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쨍쨍한 이른 오후. 구름 한 점 건너지 않은 강렬한 햇살이 빌딩의 숲 사이로 들어와 메마른 콘크리트 위로 내리쬔다. 대나무처럼 곧게 뻗은 빌딩들은 콘크리트 길을 따라 사정없이 늘어서 있다. 점심시간이 되자 빌딩 속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쏟아져 나온다. 회사원들은 각자의 굶주린 배를 채우려 정신없이 길거리를 돌아다닌다. 몇몇의 회사원들은 점심을 거르고 카페 테이블에 앉아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고, 또 다른 무리의 회사원들은 점심을 먹고 나와, 카페에 우르르 들어가 커피를 주문한다. 분주한 점심시간의 카페다.
쿵, 쿵, 쿵.
감색 넥타이를 매고, 주름진 회색 정장을 입은 코끼리가 카페 문을 비집고 들어왔다. 코를 왼쪽 어깨 뒤로 둘러 넘기고, 귀를 팔랑이며, 주문대 앞에 섰다.
“아메리카노.”
코끼리 손님은 먼 산을 바라보며 귀찮다는 듯 상아를 슬쩍 들고, 묵직한 저음으로 중얼거리듯 카페 직원에게 말했다. 그러자 코끼리 손님의 위압감에 긴장한 직원이 대답했다.
“아, 네. 아메리카노요. 시원하게 따뜻하게 어떻게 드릴까요?”
“아, 참. 이봐, 아가씨. 당연히 시원한 거지. 이렇게 더운데 누가 뜨거운 걸 먹어. 안 그래? 너무 덥잖아.”
코끼리 손님은 직원을 지긋이 바라보고, 검지 손가락으로 감색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면서 말했다.
계산이 끝나자 직원은 재빠르게 자리로 돌아와 음료를 만들었다. 코끼리 손님은 여전히 주문대 앞에 서서 분주히 움직이는 직원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귀를 느긋하게 흔들며 서있었다.
“이봐, 아가씨, 커피 아직 안 나와?”
시간이 잠시 지나자 코끼리 손님이 주문대 앞에 서서 말했다. 바쁘게 일하는 직원들은 코끼리 손님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코끼리 손님은 시계를 한번 보고, 손가락을 빠르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불쾌한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카페에는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왔다. 점심을 먹고 온 듯한 여성 한 분은 코끼리 손님의 펄렁이는 귀의 크기에 깜짝 놀란 눈치다. 그리고 이내 코끼리 손님 뒤에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봤다. 코끼리 손님은 오른발을 꼬고 귀를 접었다 폈다 반복하며 여전히 주문대 앞에 서서 일하는 직원들을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다.
상황을 눈치챈 직원은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주문대 앞으로 갔다. 직원의 얼굴은 짜증이 가득 찬 얼굴이다. 눈의 초점은 흐려져 있고, 뺨과 턱을 따라 땀이 흐른다. 직원은 모자에서 뻗쳐 나온 앞머리를 옆으로 넘기고, 꾹 다물고 있던 마른 입술 사이로 한숨 한번 내쉬고, 코끼리 손님을 향해 말했다.
“손님, 정말 죄송한데요. 뒤에 다른 손님 주문 도와드려도 될까요?”
“내 커피는 아직 안 나와?”
“하, 네, 곧 나와요. 지금 만들고 있어요.”
코끼리 손님은 그제야 엉덩이를 슬쩍 돌리고, 두 걸음 옆으로 걸어가 섰다. 다시 시계를 쳐다보고,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일하는 직원을 지긋이 쳐다봤다.
주문을 마친 직원에게 코끼리 손님이 옆에서 히죽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런데 아가씨, 응? 더워 보여. 에어컨 좀 빵빵하게 틀지 그래. 옷이 땀으로 다 젖었네.”
직원은 그 말을 들었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았고 코끼리 손님을 차갑게 째려봤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 음료를 만들었다. 돌아선 직원의 인상은 짓밟힌 종이비행기처럼 찌그러졌다.
곧이어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코끼리 손님 앞에 가져갔다. 그러자 코끼리 손님은 빨대를 집어 커피를 저으면서 말했다.
“시럽은? 시럽 없어?”
코끼리 손님의 귀는 여유로운 봄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처럼 살랑살랑 펄럭이고 있었고, 어깨 뒤로 넘겨 뒀던 코는 공중을 몇 번 휘젓다가, 직원의 어깨와 등을 툭툭 두드렸다.
“아, 저기 뒤에 있어요.”
직원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코끼리의 코를 밀치며 대답했다. 그리고 기계적인 말투로 뒤를 가리키고 냉큼 돌아서서 커피 머신 앞으로 갔다.
코끼리 손님은 커피를 들고, ‘고마워’라고 인사를 하며 카페를 나갔다. 두 명의 직원은 하던 일을 멈추고, 아무 말없이 밖으로 나가는 코끼리 손님 뒤를 쳐다봤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직원 한 명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저씨들은 안 왔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