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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건숙 May 18. 2022

새벽에 깨어  달을 보다

산골에 내가 있었네(2)

나를 그곳으로 이끈 김남희 작가도 내가 들어 있던 '나 혼자만의 방'에  머물렀을까? 내가 앉아 글을 쓴 그 책상에 앉아 있었던 것일까? 초록 나무가 시선을 가득 채우는 창가의 책상에 앉아 있었다고 했으니 말이다. 커다란 통 창으로 숲이 들어왔다. 고층 아파트에 오래 살아온 내가, 바로 눈앞에 나무가 있고 산이 보이는 곳에 있으니 그 시간이 낯설었다. 하지만 좋았다. 창가 아래엔 참꽃마리가 앙증맞게 피어 있었다.

  

숙소  아래 도로로 가끔 차가 지나갈 때만 제외하면 개울물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잠이 안 올 때 일부러 찾아서 틀어놓았던 소리 가운데 하나였다. 새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에선 별들이 반짝였다. 별을 바라본 일이 얼마만의 일인지 감개무량했다. 멀리서 깜빡이는 별이 시리우스라고 주인장이 알려주었다. 소음이 모두 사라진 공간, 음악마저 흐르지 않는 그 공간에 내가 있었다.

  


산골에 가면 숲 멍 할 것이라 생각했다. 《홀로 숲으로 가다》의 베른트 하인리히가 했듯 아이처럼 쳐다보고 느끼고 싶었다. 그것이 30분일 수도 있지만 그것마저 느끼지 못할 만큼 내 감각의 경계를 허물고 싶었다.

  

그런 속에서 하루가 가고 있었다. 다음 날도 자연 속에 나를 맡겨두자고, 과거와 미래는 잊고 지금의 순간에 머물면서 느끼자면서 오래간만에 느린 시간을 쓰고 있었다.


  

자다가 두어 번 잠이 깼다. 커튼을 살짝 들추니 나무 끝에 가로등 불빛 같은 것이 키 큰 전나무 우듬지에 걸려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보니 불빛은 오른쪽으로 옮겨져 있었다. 달이었다. 자다 깨어 누운 채로 나무에 걸린 달을 볼 수 있는 경험을 도시에선 얼마나 할 수 있을까?

  

나란히 서 있는 전나무들을 세어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창문 앞에는 키 작은 향나무들이 서 있다. 바로 코앞에는 이름 모르는 작은 나무들이 있다.

  

6시가 넘은 시간에 눈이 떠졌다. 드문 일이다.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 그냥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숲을 보았다. 조용히 몸을 흔들고 있는 작은 나무들도 보았다. 집에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란 더듬거리며 휴대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때 보이는 건 장롱, 전등, 벽 그리고 실루엣들. 날이 밝아도 마찬가지다. 침대에 누워서는 밖이 보이지 않으니 둥싯 달이 뜬 모습이나 나무들을 볼 수가 없다. 보인다 해도 멀리 있는 공원의 나무들이다. 그러므로 침대에 누워 흔들거리는 나무를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얼마나 벅찬 감정이 올라왔는지 모른다. 나무들이 종이에 인쇄된 것처럼 내 기억의 곳간에 담길 소박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들이었다.      

  

주인장이 만들어 준 토스트를 앞에 두고 들이 마주 앉아 먹으며 공유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차를 마시고 싶다면 청해도 된다고 하기에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IT회사에서 웹디자이너였다는 춘천이 고향이라는 그는 귀촌의 꿈을 고향의 산골에 실현했다. 그래서 나처럼 귀촌을 꿈꾸지만 여전히 도시를 못 떠나고 있는 사람에게 그 경험을 대신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내어주고 있다. 그래서 썸원스페이지 숲은 꿈의 공유공간이기도 하다.

  

숙소에는 주인장과 결이 비슷한 이들이 찾는다고 했다. 다들 어떻게 알고 찾아드는 것일까? 리뷰를 보면 혼자 찾는 이들도 많지만 신혼여행으로 오는 이들도 있고, 커플들도 있었다. 18박 19일을 예약하고 들어온 이도 있다고 했다. 디자이너란다. 일하기에 좋은 곳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20~30대 청년들이 많이 찾는단다. 놀랍지 아니한가? 에너지가 넘쳐나는 이들이 휘황찬란한 곳이 아닌 이런 고즈넉한 공간을 찾는다는 것이. 힘든 청년들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식사를 마치고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글을 쓰고 있자니 기분 좋은 감정이 벅차올랐다. 눈을 들면 연둣빛 잎들이 시선을 잡아끌고, 흔들거리는 가지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면 마음이 평온했다. “어떤 공간에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행복이 달라진다.”는 알랭 드 보통의 말에 공감이 갔다. 음식은 적게 먹고, 풍경은 배부르게 먹으면서 마음속에 무언가를 억지로 집어넣지 않게 되는 공간이었다. 해야 할 일이 기다리지도 않고, 귀를 자극하는 소리도 없고, 그저 몸과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두어도 좋은 공간에 들어가 있으니 그것이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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