. 저는 우유부단하고, 소극적인 성격에, 경제적인 감각이 전혀 없어서, 그런 치열한 전쟁터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자신 없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가게 사장님은 꿈도 꾸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가게를 왜 안 차리냐고 혼내지 말아 주세요.

  저는 사장님이 되어 경영이나, 직원 문제 같이 복잡한 일에 얽매이고 싶지 않습니다. 잘 해낼 자신도 없습니다. 그저 바리스타로 카페에 서서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맞이하고, 설거지를 하면서 지내고 싶습니다. 어디까지나 저는 그런 일련의 작업들을 순수하게 좋아합니다. 근사한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 일이 그 자체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하다면 머리가 희끗해질 때까지 바리스타로 일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는 어렵겠지요? 상식적으로.


  오래전에 도쿄에 머물며, 두 달 정도 여행을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묵고 있던 숙소 가까이에 카페가 있었는데, 오래된 벽돌 건물에 간판 하나만 걸려 있는 단출한 카페였다. 카페에 들어가면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어르신 세 명이 바에 서 있다. 그들은 앞치마를 매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정성스럽게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고, 서빙을 한다. 잔을 닦고, 설거지도 한다. 그리고 손님이 들어오면 힘차게 인사한다. 카페에는 테이블에 신문을 펴고 커피를 마시는 안경 쓴 할아버지, 담배를 태우며 앉아 있는 할머니, 조용하게 속삭이며 수다를 나누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가게는 잔잔한 일요일 오전 같이 평온하고, 매장에는 조용한 연주곡이 흘러나오며 느긋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그때 뵈었던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어르신. 세 분의 바리스타분들. 부럽습니다. 정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저도 머리가 희끗해질 때까지 바에 서서, 평온하고 인자한 미소를 띠며, “이라샤이마세.” 하면서 일하고 싶습니다. 좋지 않은 가요? 상식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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