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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잡문인 Dec 08. 2019

스타일리시한 바리스타

  주위 사람들도, 친구들도, 가족들도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나는 옷차림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이쁘고 세련된 옷을 찾아보고, 쇼핑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편이고, 딱히 관심이 없고, 감각도 없다. 그래서 카페에서 일할 때 입는 옷도 평범하고 무난한 편이다.

  내가 주로 입는 옷은 셔츠와 치노 팬츠, 청바지 정도다. 적당한 가격대의 브랜드 매장에 가서 셔츠를 입어보고, 사이즈나 느낌이 나쁘지 않으면, 거기서 셔츠를 4-5벌 정도 산다. 그리고 바지도 마찬가지. 똑같은 옷이라도 괜찮고, 같은 모델의 다른 색깔도 괜찮다. 비슷한 옷을 여러 벌 사두고, 그걸 하나씩 순서대로 입는다. 신발은 똑같은 걸로 3-4켤레 사둔다. 이렇게 사둔 옷을 매년 반복해서 입는다.

  그러다 보니 일할 때 항상 같은 옷만 입고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함께 일하는 사람이나 단골손님들의 입장에서는 “뭐야, 뭐지. 어제 입은 옷을 또 입고 왔네. 집에 안 들어간 거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오해하지 않기를. 

  어제 입은 옷과 오늘 입은 옷은 같은 옷이지만, 따지고 보면 다른 옷이다. 그렇다고 내가 같은 옷을 입는 이유가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나 스티브 잡스같이 어떤 효용성을 따져서, 일에 집중하기 위한 원리 때문인 것은 아니다. 그저 귀찮고, 복잡한 게 싫을 뿐. 


  한때는 옷을 잘 입고 멋지게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옷도 사보고, 잡지도 읽어보고 노력했지만. 애초에 그런 경험도 적고, 감각이 부족해서인지 그다지 멋스럽지 않아 포기했다. 나랑은 조금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뭘 입고 갈지 고민하고, 옷을 고르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을 옷 걱정에 쇼핑몰을 뒤적거리고, 잡지를 사야 하는 게 너무 번거롭고 귀찮았다.

  이후로 나는 적당히 간편하게 옷을 사두고 돌려 입는다. 뭘 입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고, 아, 이제 슬슬 추워지는데 뭘 사야 하지 같은 고민도 할 필요가 없다. 정해진대로, 아무런 생각 없이 걸려 있는 옷들을 오른쪽에서부터 순서대로 입고, 세탁을 한다. 모든 것이 규칙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마음이 아주 편하다.

  가끔 스타일리시 한 매장에 커피를 마시러 가서, 멋진 모자를 쓰고 수염을 기른 바리스타가 폼나게 커피를 내리고 있으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뭔가 멋있고, 분위기 있으니 커피도 맛있을 것 같고, 굉장한 전문가 같이 보인다. 전문성이 풀풀 풍긴다.

  하지만 카페를 나오면 이내 “전문성이나 커피 맛은, 스타일리시하고 폼나는 것과는 관련이 없지. 그렇지. 암. 그럴 거야.”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한다. 에헴…


  그런데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부분인데, 조금은 삐뚤어진 반항적인 태도로 바라봤을 때, 서비스업을 하는데 왜 단정한 셔츠와 구두 같은 옷을 입어야 하는 걸까요? 반바지를 입고, 샌들을 신고,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일을 한다고 해서 서비스의 질이 달라지는 걸까요?

  레스토랑이나 호텔처럼 격식을 차린 곳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왜 단정한 복장을 입어야 하는지 들어보거나 배운 적이 없다. 어째서일까. 설령 레스토랑은 그렇다고 해도, 왜 카페에서도 그런 복장이어야 하는 걸까.

  그건 어쩌면, 아무래도 손님에게 보이는 것 때문이 아닐까. 단정하고 깨끗한 옷을 입을수록 손님의 입장에서는 “음, 여기는 깨끗하고 단정한 곳이구나. 좋은 환경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어.”라는 믿음을 주기 때문일지도.

  하지만 그런 식의 이미지는 친근하지 못한 느낌을 주게 되는데, 마치 레스토랑의 직원들이 깔끔한 셔츠를 입고 구두를 신고 일하고 있으면, 나도 어느 정도는 격식을 차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면 손님도 반바지와 슬리퍼를 신고 가면 안 될 것 같이 느껴진다. 반면에 슈퍼마켓에 가면 일하시는 할머니께서는 파리채를 들고 다니시거나,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계산하러 나오신다. 그런 이미지의 슈퍼마켓은 얼마든지 씻지도 않고 반바지를 입고 갈 수 있다.

  카페가 어떤 이미지를 취하느냐는 사장님의 몫이지만. 대체로 격식을 차리고, 스타일리시한 분위기를 차린다면 아무래도 포근하고 친근한 슈퍼마켓 이미지는 갖기 힘들다. 나는 어느 쪽이 좋은가 하면, 동네 주민이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방문하는 슈퍼마켓 쪽이 좋은데 말이지요. 파리채를 들고 나오는 것 까지는 아니지만, 깔끔한 분위기에 편안하고 친근한 카페가 손님의 입장에서도 더 좋습니다.

  그나저나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활 유형이 스타일리시하거나 최소한의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타입이기 때문에 그런 쪽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타입에게는 편하고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습니다. 이를테면 구겨진 스니커즈, 청바지, 티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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