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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잡문인 Dec 19. 2019

아주 쓸데없이 예민한 바리스타

  바리스타는 아주 쓸데없이 예민한 편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아니, 대체 이게 왜?’라고 생각되는 행동을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카페에서는 트레이를 사용한다. 손님이 주문한 음료와 디저트를 가져가기 편하게 준비하는 용도이다. 카페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면, 보통은 트레이를 준비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를테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의 주문이 들어오면 트레이에 내빈과 빨대를 올리는 일이다. 일종에 서브 업무다.

  디저트를 포함해서 주문 내용이 많으면 트레이에 준비해야 할 게 많다. 포크도 사람 숫자에 맞춰 준비해야 하고, 음료에 따라서는 스푼이 필요하고, 잔에 따라서는 받침이 필요하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사람은 일을 배우기 급급하기 때문에 일단 일을 처리해내기 바쁘다. 외운 데로 트레이 위에 빨대, 스푼, 포크, 접시들을 여기저기 올린다. 그럴 때면 나는 옆에서 ‘으흠, 으흠.’ 하면서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 깊은 곳이 답답해지고 손이 간질간질해진다.

  그러다가 트레이에 올려져 있는 구성을 다시 슬쩍 재배치하는데, 냅킨 위에 스푼이 가장 오른쪽, 그 옆은 빨대, 가장 왼쪽에는 포크들을 겹쳐서 가지런하게 한다. 라떼 잔받침은 왼쪽 아래에, 디저트는 잔받침의 대각선 오른쪽 위로. 균형이 맞지 않으면 들고 가기 힘들 수 있으니 최대한 사이드로 펼쳐서 공간을 확보하고, 대충을 맞춘다.

  이렇게 트레이 구성을 정리하고 있으면, 새로 들어온 분이 와서 “죄송해요. 제가 실수했나요?”라고 물어온다. 그럴 때면 “아니요. 아니에요. 실수라니요. 전혀요. 그냥 제가 쓸데없이 손이 간질간질거려서…”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또다시 트레이가 준비되면, 나는 참지 못하고 트레이 구성을 다시 정리한다. 그러고는 “아니에요. 아니요. 전혀요. 잘하시고 계십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또 트레이가 준비되면, 참지 못하고 다시… 그리고 또…

  “하, 아니. 아니긴 뭐가 아니야, 대체 이게 왜? 정말 최악이군. 마음에 안 들면 말을 하던가. 왜 저러는 거야.”라고 새로 온 직원이 속으로 중얼거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런데 이건 정말, 그냥 깊은 곳에 뭔가 걸려 있는 기분이 들고, 간질간질거려서 손이 멋대로 움직인 겁니다. 정말. 저도 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는 입장이 되어버린다. 어째서 이렇게 멋대로 참지 못하고 수정하게 되는 걸까. 그렇다고 빨대는 이렇게, 냅킨은 이렇게, 하는 세세한 행동방식을 알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이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방식일 뿐이다.


  바에서는 행주를 많이 사용한다. 테이블을 닦는 행주, 잔을 닦는 행주, 머신을 닦는 행주, 트레이를 닦는 행주 등등. 나는 행주를 보면 네모 반듯하게 잘 접혀(푹신푹신한 모양으로)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다. 마치 정체가 심한 국도에서 뻥 뚫린 고속도로로 올라탄 기분이다. 마음이 시원하고 편하다. 그래서 일하다가 행주만 보이면, 다시 펼쳐서 반듯하게 접고 접는다.

  이것도 마치 병에 걸린 것처럼 손이 멋대로 움직이는 건데, 아무 생각 없이 행주를 들고 이리저리 닦다가, 다시 펼쳐서 접고, 또 접고, 다시 닦고 접고…

  “아니. 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냥 좀 내버려둬.”하고 누군가가 말할지도 모른다.

  한 번은 누군가에게 혹시… 이런 말 하기 죄송하지만. 강박증 같은 게 있지 않으세요?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왜 그러냐 물으니, 시도 때도 없이 닦고 접고, 또 닦고 접고,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물어봤다고.

  아마도 그건, 바리스타의 직업병의 일종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이 간질간질거리고, 마음 한 편이 답답해지고,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고, 커피가 추출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진지하게 어쩌면 정말 강박증 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일부는 인정한다. 하지만 나름대로 변명을 하자면, 이런 행동들은 무사히 커피를 잘 내려지길 바라는 마음에 하는 것인데, 마치 비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우제를 지내는 것과 같다. 주변을 정리하고, 머신을 닦고, 행주가 보기 좋게 접혀 있으면 커피가 잘 내려질 것 같은 편안한 기분이 든다(정말입니다).

  좋게 말하자면 어디까지나 습관이자 루틴이다. 커피 머신과 바는 손님에게 쉽게 보이는 곳이기 때문에 지저분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정리하고 닦는 습관. 어디까지나 커피도 음식이니까 필요한 행동이다. 그리고 커피를 추출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 루틴이다. 닦고 정리하고, 커피 가루를 쓸어 담고, 행주를 반듯하게 정리하고. 자, 어디 한번 커피를 내려볼까. 하는 식이다. 괜히 주위가 어수선하고 정리가 안되고 복잡하면 신경이 쓰여서 커피에 집중이 안된다.


  어쨌든 뭐, 누군가가 이 말을 듣고, “그게 강박증이에요. 참.”하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직업병입니다. 직업병."이라고 말할지도. 하지만 강박증이든 직업병이든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되지 않나요.. 다른 사람에게 강요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흠.

  아무튼 바리스타는 이렇게 쓸데없이 예민한, 그런 종류의 병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러니 처음 카페의 일을 하는데 세세한 행동방식 같은 것을 계속 알려주는 바리스타를 만난다면, 아, 이 사람. 강박증이 있군. 쓸데없는 예민함이 있어. 이런 이런. 하면서 부디 이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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