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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잡문인 Aug 30. 2019

핸드 드립 커피   좋아하세요?

  나는 칠 년 정도 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주로 핸드 드립 커피를 마셔왔다.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언제나 현실 가능성과 거리를 재어보면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의 커피 기구를 구매하여 핸드 드립을 내리고 있다.

  가끔씩 주위 지인들이 핸드 드립 커피를 마시고 싶다며, 나에게 물어온다. “핸드 드립 어떻게 하는 거야? 맛있게 내리는 방법 좀 알려줘.” 그럴 때면 나는 잠시 망설였다가, 한참 호흡을 고른 후 대답한다.

  “음… 일단 원두 15그램을 핸드 드립에 맞게 분쇄하고, 커피 필터는 접어서 드리퍼에 넣어. 그리고 린싱을 해서 종이 냄새를 빼야 해. 그다음 분쇄한 원두를 드리퍼에 넣고, 94도까지 끓인 물을 커피 주전자에 옮겨 담아. 그리고 커피 주전자를 이용해 원두 위로 물을 붓는 거야. 물은 가운데에서부터 시작해서 나선형으로 둥글게 그리면서 부어. 처음은 30그램을 부어주면 돼. 그러고 30초가 지나면 물을 120그램 부어. 이게 바로 1차 추출이라고 하는 거야. 물을 부을 때는 물줄기를 가늘게 조절하면서, 가운데에서부터 촘촘하게 나선형으로 그리며 물을 붓는 거야. 그리고 바깥쪽으로 나간 뒤 다시 안으로 들어오면서 마무리하면 돼. 그렇게 1차 추출을 부어. 그리고 다음 2차 추출을 할 때는….”이라고 생각하다가, 그냥 말을 참는다.

  실제로는 “핸드드립? 그거 꽤나 복잡한 편이긴 한데…”라고 얼버무려 말한다.

  아마 이렇게 대답하면 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질 것이다. 아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가버릴지도 모른다. 욕을 하고, 연락처를 지울지도.

  정말 이렇게나 복잡하고 어려워서 말이지. 커피 추출이 처음인 사람은 대체 집에서 어떻게 먹으라는 건지 모르겠다. 커피 추출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집에서 빈둥빈둥할 일 없는 사람이었던 게 분명하다. 이왕 만드는 거, 조금 더 간단하고 쉽게 만들어 줬으면 좋을 텐데. 이토록 복잡하고 어려우면 집에서 핸드 드립을 해보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눈 녹 듯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이를 테면 “원두를 분쇄하고 드리퍼에 넣어. 그리고 뜨거운 물을 휘 부어주고, 적당히 시간을 기다리면 돼. 그리고 커피가 다 나오면 끝. 그것뿐이야. 할 건 아무것도 없어. 그냥 물을 부어주고 잠시만 기다리면 돼. 커피가 녹여지는 시간 말이야. 그만큼만.” 하고 말이다.


  어디까지나 집에서 핸드 드립을 하고 싶다는 말은 번거로움을 감수하겠다는 말이다. 매일 아침 재빠르게 커피를 마시고 출근해야 하거나, 커피 한잔이 쉽고 빠르게 만들어지길 원한다면 핸드 드립 커피보다는 커피 머신이나 캡슐 커피가 적절하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집에서 핸드 드립 커피를 마시는 진짜 매력은 번거로운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커피를 내리는 과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커피를 내리기 전에, 마음과 시간을 적당히 스트레칭 하 듯 늘려 두고, 유연해진 마음과 시간으로 커피를 추출한다. 일련의 과정들을 하나씩 해 나간다. 그러면 이 과정들이 즐겁다. 커피를 분쇄하고, 뜨거운 물을 붓는 행위를 즐기는 것이다.


  이렇다 할 별다른 일 없는 한가한 오후. 에타 존스의 Don’t go to strangers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나는 전기포트에 물을 끓인다. 부글거리는 물 끓는 소리가 들리고, 테이블에 커피 기구들을 올려 둔다. 느지막한 오후의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오고, 햇살 아래에 누운 강아지가 단잠에 들어있다. 찻장에 넣어둔 원두를 꺼내 봉투를 열자, 고소한 커피 향이 햇살 위로 퍼져간다.

  물이 다 끓은 전기 포트에는 선명한 김이 피어난다. 김은 공기 속으로 스며들고, 햇살과 커피 향이 한데 어울린다. 나는 테이블 앞에 서서 자세를 고쳐 잡고, 주전자로 원두 위에 물을 붓는다. 천천히, 여유롭게. 물에 닿은 원두는 향기를 뱉어 낸다. 똑똑 떨어지는 커피의 소리와 재즈 음악은 한데 섞이고, 집 안 곳곳 공기의 빈자리로 향기가 채워진다.

  추출이 끝난 커피를 잔에 담고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나는 이 시간들을 좋아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이런 종류의 즐거움이 있지 않고 서는 집에서 핸드 드립을 하기 쉽지 않다. 복잡하고 번거로운 과정들을 해야 하고,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집에서 근사한 커피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어, 주위 바리스타에게 “집에서 핸드 드립 커피를 어떻게 내릴 수 있어? 맛있게 내리는 방법이 뭐야?”라고는 물어보지 마세요. 그랬다가 복잡하고 어려운 설명을 중구난방으로 들어서 커피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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