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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잡문인 Dec 17. 2019

소개팅하기 좋은 카페

  저녁이 되면 어둑한 분위기에 조명이 은은하게 빛나고, 쳇 베이커의 차분한 트럼펫 연주가 늦은 밤안개처럼 흘러나온다. 여기는 핸드 드립 커피가 유명하다. 향이 좋고 그윽한 분위기를 풍긴다. 커피는 엔틱 잔에 나온다. 원목 나무를 중심으로 인테리어가 되었다. 삐그덕 거리는 나무 바닥, 중간중간에 있는 큼지막한 화분들과 조명. 다른 손님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소파. 로맨틱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카페. 느낌을 대충 이해하실는지?

  요즘에는 보기 힘들지만, 이런 카페는 몇 년 전만 해도 많이 있었다. 그때 당시 일했던 곳도 이런 느낌의 카페였다. 이런 분위기의 카페에는 주말이면 소개팅하는 손님이 제법 많이 왔다.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이 카페를 들어오는데, 과하게 의식된 행동으로 문을 열어주는 남성과 이에 예의를 차리는 듯 살짝 웅크리고 들어오는 여성이라면. 누가 봐도 소개팅하는 커플이다.

  한 번은 소개팅하는 커플이 바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에 앉은 적 있다. 그런데 바로 옆의 테이블에도 커플이 들어와 앉았는데, 이 커플은 누가 봐도 수년은 만났을 것 같이 보였다. 당당하게 문을 휙 열고 들어오는 여성. 뒤따라 핸드폰을 보며 들어오는 남성. ‘난 아아.’ 하고 핸드폰을 보며 자리에 앉는 남성.

  두 커플이 바의 정면에 나란히 앉아 있는데, 어떻게 봐도 비교되었다. 허리를 꼿꼿이 피고 앉아서 앵무새처럼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남성과, 엉덩이를 빼고 등을 소파에 기댄 채 핸드폰을 하고 있는 남성. 시간이 한참 지나도 다 먹지 않고 남겨진 커피와 디저트, 이미 모두 사라져 버린 커피와 디저트. 분위기와 행동이 전혀 달랐다. 나는 일을 하면서 틀린 그림 찾듯이 다른 점을 찾고, 으음,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라면서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일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손님을 그렇게 관찰하는 건 좋지 못하다. 하지만 너무나도 비교되는 두 커플이 나란히 바 앞에 앉아 있으니,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되도록이면 손님의 이야기를 듣거나 손님을 관찰하지 않으려 하지만, 종종 참을 수 없는 궁금함이 화산 터지듯이 머리 끝까지 차오르면, 어쩔 수 없이 보게 될 때가… 죄송합니다.

  나는 최근 몇 년간 소개팅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요즘에는 소개팅을 하면, 어떤 수순으로 데이트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소개팅을 한다고 하면, 레스토랑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카페에 가는 것이 보통의 데이트 수순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만약 지금에 와서 내가 갑자기 소개팅을 하게 된다면, 어떤 카페를 가는 게 좋을지 고르기 난감하다.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소개팅하기 좋은 분위기의 카페가 드물어서, 마땅히 떠오르는 카페가 없다. 아늑하고 조용하고 적당히 분리 감이 있는 그런 곳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의 소개팅은 과거와 많이 달라져서 카페 따위는 가지 않고, 곧장 분위기 좋은 호프집으로 가서 맥주를 먹으면서 데이트를 하는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이십 대의 독자가 “이봐, 아저씨, 요즘 누가 소개팅하면서 커피를 마셔요. 참, 그런 건 구식이라고요.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네요. 정신 차려요. 요즘에는 그런 식의 소개팅 따위는 하지 않는다고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으흠.

  아무튼 나는 개인적으로 아늑하고,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카페를 좋아하는 편이다. 꼭 소개팅을 하지 않아도 소개팅하기 좋을 것 같은 카페에 앉아 시간 보내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카페들이 없어져서 이래저래 불만이다.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으며 마땅히 시간을 보낼 만한 카페가 없다. 요즘의 카페들은 대부분이 좁은 테이블 간격과 휑하고, 하얗고, 밝은 느낌에 시끄러운 음악이 들리는 분위기인지라, 마음 편히 시간을 보낼 수가 없다. 자리가 불편해서 앉아 있다 보면 엉덩이가 아파오고, 휑한 분위기에 썰렁한 기분이 들고, 시끄러운 음악을 계속해서 듣다 보면 머리가 멍해진다. 그러면 곧장 가방을 싸고 카페를 나가게 된다.

  물론 카페의 운영상 손님의 회전이나, 이쁜 인테리어의 트렌드 같은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가끔은 지극히 손님의 입장에서, 편안하고 아늑한 도서관 같은 분위기의 카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한번 북카페를 찾아간 적이 있는데, 벽에는 책장이 늘어서 있고, 어둑어둑한 조명에 손님은 모두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데다 재즈가 흘러나와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나는 그곳에서 30분 정도 있다가 나와버렸다. 어째서였는가 하면, 테이블과 의자가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딱딱했던 데다, 초등학교에나 있을 듯한 크기로 엄청 작고 좁았다. 아주 잠깐 앉았는데, 엉덩이가 너무 아팠고, 허리를 푹 숙인 채 테이블에 엎드리듯 책을 읽어서 목과 허리가 뻐근해졌다. 결국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가방을 챙겨서 나와버렸다. 으흠. 사장님께는 죄송하지만, 나에게는 너무 불편했다.


  어쨌든 불만만 잔뜩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만. 설령 소개팅을 하지 않더라도, 조금은 편안하고 아늑한 곳에서 책을 읽으며 재즈를 듣고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가 있으면 좋겠는데요. 아무래도 그런 카페를 찾으려면 직접 카페를 차려야 하겠지요? 으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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